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들이

뮤지컬 <알로하, 나의 엄마들>

by 명희

남편 지인 덕분에 오랜만에 뮤지컬을 보러 갔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처음 들어본 제목이다. 장소는 세종문화회관.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가 열린다고 하여 전철로 이동했다. 광화문역에 내려서 세종문화화관 이정표를 따라 출구로 나오니 멀리서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늘 가던 대로 대극장에 갔더니 문이 닫혔다. 날짜를 잘못 알았나? 그제야 표를 자세히 보니 공연 장소가 M시어터다. 극장 입구에서 초대해준 지인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1층 5열. 같은 줄에 자리가 많이 비었다. 바로 앞 줄에는 초등학교 5~6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4명이 떠들고 있다. 아이들과 동행한 어른은 통로 하나 건너 앉아 있다. 아이들 사진만 찍고 다시 통로를 건너가 앉았다. 아이들이 계속 떠들면 어떡하지? 그러나 객석에 불이 꺼지고 뮤지컬이 시작되자 모두 조용해졌다.


젊은 여인이 춤을 춘다. 펄은 엄마에게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엄마는 "검은 머리 학생"을 무용학과에 뽑아주지 않을 거라며 학교 공부나 열심히 해서 하와이대학에 가라고 한다. 모녀가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홍주 이모가 나타난다. 펄은 이모에게 엄마를 설득시켜 달라고 하고 이모는 엄마에게 펄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자고 한다. 그들은 펄만 할 때 부산에서 하와이로 왔었다. 때는 일제강점기. 아버지를 여의고 가세가 기운 양반집 딸,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과부가 된 딸, 대대로 무당 업을 하는 집안의 딸. 18세 동갑인 3명의 처자는 사진 한 장 들고 하와이로 시집가는 배 안에서 친구가 된다.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버들, 잘 살고 싶다는 홍주와 달리 송화는 맞지만 않으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뮤지컬을 보는 내내 송화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러나 이상하게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세 여인이 모두 힘들었지만 송화가 특히 그랬다.


인터넷에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을 찾아보니 한국인 노동자가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날은 1903년 1월 13일인데 2년 후 그 수가 4,683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 후 1910년에서 1924년 사이 약 600명에서 1000명의 사진신부가 하와이에 건너가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았다. 그리고 나라를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고된 노동의 대가를 선뜻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 문제는 거기서도 이념의 차이로 당파가 갈렸던 모양이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 생각난다. 여기도 저기도 마음에 안 든다. 그러나 중립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지 않았다. 지식인은 광장과 밀실 사이에서 고민하며 중립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지 않는 길을 택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은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내야 한다. 이민을 가서 좀 더 잘 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한다.


누군가는 사회가 바로 서야 개인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 누가 정의하는 사회인가? 전에는 경제 성장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희생됐다. 많은 사람 특히 힘없는 사람의 희생 덕분에 비교적 잘 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목소리가 들린다. 모두 양보는 패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자의 이익만 고집한다면 함께 사는 의미가 약해질 거다. 그래서 광장과 밀실의 균형이 어렵다. 광장이 대중의 밀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해석도 애매하다. 광장엔 집단 심리가 있어서 개인이 솔직하지 못할 수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휘두르고 마음 약한 사람은 휘둘린다. 이런 시대에 소위 “지식인”의 역할이 있다면 양보나 희생의 모범을 보이는 건데, 아쉽게도 그런 사람은 없다. 모두 목소리만 커서 시끄럽다. 그래서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말했듯이 평범한 사람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이웃과 좀 더 잘 지내고 좀 더 친절하게 돕고 배려하고…그러면 광장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버들과 홍주와 송화가 그랬다. 그녀들의 삶은 예상할 수 있듯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명준이 상상했던 그런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펄을 키워냈다. 조국에 독립자금도 보냈다. 미국에서 만났던 많은 이민자가 생각났다. 이민자는 늘 고향이 그립다. 그래서 모여서 한국 음식을 나누고 한국이 잘되길 바라고 여유가 되면 고국도 방문한다. 이국에서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자녀들이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에 가는 거다. 자녀들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디고 소수만이 일등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거다. 그래도 열심히 산다. 가끔 웃을 일이 있음을 감사하며…


여보, 뮤지컬 어땠어요?

비극이지.

난 미국 생각이 많이 났어요. 옛날에는 여자들이 어떻게 저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더구나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도 같은 동포가 있어서 많이 의지가 됐겠죠. 근데 난 저분들이 잘 산 것 같아요. 보편적 기준으로 보면 박복한 삶일 수 있지만 잘 살아 냈잖아요. 남편을 잃고 아이를 잃고도… 당신은 잘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해요?

남편이 계면쩍게 웃었다.

좀 엉뚱하죠? 철학적 질문이에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 마음 편하게 사는 거지.

걱정 없는 거요?

그렇지.

그럼 당신은 지금 잘 사는 것 같아요?

음.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나이가 드니 무탈하게 하루를 잘 보내면 감사하다. 특히 오늘처럼 뮤지컬을 보고 빈대떡과 잔치국수를 먹고 남편과 마주 앉아 유자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좋다. 나이 들면 부부끼리도 '라테는 말이야'가 반복된다. 과거의 어려움은 생각 안 나고 좋았던 이야기만 따듯한 추억으로 남아 자꾸 반복하게 된다. 한참 손자 걸음마 비디오를 보며 아이들 클 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딸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손자가 방끗 웃으며 손을 흔든다. 전날 손자를 보고 왔는데 또 보고 싶다. 내가 좀 더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딸도 더 일찍 결혼했다면 나는 지금쯤 중학생 손자를 둘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펄이 고등학교 3학년이니까 버들과 홍주와 송화는 많아야 40밖에 안 됐다. 참 젊은 나이다. 그래서 남편은 버들과 홍주와 송화가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비록 이들이 바라던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어도 서로가 있어서 잘 살 수 있었고 나름 행복했을 거라고 상상한다. 내게 '잘 산다'는 건 남편처럼 '마음 편하게 사는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도우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사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버들과 홍주와 송화는 남편 없이도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서로를 도우며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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