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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Sep 07. 2022

풍요로운 오독

[문장 우리기] #10. 책을 읽는 방법 by 히라노 게이치로

히라노 게이치로에게 독서를 즐기는 비결은 '속독 콤플렉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대신 진정한 탐미의 독서를 '슬로 리딩(Slow reading)'이라 칭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속독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1인이다.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다는 사고 때문인지 시간 안에 완벽히 해치우고 싶은 강박이 자리한다.

탈주하듯 가슴보다 눈이 먼저 활자를 좇고 있다. 미식적 음미와는 거리가 멀다.

과거 글자를 만지듯 탐독하던 습관과 비교하면 질보다 양으로 기운 형국이다.


당시에는 아끼고픈 문장이나 표현을 보면, 너무 소중해 문장을 만지듯 지면을 쓰다듬곤 했다.

지문에 스며들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언제부턴가 독서 비수기를 거치면서 문해력도 탄력을 잃어 속독마저 예전 같지 않다.  

책에 대한 예우로 따지면, 레벨 하(下)인 셈인데, 새 마음으로 만나는 슬로 리딩의 적기 아닐까 한다.


오랜만에 다시 읽는 <책을 읽는 방법>은 초심의 독서를 떠올리기 그만이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독자의 입장과 작가의 입장을 고루 오가며 건강하고 즐거운 독서를 조언한다.

무엇보다 쓰는 사람 누구나 자신의 책을 슬로 리딩 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글을 쓴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는데, 글을 진정으로 음미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나 역시 가져왔기 때문이다.

자연히 반성하게 되는 건 그의 표현대로 지적인 윤기를 채우려는 강박을 동경한 건 아닐까 하는 거다.

왜 읽는가?라는 질문에 뜨끔해진다.


그는 책을 느리게 읽는 이유 중 하나로 '생각하면서 읽기'를 든다.

중요한 구절을 만날 때마다 책을 놓아두고 생각에 잠기는 방식이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속독에서 탈피가 가능한데, 그에게 속독은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빈곤한 읽기일 뿐이다.

독서의 본래 목적인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 기르기는 슬로 리딩에 답이 있다.

'지독(遲讀)이 곧 지독(知讀)'인 이유다.


여기에 다시 읽는 '재독(再讀)' 역시 가치 있는 독서에 든다.

똑같은 책이라도 자신의 상황과 의식에 따라 재미나 인상이 달라지듯 적당한 숙성기간을 거친 후 재회하는 책은 인상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성장의 흔적을 실감할 수 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인생처럼.


책을 읽으며 안았던 환희를 맛보기 위해 나라는 독자를 정비해본다.

그리고 문득 유년기에 <폭풍의 언덕>이 주었던 벅찬 기분이 궁금해진다.

'다시 읽기' 모드를 가동하며, 변화의 출발선에 발끝을 맞춘다.    

보다 '앞으로'가 아닌 보다 '깊은' 풍요로운 오독을 껴안으며...



# <책을 읽는 방법> 중에서

롤랑 바르트는 모든 진지한 독서는 '다시 읽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꼭 두 번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구조 전체를 시야에 넣고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의 미로를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갖고 탐구하는 것이다.   P8
속독은 '내일을 위한 독서'이다. 그에 반해 슬로 리딩은 '오 년 후, 십 년 후를 위한 독서'이다.   P33
왜 소설은 속독을 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소설에 다양한 노이즈가 있기 때문이다.   P41
차이란 항상 미묘하고 섬세한 것이다.   P44
슬로 리딩을 통해 심사숙고한 끝에 '작자의 의도' 이상으로 흥미 깊은 내용을 찾아내는 것은 '풍요로운 오독'이다.   P63
말이라는 것은 지구 규모의 매우 큰 지(知)의 구체이며, 그중 극히 작은 한 점에 빛을 비추는 것이 한 권의 책이라는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P72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본래 목적이다.   P73
책과의 절묘한 만남을 위해서는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젊은 시절의 기억에 석연치 않은 무언가를 각인시킬 뿐인, 삼진 혹은 파울 같은 독서법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법이다. P89
감상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살아 있는 한 몇 번이고 갱신되는 것이다.   P152


※ 출처: <책을 읽는 방법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문학동네 출판)>


롤랑 바르트는 모든 진지한 독서는
‘다시 읽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꼭 두 번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구조 전체를 시야에 넣고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의 미로를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갖고 탐구하는 것이다


그의 물음에 나의 답은 '역시 당신이에요!'. 십 년 전 남긴 메모는 역시 팬심 뿜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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