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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ug 19. 2022

버터와 수프 그 이상

영혼을 나누는 사이


내 집은
외관은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고 화려한 초록색 덧문들이 있다.
햇빛 가득한 광장에 위치해 있는데,
그곳에는 플라타너스, 협죽도, 아카시아 등으로
이루어진 녹색 정원이 있다.
집 안은 온통 흰색이고
바닥에는 붉은 벽돌이 깔려 있다.
그리고 지붕 위로 펼쳐진 그 짙은 푸른 하늘..
이 집안에서 나는
살고, 숨을 쉬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 <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중에서


고흐의 편지에서 내가 먼저 설렌 포인트가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이었다면 믿을까.

먹는 걸 좋아하고, 대체로 가리는 게 없는 내가 유일하게 까다로운 게 있다면 바로 '버터'와 '수프'다.

누군가의 명품백처럼 내가 사치를 부리는 카테고리이기도 하다. 그 둘에 있어 내 입맛은 단호하고 예민한 편이다.

예로, 오뚜땡 수프와 같은 레토르트는 불평 대신 생략을 택하는데, 버터도 같은 맥락에서 취급된다.

이따금 회사 구내식당의 양식 코너에 빵과 함께 제공되는 오뚜땡 버터와 수프 역시 먹지 않는다.

차라리 딸기잼을 택하거나 맨 빵을, 그도 아니면 메인으로 직행한다.  

간혹 아무 생각 없이 한 입 댄 순간은 아무 감흥 없이 꿀꺽 삼켜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레토르트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타협의 여지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두 가지 모두 어릴 적 식생활과 닿아있는데, 이면에는 향수가 스며있기도 한 것이다.

돼지고기를 아예 못 드시는 엄마와 맵고 뜨거운 걸 잘 먹지 못하는 동생의 식성 더하기 어릴 적 식습관, 우리 가족의 취향까지 담겨 아침은 밥이 아닌 빵이, 외식은 대체로 양식류가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내가 스테이크보다 더 좋아했던 건 화이트 루로 만든 고소한 크림수프와 따뜻한 빵 사이에 버터를 발라 먹는 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게 버터와 가장 짝짜꿍이 맞는 빵은 단연 하드롤이다.

개인적으로 갓 구운 빵 틈으로 버터가 녹아들며 쫄깃한 가운데 고소함과 촉촉함이 커지는 하드롤을 좋아한다. 버터 역시 가염보다는 무염인데, 무염은 담백한 빵과 시너지를 일으켜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빵과 함께하는 버터만큼은 좋은 것으로 까다롭게 고르게 된다.


버터(butter)의 어원은 라틴어인 부티럼(butyrum)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소(bous)와 치즈(tyros)의 혼합으로 탄생했다.

오늘날의 버터가 식문화로 한정된다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피부에 바르거나 상처의 연고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과 달리 선택적이고도 복합적으로 소비되지 않았나 싶다.

반면,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귀중품에 속하던 버터는 귀족들만의 향유물이자 향신료였다. 14세기에는 금식과 같이 인간을 현혹하는 것으로 분류되어 버터 사용 금지 조항이 등장한 역사도 있으니 버터의 마성 역시 역사도 알아보았지 싶다.

버터의 탄압기에 버터 사용을 허가하는 면죄부가 암암리에 성행했다는 점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손으로 버터를 만드는 방식 또한 여간 품이 많이 드는 게 아니었으니 기계의 힘을 빌어 대량으로 생산하는 지금의 세상이 다행이라 안도한다.  

반면, 밥에 계란과 참기름, 간장을 섞어 비벼 먹으면 으뜸인 '마가린'은 나폴레옹 3세의 요청으로 개발된 버터의 대용품이다. 황제의 요청으로 시작된 연구로 전투용 식량으로도 손색없고 휴대 또한 용이한 버터의 대용품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이름도 귀여운 마가린이다.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때로 마음이 지친 날도 따뜻한 수프와 빵, 맛있는 버터만 있으면 영혼마저 가볍게 치유되는 기분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내게 물어본다면, 내게 있어 버터와 크림수프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게도 버터와 수프 그 이상이자 영혼을 나누는 사이라 소개한다.  

순하게 보듬어주는 크리미한 매력을 변함없이 사랑하며 만나고, 또 사랑하는 사이라 말이다.

그러고보면 이 사랑은 귓속말을 닮은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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