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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Nov 14. 2022

삶의 심층놀이

[문장 우리기] #14. 책 <일만 하지 않습니다>_심층놀이

훌라(Hula) 수업 후 함께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서로의 긴 공백을 나누었다.

코로나 틈틈이 줌(Zoom) 수업이 열렸지만, 초급자인 내겐 서로의 공기를 나누는 오프라인이 더 친숙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시간은 꿈같고도 친숙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그동안 어떤 행복을 찾으며 보냈는지 S가 물었다.

'행복’이라는 직관적 물음에 고민 없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어 저릿하니 행복했다.

함께 하는 훌라가 그리웠고, 좋아하는 전시와 여행, 글을 쓰며 행복을 채웠다.

여기에 점심 산책과 테니스도 빼놓을 수 없었다.

모두가 내 삶을 채우는 심층놀이였다.

심층놀이(Deep play)*는 하던 일을 멈추는 '수동적 휴식'에서 진화한 의도적 휴식의 한 영역이자 일을 침해하지 않는 취미를 말한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활력을 되찾고 정신적으로 생산성을 향상하는 기술.

쉽게 말해 일과 휴식의 경계에서 저울질을 할 때, 보란 듯 '그 둘은 한 가족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심층놀이는 벤담이 처음 언급한 표현으로 놀이에서 얻는 몫보다 그 놀이를 위해 감수해야 할 몫이 커서 비합리적일 때를 뜻한다. 이후 인류학자 기어츠가 발리 섬의 닭싸움을 보면서 합리성에서 벗어나더라도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몰입함으로써 삶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한다는 의미로 심층놀이의 개념을 재정의했다.


심층놀이는 자기 자신에게
큰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단순한 만족감을 넘어
개인적으로 중요한 행위 중 하나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와 매력으로 각자의 심층놀이를 가진다.

발견과 몰입의 과정에서 자아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삶을 복합적으로 확장해간다.


놀이에 몰입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기술을 사용하며, 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족감을 얻고, 과거와의 연결 고리를 찾는 모든 과정 속에서 심층놀이는 일에서 느끼는 좌절을 극복하는 강력한 휴식 수단이자 회복의 원천이 된다. 또한 뜻밖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갖도록 도와준다. P265


수십 년을 심층놀이에 꾸준히 몰입하다 제2의 직업을 만나거나 예상치 못한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세계는 알고보면 가지각색으로 무궁무진하다.

은퇴 후 70세의 나이로 작가의 삶을 시작한 신경외과 의사, '와일더 팬필드'

연구와 여행, 가족 얘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통의 편지를 어머니와 주고받으며 글을 써온 루틴은 그의 작가 인생의 부화기가 되었다. 편지라는 사적 행위가 정기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되며, 자연스레 습작과 관찰/통찰력에 이르기까지 작가로서의 재능을 길러주었다.

낮에는 공무원으로, 밤에는 비평가와 작가로 활동해 온 '브램 스토커'는 이후 극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오래 사랑받은 19세기 문학 작품들과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기한 명배우 '헨리 어빙'을 무대에 올렸다. 글쓰기도 소홀하지 않았는데, 1890년경에는 중세 역사가 가미된 고딕 소설과 신비주의와 초자연적 요소가 들어간 빅토리아 시대의 매력을 주제로 한 소설을 썼다. 그렇게 글을 쓴 지 7년 만인 1897년,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세상에 나왔다.  


또 다른 심층놀이의 주인공은 영국의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이다.

그는 1915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 속 '휴식'에 큰 의미를 두고 있던 그는 일상의 주요 관심사에 단순히 불을 끄는 행위뿐 아니라 새로운 관심 분야에 불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써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단순히 쉬는 게 아니라 마음의 다른 부분을 사용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말이다.

처칠에게 그림은 끊임없이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게 하며 평생 도전할 수 있는 자극제였던 셈이다.  


모든 과정이 보람 있지만
그림에는 끝도 없이 길고,
끝도 없이 아득하며,
끝도 없이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

                                                               - 윈스턴 처칠


그림의 다채로운 색들을 두고 사랑스럽고 유쾌하다고 말한 그의 언사에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처칠이 남긴 그림들


<일만 하지 않습니다>의 저자인 알렉스 수정 김 방은 말한다.

일과 심층놀이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개인의 특징에 맞게 맞춤식으로 만들어지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떤 형태든 심층놀이는 일에서 느끼는 도전의식과 만족감을 좀 더 즉각적으로 똑같이 느끼게 해 준다.
또 다른 기술과 인생관을 개발할 기회도 제공한다.
개인이 선택한 심층놀이는 그 사람의 개인적 관심사나 가족이 살아온 길을 충실히 반영한다.
의도적인 휴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의미 없이 뿔뿔이 흩어질 수 있는 별개의 행위들을 하나의 세계로 통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삶은 별개의 행위들로 조각조각 분리돼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충만해진다.  P284


심층놀이는 단순히 취미라는 즐거운 환기에서 더 나아가 삶의 엔진을 발견하는 도구와도 같다.

그 시작은 '나에 대한 몰입과 탐구'다.

오늘의 나의 일은 내일의 끝이 있겠지만, 글을 쓰고, 훌라를 추고, 산책을 하며 내 마음을 뛰게 하는 시간은 끝이 없으리라 힘껏 소망한다.

현재의 행복에 기여하듯 미래의 행복에도 함께할 거란 예측에 동의한다.


내게 심층놀이'행복'의 다른 말이자 쾌락과 성장 그 한가운데이다.

그렇기에 함께 살아가는 필요조건이다.

내가 느끼는 행복처럼 사랑하는 이들의 심층놀이를 독려하며 끝없이 응원하고 싶다.  


*메인 이미지 출처: Pexels.com


★ 월요병을 잊게 할 오늘의 추천 BGM ♬♪

You Are the Star (feat. Alison David) (Akshin Alizadeh Remix) (출처: Ed Lee - Topic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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