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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an 13. 2023

코로나, 헤어질 결심

문득, 오늘 #2. 일상을 기다리며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감각 구석구석 막을 씌운 듯 현실감이 없다.

여상한 일상도 액자식 구조처럼 타인의 것 같다.

물 속에 있는 듯 '맛, 냄새, 소리'의 감각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대체로 나는 많이 느려졌다.


나흘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남은 사흘은 약에 취한 기분이 싫어 염증제거용 알약 하나를 제외하곤 그마저도 멀리했다.

전화를 손에서 놓고 지내며 여러 미디어와도 자진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회사 복귀를 하루 앞둔 밤, 현실감을 줄 무언가를 찾았다.

그간 미뤄두었던 영화 <헤어질 결심>.  


슬픔도 둔해진 걸까. 밀물 같은 슬픔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좋았다.

영화 곳곳에 심어둔 미쟝센도 좋았고, 서래와 해준이 좋았다. 여기에 또 하나, 생각보다 순한 맛이 마음에 들었다.

감정과 피에 취약한 나는 백 번 마땅한 복수라도 하드고어류의 영화를 피해왔다.

잔인을 낱낱이 드러내는 연출도, 영화 속 인물의 고통도 모두 원치 않았다.

그러한 면에서 지독하게 매캐하거나 고약하게 찝찝한 박찬욱의 영화는 내 타입이 아니었다.

다만, 15세 관람의 호평작에, 멋진 배우인 박해일과 탕웨이를 기대했다.   


영화의 말미에 사랑인 서래는 먼 바다에 버려야 할 전화기처럼 스스로 바다에 잠겼다.

서래가 자신을 미결로 바다에 잠식시키는 사이 서래를 목 놓아 부르던 해준이 가여웠다.

서래가 곁에 있어도 곁을 떠나도 해준의 붕괴는 반복될 것 같았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생각해 자신을 버리는 사람들이니까.

둔해져 먹먹한 감각들이 서래와 오버랩되며 물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서래는 해준의 사랑이 끝났을 때 자신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했지만 이포의 해준 역시 다르지 않았으리라.

막지 못하는 파도처럼 또다시 실수를, 사랑을 반복했으리라 생각한다.  

유력한 증거를 바다에 버리라며 미결로 만들어버린 형사의 말을 사랑한다로 정확히 이해한 똑똑한 외국인 여자에게도 해준은 결코 붕괴되지 않은 사랑이었으므로.  


영화 탓일까, 컨디션 탓일까. 아님 좋아하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일까.

오랜만에 브런치를 로그인하며 현실감을 찾지만 그럼에도 나의 몸과 정신은 여전히 물 속에 잠겨있는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이 무력감을 인정한다.

일상에 다시 젖기까지 여러 하루를 힘주어 보내야 할 것이다.

간만의 단비가 다정하고 아늑해 기분이 좋다.  



# [추신] 따뜻하고 정다운 이웃작가님들과의 소통과 애정 어린 정독은 조금 더 몸이 회복된 후 한 걸음씩 돌아가려 합니다. 다정하고 건강한 시간이시길 바라봅니다.



#오늘의 추천 BGM

프랑스 일렉트로닉 밴드 Paradis의 'Toi Et Moi'는 '당신과 나'라는 뜻. 나른하게 내리는 비와 음악을 따라 가볍게 몸을 흔들며 즐겨보길 권한다.

Paradis - Toi Et Moi (Official Video) (출처: ParadisVEVO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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