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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Oct 31. 2023

메가머신, 고칠 수 있을까?

<<거대 기구의 종말>>을 읽고 든 생각

책에 나온 내용이 새로운 건 아니다. 독일 작가 파비안 샤이들러(Fabian Scheidler)는 <<거대 기구의 종말(The end of the megamachine>>에 인간의 5000년 역사가 어떻게 권력을 가진 자의 경제 모형에 입각하여 거대 기구가 되었는지 알기 쉽게 기술했다. 인간이 농경 사회를 이루며 정착하고 청동 시대에 금속을 가공할 수 있던 일부 사람이 무기를 만들어 다른 사람을 지배하면서  차별의 역사가 시작됐다. 다시 말해 인간이 문명화되면서 평등한 사회가 무너졌다. 엘리트가 등장하고 군대를 만들고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궁전을 짓고 세력을 키우고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형성되어 "오늘날 42명이 세계 인구 절반이 소유한 것과 맞먹는 재산"을 축척하는 동안 사람들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말하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받아들이고 폭정으로 길들여져 복종하게 됐다.


사람들이 복종한 이유는 세 가지다. 무장 폭정, 구조적 폭정, 이념적 폭정. 무장 폭정은 많은 사람이 한 곳에 정착하며 중앙 관리 사회가 출현했고 군대도 결성되어 사람을 물리적으로 통제하고 파괴하는 수단이 늘어났다. 구조적 폭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경제 구조를 말한다. 최초에 땅이 어떻게 사유화되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토지가 상품으로 변하면서 소수만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고 나머지 사람은 토지를 빌려 경작하며 농사가 잘 되지 않으면 빚을 지고 노예가 됐다. 이념적 폭정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우고 서기관은 규칙의 실행에 없어서는 안 될 특권층이 됐다. 재미있는 건 최초로 남겨진 글이 상품 목록 및 수량과 상품의 가치였으니 재산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만든 모양이다. 이후 법과 종교적 교리 등이 글로 작성되어 사람을 복종하게 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폭정은 세상이 예측 가능한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선형적 사고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사람이나 자연은 예측 불가능하다. 사람이 늘 명령에 복종할 것 같지만 부당함에 대한 불만이 터질 수 있고 자연도 통제할 수 없다. 드디어 21세기에 거대 기구는 극복할 수 없는 두 가지 한계에 부딪혔다. 하나는 구조적 한계로 좋은 일자리와 중산층이 감소했다. 둘째는 자원의 한계와 기후 변화로 지역 간 갈등이 고조됐다. 


'메가머신' 혹은 '거대 기구'란 용어는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가 처음 사용했다. 메가머신은 인간이 도구를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도구가 된 상태를 말한다. 거대한 기구의 일부가 된 인간이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거나, 도시를 만들거나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나 시스템에서 효율성과 기계화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인간의 잠재력을 억눌러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샤이들러도 '기구'란 용어를 비슷한 의미로 사용했으나 한 발 더 나아가 '거대 기구'를 만든 게 인간이라면 그것을 해체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고 말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거대 기구 형성에 금속과 야금술의 역할이다. 저자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경제적 군사적 힘은 대부분 금, 은, 구리, 철, 알루미늄, 우라늄 등 금속 자원의 통제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했다. 순철을 탄소와 합금하여 강철을 만들어 도구와 무기를 만들었고 기원전 1200년경부터 철기 기술이 아나톨리아에서 급속도로 퍼졌단다. 또, 귀금속에 대한 통제는 경제력의 핵심이 됐다. 그러나 더 많은 무기와 귀금속을 조달하기 위해 더 많은 금속이 채굴되어 자연을 파괴했고 이런 광석 채굴은 석탄 및 석유 산업을 포함한 모든 추출 산업의 원형이 되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중세 연금술의 기원인 야금술은 물질세계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지배 사상의 모델을 형성했다. 따라서 현대에 생명체를 인공적으로 생산하려는 시도 또한 과거 연금술적인 개념에서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우리가 그렇게 따르고 선망했던 서구 문명과 민주주의는 메가머신을 탄생시켰다. 일찍이 서구 유럽은 앞선 과학 기술과 합리적인 사고로 기독교도 전파하고 사회 시스템도 전파하며 세계를 계몽시킨다는 사명으로 식민지에서의 인권 탄압을 정당화했지만 두 번의 세계 전쟁 후에 남은 건 인간과 자연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핵무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안내된 민주주의"(Walter Lippman)를 믿으며 메가머신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시장은 일종의 자연적인 힘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고대부터 오늘날까지의 경제력 발전을 살펴보면 화폐화된 시장 경제는 실제로 처음부터 노예 제도, 자연재해, 군사 확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국가는 시장의 창조자다. 주화와 시장은 자유로운 물물교환의 결과로 사람들이 발명한 게 아니라 국가가 군대를 유지하고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 발명한 거다. 용병은 최초의 임금 노동자고 시장에서 최초로 거래된 상품 중 하나도 인간이다. 그리고 소위 "빛의 시대"라는 르네상스시대에 메가머신이 형성됐다. 자본주의가 발흥하고, 총기를 확산하고, 군사적 폭력이 지구 전역으로 퍼지면서 전쟁, 전염병, 굶주림, 추방이 대규모 이주와 정신적 충격을 초래했다. 그야말로 토마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었다. 사람들은 종말론적 비전과 급진적인 유토피아적 꿈으로 두려움을 달랬다. 이러한 경험에 뿌리를 둔 현대 진보 이데올로기는 끝없는 전진을 통해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했다.


