도배 맡길 때

미리 당부하세요

by 명희

5년 전 위층에서 물이 셌던 작은 방에 또 물이 셌다. 인테리어 사장은 위층을 수리하고 물이 세는 쪽 벽지를 뜯어놨다. 빨리 새 벽지를 바르고 싶었지만 물이 더 세지 않는지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거의 한 달을 기다렸다. 또, 날씨가 따뜻해지면 하자고 해서 몇 주를 더 기다렸다. 마침내 인테리어 사장이 도배 사장과 기술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새 벽지로 마감될 방을 상상하며 반갑게 맞았다. 도배 사장은 방을 제지 않아서 자르는 기계도 가져오고 풀칠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래서 잘라오면 안 돼요? 인테리어 사장이 물었다.

지난번에는 칼로 잘 잘라서 하던데 기계가 필요하나요? 내가 물었다.

요즈음은 다 기계로 합니다

알았어요. 거실에서 하세요.

그럼 기계 가져옵니다.

언제 정도 끝나나요?

2시 정도 될 겁니다


약 10여분 후 낮은 철봉처럼 생긴 기계와 물통 등을 들고 도배 사장과 기술자가 다시 왔다. 처음 작은 방에 물이 세서 도배를 했던 노부부나 작년에 안방을 도배한 기술자는 기계 없이 칼로 정확하게 벽지를 잘라서 풀칠을 하는 모습이 마치 생활의 달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온 사장은 왠지 미숙해 보였다. 바퀴가 달린 기계를 거실 한쪽에 놓고 모터처럼 생긴 장비를 부착하다 원목 마루에 떨어뜨렸다. 분명히 마루가 움푹 파였을 거다. 그러나 사장은 뭔가 혼잣말만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을 계속했다. 나도 뭐라고 하려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서툰 게 안 돼 보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화장실에 들어간 도배 사장이 한참 동안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뭔가 미심쩍었다. 물이 계속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를 하는 거지? 화장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보니 화장실 바닥에 거품이 가득하고 강한 화학 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샤워실에서 풀과 본드가 묻은 기계를 씻고 있었다.


사장님 왜 묻지도 않고 저희 목욕탕에서 이걸 씻고 있나요? 당장 나가 주세요.

왜 화를 내세요?

아까 원목 마루에 장비를 떨어뜨렸으면서 사과도 안 하시고.

언제요?

아까 떨어뜨렸잖아요. 그리고 여긴 목욕탕이 하나여서 저희 부부가 사용하는 샤워실인데 묻지도 않고 장비를 씻는 게 기분 나쁩니다. 이상한 화학 약품 냄새도 독한 것 같고...

도배는 뽄드도 사용하고 기계도 씻어야 해요.


잠시 언성을 높이고 나니 가슴이 떨려서 진정해야 했다. 도배 사장은 물을 떠다 거실에서 닦아도 되는지 물었다.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 빨리 끝내라고 했다. 11:40분경에 사장과 기술자는 식사를 하고 오겠다고 나갔다. 거실 창문과 부엌 창문을 열고 화장실 팬을 틀어 놨지만 냄새가 심했다. 밥맛도 없었다. 일이 끝나면 식사하기로 하고 거실 식탁에서 학교 일을 계속했다. 약 한 시간이 지나 도배 사장과 기술자가 돌아왔다. 3시가 넘어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드디어 4시가 다 되어 장비를 챙기는 소리가 들렸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시작했는데… 무려 6시간이 걸린 거다.


사장님 아까 화내서 죄송했어요. 제가 천식이 있어서 냄새에 민감한데 전에는 기계도 쓰지 않고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는데 이번에 냄새가 너무 심하고 목욕탕에 화학 약품을 버리는 게 언짢았어요.

원래 요새 도배는 이렇게 해요. 그리고 전에 했던 사람이 제대로 작업을 안 해서 시간이 두 배로 걸렸어요.

네… 이거 드세요. 수고했어요.


6시가 다 되어 점심 겸 저녁을 먹으며 아까 왜 그리 화가 났는지 생각해 봤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따지지도 못한다. 그런데 목욕탕을 가득 매운 거품과 냄새를 맡은 순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도배 사장의 눈빛이 뭔가 잘못한 일을 하다 들킨 사람 같았다. 마루에 흠을 내고도 모른 척했던 게 떠올랐다. 내가 만만한가? 늘 일이 끝나고 “그렇게 말할 걸”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는 좋고 싫은 걸 분명히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미리 지침을 세우지 않아 잘하지 못했다. 처음 도배를 하러 왔을 때 일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자세히 묻고 부탁하고 싶은 일을 정확히 전달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일이 벌어지자 언성만 높인 게 부끄럽다. 다음에 또 도배를 하게 된다면 미리 인테리어 사장에게 냄새가 심하지 않은 도배 풀을 사용하고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도배 기술자를 보내달라는 말을 꼭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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