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사표를 내고 싶습니다."
50세, 건강기능식품 전문 제조업체의 임원. 누가 봐도 탄탄한 커리어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까요?
공장이 지어지기도 전부터 합류했던 회사였습니다. 벽돌 하나하나 쌓아 올려지는 공장을 바라보며, 마치 내 집을 짓는 듯한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경영지원부서장으로 시작해 사규 하나, 인사제도 하나까지 직접 만들어가며 회사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동료들이 업무에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지원하고, 고객사와 직접 소통하며 제품 생산부터 품질관리까지 손 안 댄 곳이 없었습니다.
한때는 누군가가 제게 꿈을 물어본다면 늘 저는 이렇게 말을 해왔습니다.
"이곳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싶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처음 이 공장에서 만나 고생했던 직원들이 그때까지도 함께 하고 있으면 좋겠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려주며,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하며 나가고 싶습니다."
퇴사하고 세스 고딘의 『린치핀』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안에서 이야기하는 린치핀 같은 사람이 꼭 나를 말하는 것 같았을 정도로 " 회사가 곧 나였고, 나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라고 믿으며 일을 해왔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공장 건설에 대한 무리한 투자, 미약한 수주 실적, 점점 악화되는 경영 상황. 거래처의 자금 압박과 은행의 차입금 변제 압박이 공장 전체의 운영을 맡고 있는 제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회사의 미래에 희망을 보았고, 저의 40대를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까지 불태웠다고 생각했기에나 더욱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결국 회사는 성장하여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조직 안에서는 결국 대표진과의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아무리 열정을 쏟아도, 아무리 회사를 위한다고 해도, 결국 나는 '직원'에 불과했다는 것을.
"공장 총괄 임원을 맡겨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퇴사를 결심한 이유입니다. 돌이켜보니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만이 회사를 위한 것을 넘어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왔는데 결국은 그 모든 열정이 회사도, 동료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회사의 특정 인물들에게만 좋은 일 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보고 배운 것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그중에는 좋은 것도, 씁쓸한 것도, 아쉬운 것도 많습니다.
그중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를 가장 씁쓸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대부분의 브랜드 업체들이 제품력보다는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달에 걸쳐 함께 제품을 개발하여 효과 좋은 제품을 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원가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개발 제품의 레시피를 전면적으로 재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제조업체에서는 고객이 개발한 레시피를 토대로 생산도 하지만, 개발 여력이 적은 고객사들을 위하여 자체적인 레시피도 많이 개발합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좋은 효과를 내는 영양제 레시피임에도 불구하고 채택되지 못한 훌륭한 레시피들을 동료들과 함께 직접 설계했던 경험도 많습니다. 모든 실험 데이터가 효과를 증명했던 제품들인데, 생산을 맡기는 회사들은 오직 "얼마의 이익을 챙길 수 있나"에만 관심이 있었죠.
그래서 역설적으로 저에게는 효과 좋은 레시피들이 쌓여갔습니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보석 같은 제품들의 노하우가 제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죠. 그때는 개발의 노력이 선택을 받지 못해 억울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만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은 제게 좋은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마지막 다녔던 회사는 제조 공장이 건설되기 전에 입사하여 모든 세팅을 했던 곳이었습니다. 공장이 완공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바로 생산은 하지 못합니다. 생산 설비의 안정화도 있어야 하고, 공장 안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근무환경도 조성을 해야 하기에 공장의 건설보다 완공 이후가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합니다.
공장의 완공 및 모든 행정적 인허가가 진행되고 있을 때, 공장의 계단에서 쓰러지면서 팔꿈치가 부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팔꿈치로 바닥에 떨어지다시피 하여 팔꿈치를 못쓸 수 있을 거라는 진단이 나올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고, 약 한 달가량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 큰 부상이었기에 대형 종합병원에 생전 처음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수많은 환자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보았던 수많은 환자분들 중에서 살아는 있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환자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때 과연 그분들처럼 병상에 누워만 있는 삶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꼭 건강해야만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건강만은 꼭 지켜야 하겠구나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던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혹시라도 내가 내 브랜드를 가지게 되면, 그때는 꼭 가장 정직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건강식품 제조업체에 다니면서 많은 고객사의 제품을 생산해 봤지만, "내 가족에게도 권할 만한 브랜드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실이 가장 큰 동력이 되었것 같습니다. 어떤 제품이 좋은지, 어떻게 하면 안전하면서도 효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품질관리와 품질보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으로 쌓인 모든 노하우를 동원해 정말 내 가족에게도 먹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도 컸습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며 건강식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졌거든요. 수많은 제품들이 쏟아지는 시장에서 내 브랜드가 과연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그래도 확신은 있었습니다. 제품력만큼은 자신 있었으니까요. 이익보다는 효과를 우선시하는 나의 철학과 노력이 함께한다면, 분명 소비자들이 알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 믿음이 빠르게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2024년 6월 30일, 퇴사 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지방 근무로 떨어져 살았던 가족들과 다시 함께 살게 된 것만으로도 저는 기뻤습니다.
하지만, "퇴사"라는 말만 들어도 걱정하던 가족이었기에, "창업"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불안정과 경제적 침체 속에서 50대 가장의 창업이라니, 가족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그래서 먼저 아빠로서, 가장으로서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습니다. 그동안 회사일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함께하지 못했던 여행도 하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죠.
그리고 2024년 11월 1일, 드디어 사업자등록증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날 저녁, 따뜻한 식탁에서 가족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어."
사업자등록증을 보여주며 그동안 준비해 온 사업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우려와 달리 가족들의 반응은 따뜻했습니다.
"아빠의 성실함과 책임감이면 충분히 좋은 제품이 나올 거야. 소비자들도 빠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좋은 제품력은 분명히 알아줄 거야."
그 응원의 말들이 제겐 그 어떤 투자금보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50세에 뛰어든 창업의 바다. 때로는 거친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경험이라는 나침반과 가족이라는 든든한 동반자가 있기에 항해를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