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계절을 산책하며
하이쿠의 미학은 '계절과 함축'이다.
계절이 물든 키 작은 언어(季語)들이
말을 아끼며 서정을 담는다.
그 서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자유로운 것이어서
하이쿠의 번역은 하나의 정답이 없다.
침묵 속에 여러 개의 정서가 깨어있다.
자연과 인생의 순간을 포착하는 정서는
자신의 호흡에 집중해
온전히 지금 순간을 알아차리는
마음챙김과도 통한다.
구(句) 사이의 여백이 깊은 호흡을 만들고,
여운을 남긴다.
가을을 한 뼘 남겨두고
계절을 지탱하는 언어의 힘으로 미련을 달랜다.
단풍을 줍고 하늘을 감상하며
남은 계절을 산책한다.
마음을 쉽게 내어주던 계절,
파아란 가을은 내게
그런 시간들이었고, 고마움이다.
마음을 쉬고 보면
새들이 날아간 자국까지 보인다
by 사초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
by 나쓰메 소세키
늦가을 찬비
옛사람의 밤도 나와 같았으려니
by 요사 부손
달구경 하는 사람에게 구름이 잠시
쉴 틈을 주네
by 마츠오 바쇼
달빛이 너무 밝아
재떨이를 비울 어둔 구석이 없다
by 후교쿠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
by 소칸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 두 개
by 마사오카 시키
나는 떠나고, 그대는 남으니
두번의 가을이 찾아오네
by 요사 부손
저 보름달을 따다 주세요 하고
아이가 운다
by 고바야시 잇사
그가 한마디
내가 한마디
가을은 깊어 가고
by 다카하마 교시
내가 나를 손짓해 불러 본다
가을 저물녘
by 요사 부손
외로움에도
즐거움이 있어라
저무는 가을
by 요사 부손
부러워라
아름다워져서 지는
단풍나무 잎
by 가가미 시코
저 달에게 배우는
달구경이어라
by 후지모리 소바쿠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
by 고바야시 잇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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