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소설 좋아하세요?
이 글은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Solaris)를 바탕으로 쓴 글이어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거나 요약한 경우 파베르 앤 파베르(Faber & Faber)에서 영어로 번역 출판한 책을 필자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공상하는 건 좋아하면서 공상 소설이나 공상과학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해리 포터(Harry Potter)도 1권만 읽었고 트와일라잇(Twilight)도 한 권만 읽었다. 아마도 내 두뇌는 신비로운 현상이 너무 많아지면 과부하가 되는 모양이다. 아니면 두뇌가 굳어버린 걸 거다. 그러나 가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공상과학 소설이 있다. 최근에 읽은 솔라리스(Solaris)가 그렇다. 작가는 Stanisław Lem이라는 폴란드 사람인데 엘(l) 중간에 사선이 있는 작가의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찾아봤더니 위키피디아에서 친절하게 녹음으로 알려줬다.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는 이 분이 1961년에 쓴 소설인데 혹시 한국에도 알려진 인물인지 검색해보니 나무 위키에 소설에 대한 짧지만 명료한 배후 설명이 있었다.
실제로 도입부를 읽으면 마치 우주 탐사 영화 첫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주인공 켈빈이 지구를 떠나 솔라리스에 도착한다. 그러나 우주 정거장엔 사람은 고사하고 로봇도 없다. 요동치던 환기 장치가 갑자기 멈추더니 조용하다. 뭐가 나오나? 섬뜻하다. 다행히 켈빈이 처음 만난 사람은 인공두뇌학자 스노우다. 그런데 술에 취한 것 같다. 켈빈이 지바리언의 행방을 묻자 사고가 났다는 말만 하고 더 이상 설명이 없다. 그런데도 무언가를 만날 거라고 경고한다. 왜 이렇게 뜸을 들이지? 그러나 스노우가 처음부터 모든 걸 설명하면 책이 10페이지가 조금 넘어 끝날 테니 좀 더 참고 읽어야 한다. 그러면 슬슬 솔라리스에 빠져들 수 있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솔라리스에 사는 지각 있는 존재는 사람이나 동물의 모양이 아니라 바다로 이뤄진 행성 솔라리스 그 자체다. 즉 바다가 살아서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45년 전에 발견한 행성 솔라리스를 연구하며 무려 600권의 책을 출판했다. 이론도 분분했다. 이런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한다.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과학적 용어도 사용하지만 졸리지는 않다. 너무 그럴듯해서 오히려 신기하다. 그런데 더 불가사의한 건 켈빈을 포함해 3명밖에 없는 우주 정거장에 켈빈의 아내 레야가 나타난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뭐 이란 상황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10년 전에 자살했는데… 그런데 오히려 그녀가 더 놀란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단다.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손가락으로 장난치는 것까지 똑같다. 그러나 발바닥 피부가 아기 같다. 아내가 아니다. 그리고 방에 잠시 혼자 있으라고 했더니 절대로 그럴 수 없단다.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힘이 장사다. 그래서 우주선에 태워 정거장 밖으로 쫓아낸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다. 이건 솔라리스가 인간을 알기 위해 하는 실험일 수 있다. 죽었던 아내가 어떻게 부활했을까?
원자는 우리 몸의 궁극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파이 존재는 일반 원자보다 훨씬 작은 단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훨씬 더 작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뉴트리노(neutrinos) 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파이는 자율적인 개인이 아니며 실제 사람을 복사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뇌에서 구체화되는 투영일 뿐입니다... 어떤 특정한 기억이 파이라는 존재로 구체화되는 것은 그 기억이 뚜렷하고 영속적으로 각인된 기억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인상적인 기억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파이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관련 있는 인상적인 기억의 파편이 저장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파이는 때때로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존재보다 더 광범위한 지식을 드러냅니다.
그랬다. 아내는 솔라리스가 켈빈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만들어진 거다. 과학자들은 솔라리스와 콘택트 하려고 수십 년 동안 시름하지만 솔라리스는 그냥 한방에 인간의 뇌에 직접 들어가 인간을 만들어낸 거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인간 같은 존재는 로봇과 달리 섬세한 감정을 갖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레야가 그랬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켈빈은 사람이 아닌 레야와 지구에서의 미래를 꿈꾼다.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꿈. 나도 동생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내 기억으로 만들어진 동생은 몇 살일까? 너무 우울해진다. 다행히 다음 장면은 다시 과학적인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런데 과연 솔라리스가 이러는 목적은 뭘까? 인간의 뇌에 들어가서 우리의 욕망을 염탐할 수 있다. 인간은 정신활동의 2%만을 인지할 수 있으니 솔라리스가 인간을 인간보다 더 알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인간을 어쩔 셈인가? 솔라리스는 인간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냥 인간이 자기 주위에서 맴도니까 인간이 갖고 온 물건을 똑같이 만들어 보여주고 귀찮으면 신경 안 쓰고 그러다가 급기야 레야까지 만들어줬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건 인간인 것 같다. "의미가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우주에서 신이나 의미를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부조리는 질서, 의미, 행복에 대한 우리의 열망과 그것을 제공하는 것에 무관심한 자연계의 거부 사이의 긴장에서 발생한다."라고 했던 카뮈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런지 명쾌한 답은 없다. 다만 켈빈이 솔리리스의 존재를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는 부분에서 다시 한번 작가가 스토리텔링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처럼 공상과학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끝까지 붙잡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