틀린 말은 없다. 그러나 현대 과학과 철학자에 대한 저자의 지적이 불편했다. 베이컨이 과학적 방법을 체계화한 사람이란 사실 보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자연의 비밀을 캐야 한다는 베이컨의 언어를 지적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제작하여 우주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 것보다 천문학적 계산으로 무역, 식민지 확장, 해전에서 필수적인 기술의 토대를 마련한 점을 강조했다. 데카르트도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 되어야 한다는 철학적 방법보다 영이 명령하면 육체는 복종하는 존재로 중앙집권적 군사력 모델을 제시했다는 면을 부각했다. 게다가 메가머신의 필수 구성 요소인 인종차별은 볼테르, 칸트, 헤겔, 흄, 다윈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이 공공연히 토로했단다. 내가 좋아하는 칸트 조차 "백인종이 가장 완벽"하고 인디언이나 흑인은 "낮은 사람"이라고 했다니 참으로 씁쓸했다. 그러니 세실 로즈(Cecil Rhodes)가 전구에 들어가는 구리를 공급하기 위해 남아프리카에서 히람 맥심(Hiram Maxim)이 발명한 기관총으로 은데벨레(Ndebele) 사람을 대량학살했어도 데모하는 사람은 없었을 거다. 거대 기구는 관료, 군대, 학교, 기업을 거대한 기계처럼 기능할 때까지 훈련하고 단련시켰다. 결국 메가머신은 명령과 복종, 자연을 무제한적으로 착취하는 사회의 모델이 됐다. 


좀 과격한 것 같지만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엉뚱하게 저자가 나를 비난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선 나는 현재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고, 월급에서 일부를 퇴직 연금에 가입해서 은퇴 후 사용할 일정 자금을 준비했고, 언젠가 사놓고 몇 년째 들여다보지도 않는 주식이 있는데 어쩌다 보면 조금 올라 있어서 돈이 돈을 버는 구조에서 이익을 보고 있다. 따라서 나는 거대 기구의 일부다. 그런데 이런 활동이 결론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 가만히 앉아서 경제 활동을 하지 말고 대기업 정부를 상대로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는 광물 캐기를 하지 말고 물건을 만들지 말라고 시위만 하라는 건가? 저자가 지적한 모든 문제를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에게 "물건 만들지 마세요. 그거 만들려면 석탄 석유 추출해서 공기 오염시키고 나중에 쓰레기 쌓여서 지구가 힘들어요. 가축도 기르지 마세요. 식당도 하지 마세요. 집도 새로 짓지 마세요. 옷도 만들지 마세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음식 물 전기를 낭비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플라스틱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건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요새 많은 사람이 전세 사기로 고통을 받고 있는 건 분명 거대 기구의 문제다. 따라서 거대 기구를 고쳐야 한다. 나라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깨끗한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면 적어도 한쪽부터 메가머신을 수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길 거다.   


<참고문헌>

Scheidler, F. (2020). The End Of The Megamachine (Bill C. Ray Trans.). Zero books. (original work published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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