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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Jan 05. 2022

[봄생의 아이] 겨울같은 생을 봄처럼 살아낼 것

이혼한 부모님이 밉지 않았다. 누구도 나쁜 사람은 없었다.

봄생의 아이


딸아

닫는 걸음마다 겨울일 때도

마음은 늘 봄이어야 한단다


변덕스러운 계절은 신경 쓰지 말고

목련꽃 죽죽 떨어져 짓무르는 봄이라도

너는 봄이어야 한단다


종잡을 수 없는 사계의 낮이라도

서러움에 몸서리치는 밤이라도

너는 변치 않는 봄생의 아이


봄을 반기는 이들을 보면

우리의 처음을 상상해주겠니


나는 계절처럼 지나갔지만

너를 미워한 적은 없단다

봄이 지기를 바란 적 없단다




지난달엔 혜화역 근처를 지나다 말랑이를 만났다. 여러 가지 모양과 향기를 가진 말랑이는 어릴 적 갖고 놀던 만득이랑 비슷한 장난감인데 촉감이 좀 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액체 괴물과 팝 잇에 이어 유행하는 촉감용 장난감이다. 책상 서랍에 굳어가는 슬라임과 며칠 가지고 놀던 팝잇을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모처럼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복숭아 말랑이를 세 개나 샀다. 1월에 있을 모임에 나가 좋아하는 언니들에게도 선물할 요량이었다.


어느 날 회의 시간엔 말랑이를 손에 쥐고 들어갔다. 한 번 들어가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지루하고 진 빠지는 아이데이션 회의였기 때문이다. 손으로 말랑이를 조물딱 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말하자 상사 한 분이 타이밍을 놓칠 새라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은 애착형성이 잘못돼서 그렇다더라. 이런 건 우리 애도 안 갖고 놀아. 이 촉감이 가슴처럼 말랑말랑한 게... 다 어렸을 때 그런 걸 못해서 그런 거야. 아이 그렇다고 우리 대리님 또 꽁해지는 거 아니지~?"


꽁해졌다. 물론 그녀가 평소에 그렇게 말을 하는 타입이라는  알고는 있었다. 처음 한두 번은 씩씩대기도 했으나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날도 그녀의 말은 틀렸다. 그저 재밌고 유행하는 물건은 사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귀엽고 유치한 굿즈를 좋아하는  취향 때문이었으니까.



4,900원짜리 귀여운 복숭아 말랑이. 플라스틱 배껍데기(왠지 배가 아니어도 이렇게 부르게 되는..)에 싸인 것이 너무 귀엽다. 나름 14세이상 이용가능이고, 어른들이 더 많이 사가는 장난감이라구요.


그런데 아주 공교롭게도, 나는 엄마가 없다. 우리 아빠는 엄마랑 IMF 이후에 이혼했다.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을 두어 번 정도 목격했고, 아침 댓바람부터 엄마가 없어서 할머니 손을 잡고 등교하는 날이 잦아졌다. 동생들도 없는 어느 이른 아침에 할머니랑 내가 마루에 앉아 있었다. 왜 그날에, 그 집에 우리 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엄마랑 아빠가 법원에 갔다고 했다. 그날 이후 엄마는 만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이유는 그것 하나였다. 그날 법원에 갔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는 아빠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아빠가 일하느라 바쁜 날이면 할머니가 해주는 푸짐한 더덕구이나 김치찌개를 먹고 삼 남매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재미있게 잘 놀았다. 누구 하나 비뚤어진 길로 가려고 하면 언니고 동생이고 먼저 혼을 냈다. 아빠 혼자서 자식 셋과 노모를 모시고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진짜 고생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다), 우리가 '애미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며 서로를 다그쳤다. 지금 돌이켜보면 서로가 서로의 엄마가 되어줬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 고모는 나를 보면 자꾸 어릴 때 얘기를 하신다. 아빠가 우리 셋을 며칠 고모네 맡겼을 때, 삼 남매가 종종걸음으로 고모 뒤를 따라가는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우셨다나.


