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아빠를 위해서 적어도 열 밤 정도는 잠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계 탄 날인 가, 침대에 눕기를 5분 뒤. 다시 벌떡 일어나 신생아 엉덩이를 두드리기 바쁘다. 나야 뭐 지금 자포자기하고 이렇게 지내고 있지만, 몇십 년 뒤를 상상해 본다. 장성해서 자란 이 아기는 오늘날 나의 수고를 얼마큼 짐작하고 상상할 수 있을까.
‘키워줬다’는건 어떤 걸까. 열심히 돈 벌어 먹이고 사주고 하는 것들만 생각했지, 밤을 새워 돌봤다는 모습은 더해본 적 없었다. 돈이야 항상 부족한 것이고, 본능을 거슬러 잠을 아낀다는 행위가 육아를 더욱 대단히 여기게 만든다. 일고여덟살에 혼자 하교한 일을 가지고 ‘난 혼자 컸는데!’하고 우겼던 일이 생각난다. 피양육자가 되면 이렇게 오만해진다. 타인의 시간이 없으면 먹지도 자지도 못했을 주제에.
불현듯 나중에 아빠를 위해서 적어도 열 밤 정도는 잠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열 밤이라 치사한 계산량이지만 이마저도 스스로 애를 낳고 키워보고 나서야 겨우! 가늠해 낸 내리사랑이다.
그러면 이 애도 나중에 나를 위해 몇 밤 정도는 기꺼이 수고로운 일을 하려나. 아닐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속상하지 않다. 그럴걸 알면서도 사랑을 말 그대로 ‘쏟아대는‘ 것이 부모이니까.
배앓이하는 아기의 통통배를 쓰다듬으며, 그 아래 갈라진 나의 배로 죽인 숨을 쉬며, 그 배가 여전히 덜 들어갔다고 한참을 보던 아빠를 생각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