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과 제철 예찬
제철음식으로 계절이 확장되는 기쁨을 만난다.
제철의 도착을 알리고, 기쁨을 지탱하는 일종의 계절 음식처럼 제철이 오면 구미가 더 당기는 것들이 있다.
내가 귀여워하는 대상 중 대표적인 겨울 사물은 바로 '호빵'이다.
호빵에 대한 나의 애착은 간지럽고 견고하다.
맛이 있어 호떡을 좋아한다면, 상대적으로 호빵은 애정의 사유가 복합적이다.
호빵의 어마어마한 공감각적 매력을 알아차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호떡을 좋아하지만 호떡이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마음이 정 급할 때를 제하고는 (여기에서 마음이 급하다는 건 빨리 먹고 싶어 못 참겠다에 해당한다)
호빵은 전자레인지가 아니라 꼭 찜기에 쪄 먹는다.
이건 호빵에 대한 나의 진심인데, 흔하고 평범한 대상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는 호빵을 쉽게 만날 생각이 없다. 품이 좀 들더라도 기다림의 정성을 들이고 싶다.
우선 호빵은 타고난 생김부터가 호감형이다.
뽀얀 피부에 정원(正圓) 형의 욕심과 경계 없이 순한 자태가 사랑스럽다.
날씬하지 않아도 맵시 나는 언덕을 가졌다.
거친 개성의 크로와상이나 작심하고 멋을 낸 케이크와는 또 다른 담백미가 있다.
미끄러져도 다치지 않을 완만한 언덕에 살포시 눕는 상상도 한다.
흰 원을 반으로 가르면 온기와 함께 드러나는 통통한 팥도 인심 좋은 호빵의 호의 같다.
미덕을 감춘 하얀 겸손의 위장술과 빵 안을 완벽하게 정복한 팥의 반전.
담백한 빵 냄새에 달달한 팥 냄새도 입맛을 당긴다.
한 김 뺀 살포살포한 흰 살을 와앙 베어 물 때의 쫄깃한 첫인상 뒤로 훅 들어와 입천장에 닿아 버리는 뜨거운 팥이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뭐니 뭐니 해도 호빵의 진수는 촉각이다.
따뜻한 호빵의 귀여움을 만진다.
갓 쪄 낸 호빵의 정중앙을 살짝 누를 때 못 이긴 척 져주는 폭신함이 좋다.
호빵의 촉감을 말할 때, 사전에 없는 나만의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 느낌을 만족스럽게 담을 단어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바로 '살포살포하다' 이다.
살포살포를 발음할 땐 힘을 최대한 뺀 채 '살'을 길게 발음해야 그 맛이 산다.
발음기호를 적자면, [사알-포오 사알-포오]와 같다.
'폭신폭신'보다는 리드미컬하고, '말랑말랑'보다는 절제미가 있다.
곱고 하얀 살의 살포살포함은 보살핌을 부르는 순한 매력이 있다.
편하다고 쉽게 대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과 같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호빵은 '분식집에서 판매하던 찐빵을 가정에서 먹을 수 있도록 제품화한 것'이라 되어있다.
호빵은 찐빵의 가정 보급형인 셈이다.
그러한 면에서 호빵은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반려동물 같다.
반면, 찐빵은 크기나 생김 면에서 좀 더 옹골차고 야무지다. 생김만 봐도 둘의 분간이 쉽다.
어디 가서 밀리지 않을까 걱정되는 호빵과 달리 찐빵은 사회생활에 다져진 야무진 야생성이 있다.
더욱이 찐빵의 ‘찐' 역시 직관적이라 이름에서 이미 정체를 다 들키고 만다.
하지만 호빵은 좀 다르다.
호호 불어 호빵, 호호 웃어 호빵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의 단어다.
원조 팥에서 야채, 피자, 초코, 크림치즈, 감동란 등으로 나날이 진화 중이지만 다양의 질주가 내 경우 궁금하지 않다. 정확히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엄연히 원조 팥을 향한 처음 사랑 그대로다.
그러고보면, 호빵과 나는 같은 겨울 출신이다.
가을을 좀 더 붙들고 싶은 마음 반으로, 호호 불고 호호 웃는 겨울을 기다린다.
사계절 다 사랑한대도 우린 겨울의 해후가 제격이다. 사랑과 그리움이 실과 바늘처럼 필연의 짝꿍이듯 더 끈끈한 사랑을 위해 한 여름의 이별쯤은 견딜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