"저도 째깐하면서 양손에 동생들 손을 잡고, 길 잃어버릴까배, 여기저기 잘 살펴보고 기억해두라고. 이 집 잘 찾아와야 한다고 어찌나 신신당부를 하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첫째'가 또 '첫째' 했구나 싶은 얘긴데 고모는 이 말을 하면서도 늘 눈시울을 붉히신다. 뭐 아무렴 어때. 그래서 지금 우리 삼 남매는 누구 하나 엇나가지 않고 잘 자랐다. 우리보다 부자인 친척 집네 자식들보다 대학도 잘 가고 좋은 직장도 들어가고 별로 속도 안 썩였다. 며칠 전 아빠 환갑잔치도 재미있게 준비했고 여기저기 칭찬 일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놀릴까 봐 무서웠을 때 말고는 엄마가 없어서 아쉬운 적이 별로 없었다. 중학생 이후부터는 오히려 먼저 밝히고 다녔다.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운 게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요새 이혼하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데.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 말고도 나 같은 애들 엄청 많을걸?" 하며 뉴스에서 봤던 통계 수치를 읊고도 다녔다. 물론 똑똑하고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내 성격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그날은 집에 돌아와 어떤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과연 '블랭킷 증후군'일까? 심리적으로 애착 불안이 있어서, 어린 시절에 사랑받지 못해서 유아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걸까? 나에 대한 의심은 점점 땅굴로 파고들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결핍은 뭐지? 원하는 것은 뭐지? 이렇게 끝없는 질문을 계속하다가 엄마와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곤 웃음을 한 번 터뜨리고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엄마와의 마지막 기억은 어느 봄날 하굣길이었다. 아마 할머니와 둘이 마루에 앉아있던 날의 전 날이었던 것 같다. 엄마랑 나는 손을 잡고 좁은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었다. 목련나무에 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그런데 희지 않고 붉은 목련도 있었다. 엄마는 내게 그게 '피목련'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곤 목련꽃에 관련한 설화가 있다고 어떤 남자와 여자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게 설화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목련꽃 설화랑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아마 엄마와 아빠 얘기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세히 듣고 똑똑히 기억해둘 걸 그랬다.


어쨌든 엄마는 나에게 그다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아빠와 함께 살게 됐을 뿐. 아빠가 워낙 무뚝뚝해서 처음엔 엄마가 우릴 버리고 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조금 더 클 때까지만 데리고 있겠다'라고 사정하듯 쓴 편지를 발견하고는 안심하기도 했다. 어쩐지 나는 부모님이 밉지 않았다. 두 분 다 우리를 사랑했고, 미워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쁜 사람은 없었다. 단지 엄마와 아빠가 되어버린 두 남녀의 서사가 있었을 뿐이고, 조금 안타깝게 남은 우리가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이상하게도 세상은 내게 '네 엄마를 미워하라'라고 계속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치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자마자 서로를 괴물로 표현하고 주입하는 것처럼,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무조건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면 편부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무조건 애정결핍이 있고, 가장 안 좋은 연애 유형을 가지며 '복숭아 말랑이'같은 것에 환장하면서 자라느냐? 절대 아니다. 환경이 주는 영향은 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안 좋은 조건 속에서 아주 강하고 예쁘게 자랐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상사가 한 말은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아니라 누구에게 했더라도 그건 분명 무례한 일이니까.




엄마와 애착에 관한 얘기를 쓰니 글이 쓸데없이 중언부언하고 길어진 것 같다.

이 시를 쓴 계기는 아래와 같다.


얼마 전에 스스로 '내 마음은 왜 항상 겨울일까'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아무래도 희망차고 파이팅하기보다 조금은 차분하고 비판적인 걸 좋아하는 성격 탓일 게다. 사계절도 시간이 흐르면 바뀌는데, 인생사는 희로애락이라고도 하는데. 나도 좀 더 행복하고 가볍게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고 떠올려보니 얼마 전 사주를 볼 때 나를 '봄생'이라고 표현한 사장님의 표현이 떠올랐다. 음력 2월 20일은 늘 추워서 겨울 태생인 줄 알았는데 양력으로 어찌어찌 따져보면 그게 춥긴 해도 봄날은 봄날이었나 보다.

그러고 봄에 태어났을 나를 상상했다. 지금 엄마는 곁에 없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기뻐했을까. 처음 낳은 딸아이를 키우며 사랑한다는 말을,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자라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나는 그렇게 좋은 말을 어릴 때만 들어두고 얼마나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었다.

세상에 별별 사람 많고, 별거 아닌 일로 상처주는 사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고 편하고 예쁜 마음으로 살아야지싶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봄생의 아이이며, 한때라도 분에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란 세상 가장 예쁜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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