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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Jan 20. 2022

[등대] 끝없는 고난을 버티는 힘

주먹 하나 믿고 사는 고모부를 보고

등대


넘어도 넘어져도

파도가 밀려올 때


버티고 지새워도

자꾸만 밤이 올 때


그래도 살아야지

멀리서 보내는 너의 신호를 보았어


깜빡 깜빡

희망처럼 아른거렸다가


어느 때는 태양처럼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주던


너 거기 있는 등대지기야

너도 내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겠지


마침내 표류를 끝내고

잔잔해진 해수에

비춰본 내 모습은 어떨지


단단한 육지에 도착해

혼자 우뚝 설 때

그 외로움은 또 얼마큼인지


아, 묻지 않아도 알겠어


깜빡 깜빡

응답 없는 바다에

종일 말을 건네며


인생은

약속하지 않은 것들을

다시 또다시

기다리는 일이라는 것을



 어릴 적에 아빠가 몇 달간 중국에서 일할 일이 있어 고모네서 살았던 때가 있다. 우리 고모부는 세상에서 가장 호랑이 같은 사람이었다. 자기 자식 셋까지 총 여섯 명의 대식가들을 키우려면 당연히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싶다가도, 애초에 태어나기를 '어흥'하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같으신 분이다.


어느 날 우리는 거실에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종교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고모는 할머니를 따라 종종 절에 간다고 했고, 우리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있는지를 따지며 유치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고모부한테 물어봤다. "고모부는 어떤 거 믿어요?"


나는 내 주먹만 믿고 산다. (주먹을 불끈 쥐며)


아, 정말 세상 누구도 못 말리는 사람이다. 겨우 14살에 난 고모부를 이 세상에서 가장 담력이 세고 독불장군인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어느 정도 다양한 사람을 많이 겪었다 생각할 때 까지도 그 확신은 바뀌지 않았다. 고모부의 소식을 전해 듣기 전까지는.


인생의 쓴 맛을 하나하나 알아갈 때쯤 종교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때는 저 먼 전라도로 2박 3일간 템플스테이를 다녀왔고, 사회초년생 때는 인문학 공부랍시고 성경을 사서 읽어보기도 했다. 타고나길 신앙심이 없는 걸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끔은 기대기도 하며  한 종교의 열혈 신도가 되고 싶었는데 어떤 것에도 몰입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나는 자꾸만 고모부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던 광경이 떠올랐다.


언젠가부터는 손바닥을 들여보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을 중심으로 손목까지 빙 둘러싼 생명선이 길고 진하며 깔끔하기까지 하다. 내 생명선은 고등학생 때까지 몇 없는 나의 자랑거리여서 몇 번은 볼펜으로 생명선을 손등까지 동그랗게 이어 그려놓고선 불사의 신이라고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물론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니, 단지 생명선이 긴 것만이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어느 날엔 친구와 재미 삼아 손금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며 놀았는데, 생명선 중간중간에 빗금 같은 주름이 있어 x자를 여러 개 교차해놓은 듯 보이는 부분은 고생을 많이 하는 시기이고, 그런 것 없이 일직선으로 굵게 난 부분은 평탄한 시기를 뜻한다고 했다. 나는 학창 시절까지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란 편이어서, 1/3 정도까지는 x자가 많이 그려져 있고 그 이후로는 쭉 뻗어나가는 내 손금을 참 좋아했다. 언제부터 일진 몰라도 이 지난한 삶의 고통이 점차 덜해진다는 뜻 아닌가.


그래서 사는 게 문득 힘들다 싶을 땐 하나님도 부처님도 찾지 않고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을 쫙 피고 쳐다봤다. 도대체 이 x자가 없어지는 이 지점은 몇 살 즈음인지 분간이 안 가지만(생명선이 워낙 길어서 몇 살 까지 살게 될지를 몰라 헷갈린다) '그래, 분명 좋아지고 있어, 나아지고 있는 중이야'하는 아주 작은 위로가 된다. 이 얼마나 손에 잡히는 확실한 믿음인가. 더불어 교회에 나가서 헌금을 하거나 먼 걸음을 해 절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다. 남들에게 굳이 구구절절 설명한 적도 없어 나만 아는 비밀스러움도 있다. 아, 고모부는 이래서 자기 주먹을 믿고 산다고 했나. 막막하고 기약 없는 인생 속 나 혼자서 조용히 바라보고 살 희망이 하나 생긴 것 같아 마음이 흡족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만만하게 살아도 노화는 피할 수 없는 법. 작년엔 고모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고모부에게 치매 증세가 생겼다는 것. 남자는 해병, 인생은 막무가내. 술은 마시면 끝장을 보는 주량이 문제가 됐다. 고모는 한 번씩 아이처럼 변하는 고모부가 무섭다고 했다. 이젠 식당 일도 그만두고 남편에게 기대 살고 싶은데, 그 불같던 남편이 자꾸 자기를 엄마라고 부른다고 했다. 고모의 말에 마음이 덜컥 무거워졌다. 고모에게는 이러나저러나 내 남자는 애 같지 않느냐며 치료가 잘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웃어넘겼지만 전화를 끊고 한참을 슬픔에 잠겨 있었다. 아빠가 슈퍼맨이었다면 고모부는 어벤저스를 다 합쳐놓은 우주 최강의 히어로 같았다. 육군 따위가 어딜, 고모의 형제는 물론이고 제 아들까지 같잖아하던 뼛속까지 해병의 사나이였다. '급식비? 네 아빠한테 달라고 해!' 얹혀 살 때는 구박도 서슴지 않았지만 아무리 바쁜 날에도 밥 한 끼 굶기지 않았던 그였다.


여러 차례 전화를 드리길 몇 달 후, 본가에서 자리를 마련해 일가친척이 다 모였다. 고모부는 다행히 술을 끊고 중증까지 가시진 않은 모양이었다. 육군 나부랭이들이 와인이며 소주며 제각기 주종을 골라 마실 때 고모부는 주먹을 꽈악 쥐고 마지막까지 물만 드셨다. 고모부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이겠지만 표정이 꼭 '나무아비타불'을 외는 것 같았다.


"그래, 네가 다음 주에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우리 가족 중에 네가 제일 출세했다 야"


나이가 들고 체격도 왜소해졌어도 다부진 말투와 톡 쏘는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모부의 어깨를 조금 감싸 쥐었다. 그대로 '무서워주셔서' 감사했다.


빽이 없는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또 어떤 사람은 용기 하나로 이 지긋한 삶을 헤쳐 나간다. 그러나 무한동력은 없는 법. 끝없이 밀려오는 풍랑 앞에서 가끔 그것들은 힘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그 이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에 답이 없듯이, 힘들 때면 그저 손바닥을 지긋이 바라보며 주어진 것들을 천천히 두 손으로 겸허히 받아내는 연습을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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