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같은 내 마음에 들어와 발자국을 남기고 간 사람들
눈
사각거린다
눈이 밟혀 사각거린다
온 사방
발걸음 닫는 곳마다
사각거린다
나 아닌 누구도
오지 않은 그 세상에
온종일 네가
눈에 밟혀
시끄럽게 사각거린다
눈에 밟힌다는 말은 참 신기하다. 공감각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좀처럼 '말랑한 안구'와 차가운 바닥을 내려 밟는 그 촉감이 합쳐지는 게 상상되지 않는다. 그런데 밤새 수북이 쌓인 흰 눈에 단 한 사람의 발자국만 찍혀있다면, 그런대로 와닿는 시각적 표현이 되겠다 싶었다. 지금 내 앞엔 없지만, 내 마음속에 눌러앉아 생생하게 아른거리는 한 사람의 모습이.
그러고 보니 겨울이 되고 눈이 쌓이도록 펑펑 내리는 날이면 기다려지는 게 있다. 바로 아무도 밟지 않은 집 앞 공터. 그건 일찍 움직이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사람 두셋만 지나가도 흰 도화지는 더럽혀지고 만다. 보송보송한 눈송이의 재질이 살아있는 땅의 여백을 마음껏 누려야 제대로 된 눈 구경을 하는 기분이다.
이번 주말은 밖에 안 나갈 거라고 선언했지만 발자국을 찍기 위해 반바지 차림으로 동네를 한참을 걸었다.
사람 마음도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누군가 다녀가지 않은 마음이, 아무도 밟고 지나가지 않은 눈 쌓인 벌판이지 않을까. 아무 생각 없이 소복이 쌓아둔 마음에 스쳐 지나간 인연들의 발자국이 쌓인다. 어릴 적 함께 했던 친구들, 아주 잠깐 함께했던 전 직장 동료들, 크고 작은 기억을 남겨준 이성들까지. 제각각의 발자국 모양을 요란스럽게 찍고 달아난다. 그들과 함께한 세월이 발자국 난 모양을 따라 마음속에 그대로 찍힌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는 너무 유명한 노래다. 나는 조성모 노래로 기억하는 그 곡을 어릴 땐 그 얇고 미성 어린 목소리를 흉내 내느라 가사를 제대로 곱씹어보지 못했다. 이십 대 후반, 어느 쓸쓸한 겨울에 조용한 노래를 찾아 듣다가 처음으로 그 내용을 찬찬히 읽었다. 그리고 서른을 바라볼 무렵 JTBC <싱어게인> 프로그램에서 나이 지긋한 45호 가수가 그 노래를 불렀다. 한참 눈물을 쏟아낸 후, 앞으로 이 곡은 쉽게 듣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정말 아프고 슬플 때만 꺼내 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무 슬퍼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사람 속은 왜 이리도 요란할까. 열 길 물속보다 알기 어려운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나도 내 마음을 '어떻다'라고 쉽사리 정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많다. 작은 선택에도 갈팡질팡하고, 온갖 걱정과 잡생각들로 가득 차 지금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흘려듣기도 한다. 사랑으로 채워도 아까울 작은 그릇인데, 주변 사람에게 내어줄 작은 여유조차 없다. 어릴 땐 그러지 않았는데, 싶기도 하다.
아마 짧은 세월이지만 나의 조그마한 마음에 인연의 발자국이 빼곡히 도 찍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나이가 들고 새로 찾아오는 인연들에게 기꺼이 마음을 주기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까. 아직 살아갈 인생은 많고 찾아올 인연도 더 많을 텐데 벌써 마음의 공간을 다 써버렸다는 생각은 왜일까.
아마도 계절은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라'라고 계속해서 바뀌는 것일지 모른다. 이런저런 발자국이 찍힌 채로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꽁꽁 얼어붙은 빙판길도 어느새 봄이 되면 녹아 없어지니까. 몇 개의 계절을 지나 다시 다듬어진 땅에 새로운 흰 눈이 소복이 내리는 것처럼, 나도 지난 인연은 따뜻한 봄의 강물처럼 좋은 기억으로 흘려보내고, 다가올 사람들을 위해 정돈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