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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pr 19. 2022

변화의 다른 말

유연한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자라면서 생각과 시각, 많은 것이 바뀌었다.                            

변화는 시간을 타고 촘촘히 오기도 하고, 삽시간에 다녀가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몸의 나이테가 더디게 느껴질 때도 있다.

변화의 재미있는 사실은 열린 만큼 닫힘도 따라온다는 거다. 꺼려하던 것을 받아들이거나, 이와 역행해

스스럼없던 것을 거부하게 되는 일이다.

과연 이러한 변화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한 번씩 알고 싶다.


유치원 소풍 때로 기억한다.

처음 보는 남자애가 쪼그린 채 잔디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내가 뭐하냐고 물었고, 그 애는 잡고 싶은데 무섭다고 했다. 그 애 시선 끝에 방아깨비 같은 아이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녹색 아이를 잡는 데 성공한 나는 그 애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줄게 나랑 친구 할래?

빠르게 끄덕끄덕하던 고갯짓이 그 애에 대한 기억 전부다. 이름은 물론 얼굴마저 아득하다.

그날 이후로 우리가 정말 친구가 되었는지도…


다만, 오늘의 내가 곤충만 보면 질겁해 도망간다거나 가죽 재킷을 종종 걸치는 일련의 변화들은 누군

가 내 생각의 스위치를 건드렸나 싶은 거다.


어린 눈에 가죽은 무섭고 세 보였다.

왜 세상 어른들은 하고 많은 예쁜 옷을 두고 가죽을 입는 걸까. 거기에 한 술 더 떠 바지까지 입은 어른을 보는 날에는 내가 숨고 싶은 거다.

그런 내가 바이크 하나 없이도 가죽 재킷을 잘 입는 어른이 되었다. 물론 외투가 최적의 난이도이므로

바지로까지 확장할 용기는 추호도 없다.

다만, 팔다리가 가젤처럼 길고 가느다란 내 친구가 가죽바지를 입었던 날 심쿵했던 기억은 인정한다.




달라진 또 하나는 돈의 가치를 이해하게 된 거다.

돈으로 할 수 있는 많고 편리한 행복들을 인정한다.


나의 중학교 수학을 맡았던 과외샘은 착한 인상에 마음씨도 착했다.

수학이 싫은 내가 암만 딴지를 걸어도 짜증 없이 다 받아주었다.

문제를 풀어보라 하면 졸립다고 하거나 연필을 까딱이며 애를 먹여도 오빠는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 주

는 사람이었다. 수학은 싫어도 오빠는 싫지 않았다.

그날 오빠는 도착한 순간부터 기운이 없었다.  

여자 친구랑 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오빠네는 미래를 확정한 장수 커플이었다.

폭탄을 먼저 터뜨린 건 언니였다.

진전 없이 연장되는 관계에 언니는 오빠가 변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오빠를 더디게 만든 건 마음이 아니라 집이었다. 오빠는 자신의 처지를 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사랑도 아닌 집을 사이에 두고 커플은 멀어졌다.

어른들의 사랑에 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속으로 생각했다. 내 눈에는 함정 같아 보였다.

- 오빠, 그깟 집이 뭐가 중요해요? 언니한테 어서 가서 결혼하자고 말해요!  

나는요 사랑한다면 단칸방에서 살아도 되고, 얼음을 깨고 냇가에서 빨래도 할 수 있어요!


지금 와 생각하면 내 입을 틀어막고 싶다.

'단칸방, 얼음, 냇가' 따위의 난데없는 단어들을 모조리 쓸어 담고 싶다.  

오빠는 '넌 아직 몰라'하는 표정을 지으며, 온실 속 화초를 대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알 건 다 알거든요?!”

난 진지했고, 내 생각 모두 진심이었다. 남의 깊은 속도 모르는 오빠에게 처음으로 서운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옛말처럼, 돈의 가치를 몰랐던 건 정말 약이었을까 아님 독?

그러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 후로도 꽤 오래갔다.




입맛이 변하듯 변화는 계속해 새끼를 친다.

상황에 따라 성숙해지는 기분도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삶을 지탱할 근육을 키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달리 말해 넘어지거나 부딪혀도 다치지 않을 유연함이기도 하고.

근육은 사용 안 하면 소실되므로 지속적인 힘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마음을 담아야 한다.

더불어 절대적이던 것들이 유하게 합을 맞춰가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이거 아님 절대 안 돼'라는 공식은 웬만해선 없다는 걸 안다. 변화를 품는 데 익숙해 간다.


다만, 끝까지 욕심내고 싶은 것들은 물론 있다.  

어른이 되는 것과 용기를 참는 것의 경계를 잘 구분하며 사는 것이다.

성실하되 행복한 어른으로 담백하게 살고 싶다.

왠지 이 세계가 살아볼 만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밤이다.

더구나 밤 하고도 봄(春)밤이다.


9 to 5 by Dolly parton (출처: Dolly parton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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