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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Oct 30. 2023

계절의 오브제

반짝이는 계절의 파리

계절을 대변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별다른 힘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계절을 오간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처럼 먼 계절을 그리워하는 시간은 대개 극한과 극서의 절정기다.    

한창의 여름을 지날 무렵이면, 겨울 오브제들로 계절을 중화시킨다.

영화 '나 홀로 집에'나 발레 ‘호두까기인형'처럼 향수가 심어진 겨울 외에도 올드팝 'Let it snow'나 김광진의 '눈이 와요' 그리고 미셸 들라크루아(Michel Delacroix)의 그림처럼.


미셸 들라크루아의 유년 시절이 배어 있는 파리는 그림 속 표정이 말하듯 사랑 그 자체다.

진국의 추억이 숨 쉬는 공간답게 묘사 역시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우세하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모든 오브제에 작가는 부지런히 사랑을 심어두었다.

도시 위로 소복이 눈이 내린 전경이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면, 각자의 시간에 충실한 세밀한 오브제가 어느새 행복의 파리로 안내한다.

굴뚝에 피어나는 연기, 신이 난 강아지, 눈을 굴리며 노는 아이들, 트럭에서 산 크리스마스트리를 안고 집으로 가는 퇴근길의 아버지, 연인의 포옹과 한 밤의 춤까지 각자의 감정과 시간에 충실한 인물들 사이로 행복의 냄새가 퍼진다.

작가의 정교한 묘사로 살아나는 이야기들은 한 편의 동화처럼 속편을 상상하게 한다.

사실 그같은 정경은 내 기억 속 파리와는 거리가 있었는데, 내게 파리는 이상과 괴리가 큰 곳이었다.

자유로웠으나, 차갑고 지저분했다.

그리고 시작부터 꼬이는 사건도 있었고.


파리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가 되었고,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에펠탑부터 찾았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크기에 압도될 무렵 맞은편에서 윙크를 날리며 미소를 보내는 내 또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연신 실실 웃으며 걸어오는 그가 무서워질 무렵 갑자기 달려온 그가 내 가슴을 낚아채듯 움켜쥐었다 달아나 버렸다.

봉변에 놀란 나는 소리 지를 겨를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친구의 품에 안겨 오열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보다 어리고 겁이 많던 나와 파리의 인사는 에펠탑을 사이에 두고 강렬히 시작되었다.

여행 내내 파리의 낭만이 부서지는 장면과 함께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의 즐거움을 선물로 만나며 파리는 밀당하듯 냉온을 반복 제시했다.

이방인의 여행은 설렘만큼이나 집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함께 하는 곳. 미워할 수 없는 파리다.

이제는 유연해진 오늘의 내가 그를 따라 따뜻한 파리를 여행한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 눈 위의 춤추는 연인이 된다.


그리고 어느덧 그림 속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내 곁에는 걷고 싶은 계절, 가을이 아직 더 남아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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