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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Dec 05. 2021

(10. 그날)  '쨍 하고 해뜰 날'이 오긴 할까

미루던 사주를 보고 온 날


그날


오래 살 거라고 하잖아

그중에 딱 하루를 기대해


수십 년간 풀지 못한 문제의

정답이 쨍하고 떠오르는 날


막연히 틀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불현듯 바로잡아버리는 날


몇 번을 해도 어려웠던 것들이

눈 감았다 뜨는 것보다 쉬워지는 날


날로 먹고 싶었으나

스치는 바람에도 베인 인생을

단 하루로 용서할 테지


그런 날에야 용서할 테지




할머니와 아빠는 불교 신자다. 얼마나 독실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는 매년 연말이면 이름 모를 절의 아는 스님을 찾아가 가족들의 신년 운세를 적어오곤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아빠가 취미 겸 불교대학을 다니며 그 역할을 했다.


아빠는 절에 다녀온 후 일주일쯤 지나면 우리 삼 남매를 거실에 앉혀두고 절에서 받아온 내용을 빙빙 돌려서 본인이 덕담을 하듯 일러줬다. 그런데 늘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동생들한테는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얘기들, 이를테면 '너는 올해 시험 운수가 좋다', '너는 올해 참 재미있겠다' 등 흥미로운 결과를 알려주었는데 유독 나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저 '넌 열심히 살아라' 그 한 마디로 끝이었다.


그건 내게 강한 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아, 나는 올해도 운수가 아주 나쁘구나. 매년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걸 보니 안 좋아도 더럽게 안 좋은 사주인가 보구나'했다. 그러고는 무지 열심히 살았다.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꾹 참고, 더 배우거나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먼저 움츠러들었다. 난 사주도 안 좋은 사람인데, 열심히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인데. 세상에서 가장 못난 게 바로 나인줄 알았다.


20대 중반, 세상살이가 야속한 어느 날. 우연히 버스 안에서 한강의 <서시>를 읽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을 조용히 끌어안고 오래 있겠다니. 하긴, 아무리 지독하고 벗어나고 싶어도 결국 내 것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중략)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생략)



이십 대 후반이 되자 사주에 대해 얘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건강이나 취업, 결혼에 관해 관심이 많아진 친구들이 용하다는 점집을 추천해줬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더 열성적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내 사주는 분명히 '최악의', '저주받은'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2021년 12월 5일, 우연히 혜화동엘 갔다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사주 타로 집에 들어갔다. 그리곤 5만 원짜리 사주를 봤다. 그런데 웬걸, 내 사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잔재주도 많고 돈복과 인복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도 되겠다는 얘기도 있었다. 회사생활보다는 프리랜서나 밤늦게까지 일하는 직업을 얻어도 된다고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것도 모르고 평생을 꾸역꾸역 죄인처럼 내 인생을 스스로 들볶고 살았다.


위에 쓴 '그날'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 원망스러워 적어간 시다. 누구에게나 잘 풀리는 날이 있고 안 풀리는 날도 있게 마련인데, 난 유독 일상의 '이상한 점'을 너무 뒤늦게야 깨닫곤 했다. '아, 내가 이래서 그때 그랬구나'하는 식으로, 더 이상 일을 돌이킬 수 없을 때에야 무릎을 탁 치는 순간들이 많았다.


제 발로 사주를 보러 들어간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물론 그 말을 100% 신뢰해서는 아니다. 다만 적어도 왜 아빠가 나에게 항상 그런 말을 했는지는 이해가 갔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나는 조금만 칭찬을 들으면 쉽게 오만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빠는 그걸 알아서 일주일 동안 몇 번이고 내게 할 말을 곱씹은 뒤에 가장 무난한 말을 해준 것이다. 사랑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빠한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내가 오늘 사주를 보고 왔는데 기분이 정말 좋아. 나는 아빠가 매일 열심히 살라고 해서 엄청 나쁜 사주인 줄 알았잖아."

"응. 그려. 네 사주 나쁘지 않지, 졸리니까 이만 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0여 년을 자기혐오에 빠지게 해 놓고는 태연하게 전화를 끊는 모습이 원망스럽다가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정해진 운명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도, 악담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애정이었다는 것도 좋지만 사실 가장 후련한 건 따로 있었다.


상담 중 공황장애에 얽매여 오랫동안 못 벗어나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사주에... 공황장애요?" 아,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모두 이해가 됐다는 듯 질문을 멈췄다. 내 삶을 가장 힘들게, 내 운명을 가장 미워하게 한 범인은 몇 년 전 찾아온 공황장애인데 그게 운명적인 게 아니었다니. 오랜만에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 미움받고 있다는 괜한 오해를 하고 움츠려 살아서 생긴 걸 수 있겠구나.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신경증의 이유가 '아빠의 어설픈 사랑'이었니. 무엇보다... 이제는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겠구나!


사실 세상을 단번에 용서할 만큼 '쨍하고 해 뜰 날'이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삶이 이해되는 날은 종종 온다. 아빠의 마음과 내 삶의 궤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바로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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