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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Jul 10. 2024

불면의 밤

잠들지 못하는 갱년기 여성

호르몬의 장난질.

원래 낮에는 활력을 주고, 밤에는 달고 포근한 잠을 주는 게 호르몬이다.

그런데 왜 요즘 나에겐 호르몬이 낮엔 땅이 꺼질 듯한 몸을 주고, 밤에는 말똥말똥 잠들지 못하는 정신을 주는 걸까.



안다. 맞다. 이건 장난질도 뭣도 아닌, 그냥 내가 갱년기 여성이라서다.

좋은 역할을 하는 호르몬도 밖에서 일부러 넣어주지 않는 한, 내부에선 잘 나오지 않는 이 시기의 여성.

그래서 폐경을 진단했던 의사 선생님도 내게 호르몬제 복용을 권유했더랬다.

"호르몬제를 먹고 나면 제일 먼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건 잠이예요. 한 번 드셔 보세요."

처음엔 나도 혹했다. '잠만 잘 잘 수 있다면야...'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남들과는 다르게, 40중후반의 조금 이른 나이에도 호르몬제 복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했던 나인데...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는 호르몬제 복용을 않고 있다.  

처방받아 구입해 온 약도 내 화장대 서랍 속 그대로다.  

이유인즉슨, 호르몬제를 처방받아 집에 들고 온 날, 나는 굳이 알아서 좋을 게 없는 사실 하나를 알아버렸다.

갱년기 증상 개선에 쓰이는 특정 호르몬제(하필 내가 처방받은 약)가 일부에서 몸이 붓고 살이 찐다는 부작용이 있다는 거였는데.

안다. 일부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이고, 부었던 몸도 운동과 식습관 개선 등으로 몇 달만 지나면 제 자리를 찾을 거다.

그런데 나는 때마침 여름 휴가를 앞두고 다이어트를 결심했던 차였고, 일시적일망정 더이상 붓고(살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숙면 대신 살찌지 않는 몸을 택했는데...

실은 숙면 같은 건 꼭 호르몬제가 아니더라도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일부러 바깥에 나가 햇볕을 쏘이고, 숙면에 좋은 차를 끓여 마시고, 적당한 운동을 해도... 숙면에 좋다는 건 샅샅이 찾아 열심히 다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나의 불면증.

갱년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약간의 집안 내력도 있다.

올해 70대 중반으로 갱년기 같은 건 진작에 넘어버린 엄마도 두 시간 단위로 깨는데다, 남자인 친동생도 지독한 불면증에 수면다원검사까지 한 적이 있는... 맞다. 우리집은 숙면과는 거리가 좀 먼 집안이다. (불면증도 유전?)  

아무튼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힘들고, 나는 나대로 힘든 요즘인데...


잠이 안 와 오만 생각이 다 드는 걸까, 오만 생각을 끄집어내 하다보니 점점 더 잠이 달아나는 걸까?

아마도 이것도 양쪽 다 일거다.

그래서 이렇게 잠이 안 오고 생각만 쏟아질 땐, 일단 누워있지 않고 침대를 떠난다.

책상 앞으로 가 책을 읽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해보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는 정신.

이번엔 다시 침대로 와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손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잠을 재워주는 상상도 해본다. 사방팔방 맥락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그러다 또 문득, 내가 잠자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러다 영영 못자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가...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다.

실은 간밤 그것들이 내가 잠이 안 와 생각을 했던 건지 아님 꿈을 꾼 건지, 그조차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 때문에 또 몸은 천근만근.  


잠을 못 자면 가장 걱정인 건 역시 면역력 저하다.

2,30대 젊은 시절엔 날밤 정도 새우는 건 걱정 축에도 안 꼈다.

'죽으면 계속 잘 잠, 오늘 못자면 내일 자면 되지'가 생각도 건방졌던 그때의 나였는데... 그때는 술 먹고 밤새 워 놀 욕심에 삽겸살을 먹으면서도 (상추가 잠을 부른다는 말에)상추쌈조차 안 먹던 나였는데...

요즘은 잠을 잘 못자면 혹여 몸에 이상이라도 생길까 안절부절인 나다.

이건 작년 가을 불면의 밤을 보내다 난데없이 찾아왔던 이석증 탓이 크다. 정말이지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그 고통...

그러니 요즘 나는 온통 정신이 잘 먹고 잘 자는 데에만 집중돼 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부터가 활기찬 일상의 시작이긴 하지만, 고작(?) 먹고 자는 데 온 정신을 쏟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이러나 저러나 쉽지 않은 갱년기다.




이건 여담.

그런데 지난 금요일 밤, 오랜만에 레드썬 같은 숙면을 취했다.

오랜만에 만난 학교 동기와 기분 좋게 술 한 잔을 했는데, 그 덕이었을까.  

집에 오자마자 정신 없이 씻고 누웠는데, 그 다음부턴 기억이 없다. 일어나보니 아침이었다.

그런데 지켜봤던 남편 왈,

"방에 웬 아재인가 했어. 농번기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평상에 누워 잠든 아재가 드르렁 드르렁..."


압니다. 음주는 숙면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싫어요. 저도 농번기 아재나 회식 후 부장님처럼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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