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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Dec 01. 2023

빵과 헤어질 결심

새해 계획을 세우다가

내일이면, 아니 몇 시간 후면 이제 곧 12월이다. 2023년도 이제 한 달 밖엔 안 남았다.

남은 한 달이다 생각하고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하려고 하면 뭔가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슬쩍 새해 계획에다 집어넣고, 한 달 앞서 새해를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12월에 할 일들을 정리해 봤는데...    


- 글 (내년엔 계약 2건 달성)

- 소식 (밀가루, 설탕 끊고 건강한 음식 챙겨 먹기)

- 운동 (최소 주5회 헬스클럽 도장 찍기)

- 독서 (사두고 안읽은 책 마저 읽기)


복잡하게 말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올해 계획이 그냥 다 내년 계획이란 뜻이다.

사실 근 십 년 내, 디테일에만 차이가 있을 뿐, 나의 새해 계획은 바뀐 적이 없다.

나에게 새해 계획이란, 졸업 요건을 채우지 못해 작년에도 올해도 졸업반이기만 한 학생들!? 그러니 사실 나는 해가 바뀐다고 해서, 크게 아쉬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 사이 나만 뭐 하나 딱 부러지게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좀 한심스럽다. 휴...


일단 소식과 운동은 건강을 위한 평생 숙제니까 그렇다 치고.

일. 아니 글! 만일 내가 돈도 잘 벌고 명성도 있는 그런 작가였다면, 새해 계획에 "계약 2건 달성" 같은 건 있을리가 없다. 그 대신 올해는 몸을 생각해서 일을 좀 줄이자는 차원의 "계약은 2건 이내로만"이 있으면 모를까 (같은 두 개라도 느낌이 확 다르다잉?)  

그런데 나는 십 년 넘게 신인 작가에 최근엔 중고 신인이란 말도 듣는 사람. 그러니 여전히 나의 새해 계획엔 레귤러 한 일의 수급이 가장 상단을 차지할 수밖엔 없는데...

그것도 뭐 당장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는 문제이니, 넘어가고....


다음은 사소한 것 같지만 매년 내가 실패하고 매년 또 계획하는 한 가지, 밀가루 끊기! 늘 그렇지만,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밀가루를 끊으려면 나는 빵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하는데, 매번 그걸 못해서 반복만 한다.

빵은 나에겐 마치 끊어내지 못하고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연인같은 느낌. 그 중에서도 굳이 따지자면 나쁜 남자 스타일의 연인 같다. 나에게 잘 해주지도 않고 득이 될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지독한 매력을 발산하며 빠져 나오려고 하면 더 빠져 들게 만드는 그대는 나쁜 남자, 우후후~~~

평소 손발이 차고 잘 붓고 소화도 잘 안되는 나는 여러모로 밀가루를 먹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그걸 스스로도 잘 알기에 한 번씩 빵을 끊으려고 시도하지만, 끊자고 들면 어쩐지 더 땡긴다.

며칠 끊었다가도 눈 앞에 먹음직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는 빵들을 보면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 입안으로 우겨넣곤 하는데…

그래서 생각한 게 아예 끊는 대신 적당히 먹기.

그런데 이게 또 고통이다. 진열대 가득 쌓인 갖가지 빵들 중 몇 개만 골라 사각의 트레이에 담는 일만큼 고통스런 일이 또 없다. 고통은 고통인데 세상 제일 행복한 고통. (그래서 부러 즐기긴 하지만;)

특히나 저렴한데 종류까지 다양한 빵집이면, 그 고통은 극에 달한다. 먹어도 살찌지 않고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보장만 해준다면, 거덜을 내도 열 번은 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최근 빵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건 어찌보면 나한텐 다행이다.

아무튼 나는 이 정도로 빵을 좋아하는 사람. 진열대 위에 놓인 빵은 보는 것만으로도 내 눈을 정화시켜 주고, 갓 구운 토스트에 버터를 바를 때 나는 까슬까슬한 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 내 심신을 안정시켜 준다.  

그러니 빵은 나에게선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데...

남편이라도 밥파였으면, 결혼 후엔 어쩌면 빵과 조금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도 참 곤란한 게, 남편은 나보다 더 확실한 빵파다. 이 사람은 삼시세끼, 한 달 내내도 빵만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가끔 한 번씩 내가 한국사람이 아니라 미국사람과 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

그래서 우리는 뜻이 맞아 맛있는 빵을 맛보러 갈 때 그 어떤 때보다 부부 금슬이 좋다.

우리는 거의 매 주말마다 아침을 먹으러 가는 단골 빵집이 있고, 빵 먹방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고, 여행을 갈 땐 그 지역 빵 맛집 두어 개 정도는 들러줘야 직성이 풀리는, 그야말로 빵빵부부!

그런데 역시 남편도 나도 빵 살이 제대로 올라 몸까지 빵빵해진 게 문제다. 남편은 탄수화물 과잉으로 만병의 근원인 대사질환을 얻었고, 나는 수족냉증에 소화불량을 달고사니…. (휴)

어렵다. 이 놈의 빵 어찌 해야할지..

되도록 건강한 빵을 적당히 먹으려곤 하지만, 건강빵만 먹다 보면 안 건강한 빵도 땡기고, 아예 입에 안대면 모를까 입에 대기 시작하면 적당한 게 뭔가 싶은데….

진짜 건강의 적신호가 오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게 빵을 딱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 그런 이별은 너무 큰 비극이다.

그 전에 나는 스스로 차츰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려고 한다.

아 내겐 너무 어려운, 빵과 헤어질 결심!

일단은 내년 계획에도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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