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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Nov 16. 2022

영원한 숨바꼭질

해외입양인의 그늘

강강약약(強強弱弱). 나는 약자에 약하고, 약자의 슬픔에는 더 약하다.

지난날의 볼런티어는 자주 슬펐지만 고통이 희망에 가려져 오래 슬프진 않았다.

그러나 해외입양의 그늘이 고통스럽게도 긴 역사인 건 분명했다.


타자의 고통에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라 진실을 볼 용기를 종종 놓쳐버렸다.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해 이성적으로 정의를 실천하기 어려워했다. 가슴 아픈 상황 앞에 눈물을 참지 못해 감정을 들키거나 냉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유기견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아픈 현장을 보기 몹시 두려워해 왔다.

이 모든 불편이 엄살이 아니라는 것이, 내가 활동가가 될 수 없는 단적인 이유였다.

나의 이러한 한계를 인정한 후로 마음도 나약도 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우회하곤 했다.

어쩌면 이건 또 다른 유형의 비겁인지도 몰라 나의 나약함이 자주 부끄러웠다.


얼마 전 유튜브로 지난 시사 프로에서 다룬 <해외입양 잔혹사>를 보게 되었다.

다수의 무수한 슬픔 중 내 친구 J를 생각했다.

약하고 어린아이의 슬픔이라 아프고, 내 친구의 슬픔이라 더 아픈.

당시 재혼 가정에 있던 엄마의 거부로 친구 J는 끝내 엄마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날 우리는 가슴으로 이해되지 않은 것들을 머리로 이해해야 했다. 나조차도 이해 안 되는 현실을 J에게 설명하는 긴 밤이기도 했다.



프로그램에서 조명하는 해외입양의 과오는 씻으면 지워지는 얼룩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 역사의 결과들이 살아가고, 그 생명들이 역사를 찾아 돌아오는 현재이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의 상처 모두, 자신은 누구이고, 이곳은 어디인지 물을 수 없던 아기들의 몫이었다.

그들이 성장해 자아를 찾아갈 무렵, 그들 손에 쥐어진 건 사실과 다른 기록이었다.

입양 과정 중 사망한 다른 아이의 이름이었고, 버린 게 아니라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가 있었다.

J 역시 입양기관의 정보가 실제와 달라 우리의 여정은 애를 먹었고, 시간을 다투는 우리의 속도 타들어갔다.  


다큐 속 인터뷰를 보며 많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진실했고, 옳았고, 겪은 아픔이 너무 컸다.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해외입양인들에 대한 덴마크 입양인 ‘니아'의 말이 한참 동안 맴돌았다.


피터와 덴마크 한인 입양인들이 하는 일은
그저 화가 나서 하는 게 아니라,
주장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건 다른 거예요.
친부모를 찾은 입양인 친구들이
모두 행복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평화를 찾았어요.
저는 이 평화라는 것이
입양인이 찾아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해요.

내 기억 속 입양인들 역시 누구도 과거에 화를 내지 않았다.  

그들은 성숙하고 희망적이었으며, 원망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기원을 듣고 싶어 했다.

‘역사’라는 퍼즐이 맞춰지지 않아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으니까.

인정도 용서도 학습인 듯 그들은 스스로 이해하고 배웠다.

혼자 삼키는 아픔 없이는 불가능한 학습이었다.   


과거를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의 기원은 지금의 우리에게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무수히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삭제된 역사를 찾으며 끝 모를 숨바꼭질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만질 수 있길.

더는 부유하지 않고, 자신에게 도착하게 되길.

그들이 아직 만나지 못한 뿌리가 있는 곳에서 타국의 친구들을 응원한다. J에게 안부를 전한다.


☆오늘의 BGM

How insensitive (출처: Excursionist’s Lounge Youtube)
Mother's heart (출처: Ljones - Topic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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