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의 마음
다큐는 살아있고, 인간적이다.
힘을 빼고 말할 때 더 잘 들리는 대화와도 같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온전히 스며드는 기다림도 좋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록하는 것이 바로 다큐의 힘이다. 이 모두가 진실한 감정과 관심이 시작인 사랑에서 온다. 사랑에서 오는 세계다.
그러한 맥락에서의 다큐적 감성과 스토리를 좋아한다.
다루는 소재가 평소 관심사라면 더욱 마음이 가고.
주로 나의 관심은 '자연, 집, 동물, 누군가의 삶'이다.
내가 살고 있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다.
집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하듯 <건축탐구 집>과 <한국기행>도 애정한다.
<건축탐구 집>은 각지의 개성 넘치는 집들이 소개된다. 모두 철학과 사랑으로 지은 집들이다.
반면, <한국기행>은 집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연 가까이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집이 나를 키운다는 생각은 에너지를 채우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집에서 일어나는 생활이 곧 나이고, 집에 머물며 꾸는 꿈이 곧 삶이다. 사랑스러운 집을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래의 집을 짓고 꿈을 꾸는 상상으로 확장된다.
오랜 사랑인 '자연'을 풍족하게 만날 수 있는 다큐 또한 제법 많다.
내셔널지오그래픽처럼 동물이 모든 주인공인 매력(그중에서도 나의 순애보는 '상어') 외에 자연과 우리가 지혜롭게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철학자들>도 즐겨본다.
<자연의 철학자들>의 지난 주말 편은 농대 교수이자 그린라이프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채상헌 교수의 이야기였다. 철학이 멋진 사람이었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은 더 멋졌다. 그는 종종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밥값을 하고 있나?
처음엔 자신 있게 답을 했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밥그릇이 커져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밥값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래서 결심한다. 밥값의 반만 하자고.
그렇게 그는 아내와 함께 아산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자신의 농사를 두고 그는 말한다.
직접 해보지 않고 교과서의 지식만을 전하는 행위는 학생들에게 그을음만 남기는 거짓 등불을 켜는 무책임한 짓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행동하고 관찰하고 끝없이 배운다.
병충해를 자기 스스로 이겨내도록 농약도 쓰지 않는다는 그는 쿠바식 틀밭을 활용해 강풍과 폭우에도 끄떡없는 농사를 양육하듯 짓고 있다. 이때 사용되는 나무 모두 데크의 목재를 재활용한 것들이다.
그는 도심에서 벗어나 농사를 지으며, 그동안 남만 보며 오래 살아온 자신을 알게 되었다.
나를 봐야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 커진다는 걸 깨달은 그는 나를 보고 살기 즉 나를 바라보기를 실천하며, '나는 누구인가'로 지속 몰입 중이다. 그는 그렇게 행복해져 가고 있다.
유유상종처럼 그의 아내 역시 지금의 삶에 다정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의 말 중 아름다운 말 한마디.
꽃씨가 떨어지면 걔 혼자 자라는 게 아니라
땅이 감싸줘야 하고, 비님이 오셔야 하고, 해가 계속 비춰 줘야 해요.
'자연 안에서 여러 가지가 함께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바람이 불면, 아.. 자연이 활동하는구나
그리고 유유상종의 또 한 사람, 그의 제자인 스물네 살의 김정호 씨였다.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정호 씨는 대학 시절 신품종 등록을 한 진정한 청년 농부였다.
저는 농사를 짓는 게 농업 관련 기술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고
통찰력과 그리고 자기의 내재되어 있는 철학을 중점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때문에 저는 애초에 농업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갔던 게 아니고 교수님의 철학을 배우고 싶어 간 거예요.
인생의 선배로서도 계속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젊은 날에 자신의 길을 가슴으로 알아차리는 건 지혜 이상의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라는 사람이 진실되고 근사하게 다가왔다.
채상헌 교수에게 하루 일의 시작이 자유인 반면, 저녁 일의 끝은 정해져 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동네 개들이 정해주는 알람이었다. 어둑어둑해지고,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하면 이웃에게 민폐가 되므로 일을 그만하는 시간으로 정해두고 있다 했다.
그 끝을 제외하고, 이른 새벽부터 하루 종일 밭에서 녹색의 세계에서 생명을 가꾸고 사는 그의 삶이 진정한 언행일치 아닐까 생각했다. 삶과 자연을 대하는 철학도 아름다웠다.
시골에 와서 사는 사람들에게 저는 꼭 농업을 하라고 권하진 않아요.
농업 말고도 할 게 많거든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돈을 가지고 와 꽃 가꾸고 나무 가꾸고
폐허처럼 되어있는 집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거나 하잖아요.
그렇게 농촌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걸 권장해야 한다고 봐요.
농촌은 엄청난 좋은 자연의 무대예요.
자연이 배우라면, 농부는 연출자인 거죠
이런 녹색으로, 이런 곡선으로
누군가의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도록 하는 것이 치유농업이죠.
그의 천국을 보고 들으며, 사랑이 오는 세계를 보았다. 그리고 다큐가 실어주는 따뜻한 힘을 느꼈다.
문득 올려다본 오늘의 하늘이 가을 하늘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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