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점검이 필요하다.
"아침에 생각하고 오후에 실행하고 저녁에 식사하고 밤에 주무세요."
-윌리엄 블레이크-
하루 중에 아침이 가장 좋다. 머리도 맑고 에너지도 충만하다. 특히 아침 일찍 일어나면 조용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보통 11시에 출근해서 6시에 일어나면 5시간이나 자유 시간이 있다는 게 신난다. 씻고 식사하고 치우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3시간 정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핸드폰에 30분 타이머를 맞추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프랑스어 문장도 외워 본다. 그러면 어느새 출근 시간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오전에 약속이 있거나 전화를 하거나 받아야 할 때도 있고 집안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거나 프랑스어를 공부하거나 글을 쓰는 시간을 놓칠 때가 있다. 아침에 제대로 계획한 학습이 모두 이뤄지는 날을 달력에 기록해보니 한 달에 50% 정도 실천하고 있었다.
아침에 잘 잔 느낌으로 일어나려면 전날 너무 늦게 자면 안 된다. 그걸 알면서도 때로 저녁에 놀다가 자정이 다 되어 못다 한 일을 하다 보면 새벽에 잠이 들고 제대로 자지 못하고 너무 일찍 일어날 때가 있다. 젊었을 때는 너무 잠이 많아 고민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잠이 안 와서 고민이다. 5~6시간만 자도 잘 잔 느낌이다. 너무 일찍 깬 날엔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는다. 아침 일을 시작하면 한 한 시간 후 잠이 쏟아진다. 그러면 그때 자고 다시 일어난다. 제시간에 잘 자고 일어난 날은 일과대로 일을 진행한다. 샤워하고 커피를 내리고 남편과 아침 식사하며 티브이를 시청하고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고 나는 서재에서 아침 일을 시작한다. 남편이 출근하면 머리를 말리고 다시 서재에서 시간을 보낸다. 출근하기 20분 전에 간단히 집안 먼지를 털고 로봇 청소기를 돌려놓고 출근한다.
전철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본다. 메일을 확인하고 카카오톡을 확인한다. 학교까지 45분. 전철 안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일기를 쓴다. 프랑스어 일기는 구글 번역기에서 영어로 확인한다. 작년 7월부터 쓰기 시작해서 한 일 년이 지나니 처음보다 쓰는 게 편해지고 상황을 좀 더 자세히 표현할 수 있는 걸 느낀다. 이렇게 글로 쓰는 연습이 말하기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토요일 프랑스어 학원에 갔을 때 경험한다. 그래서 토요일엔 늘 설레는 마음으로 학원에 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누가 뭐라 해도 끈질기게 하면서 그렇지 않은 일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하기 싫다. 내겐 운동이 그렇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7시. 저녁을 먹고 나면 잠이 쏟아진다. 남편처럼 운동을 해야 하는데 의자에 앉아 잠깐 자다 학교 일을 하거나 티브이를 본다.
반면 남편은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한다.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운동은 절대 빼먹지 않는다. 숙면을 위한 거라고 했다. 운동을 해야 잠을 잘 잘 수 있어서 운동을 거를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저녁 모임 등으로 운동을 거른 날 남편이 잠이 깼다고 티브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꼭 시간을 내서 거의 매일 운동한다. 주말에도 남편은 외식 후 헬스장에 가고 나는 집에서 소파에 눕는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은 깨지 않고 잘 잔다. 물론 생활 자체가 규칙적이다.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일어나는 시간도 정확하다. 그래서 나도 남편을 흉내 내서 자고 일어나는 시간은 맞추려고 하는데 운동만은 잘 안 된다. 남편 따라 같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도했지만 회비만 내고 한 달에 두세 번 가서 결국 끊고 말았다.
저녁엔 확실히 아침보다 기운이 없다. 하루 종일 경험한 일이 머리에 꽉 차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럴 땐 수업 준비를 하며 잡다한 생각을 털어낸다. 미리 만들어 놓은 PPT를 점검하고 새로 추가하거나 삭제할 부분을 손질한다. 어휘나 표현과 관계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본다거나 인문학 강연을 찾아 듣는다. 10시가 넘으면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책도 오디오북을 듣는 게 편하다. 남편이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오늘 어땠어요?" 특별한 일은 없다. 잠시 소파에 함께 앉아 있다. 별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이 시간이 좋다.
여기까지 쓴 글을 다시 읽으니 아무래도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글쓰기가 필요하다. 생각을 글로 쓰고 읽으면 부족한 면도 보이고 해야 할 일을 좀 더 실천하게 된다. 헬스장에 가는 건 부담스럽지만 집에서 걷기 운동은 할만하다. 원래 핸드폰에 깔린 걸음 측정기 말고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걸음 측정기를 깔았다. 아침저녁으로 20~30분 하는데 제법 운동이 된다. 드디어 내게 맞는 운동을 찾았다.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새로운 시도가 숙면으로 이어질지 두고 봐야겠다. 별로 어렵지 않은데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제라도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내일도 오늘처럼 평범한 하루가 되길 기도하며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