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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Oct 31. 2022

젊음 대신 국화꽃이 피는 나라

슬픔에 잠기는 것 말고는 도무지 할 일이 없는 날이다


내게도

10월이 되자마자

미리 호박 안경을 사두고

자주 못 보는, 오래된 친구와의 모임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와 자취방을 떠나

인파 속에 섞여 군중 속 자유를 만끽하고

모처럼 비싸고 맛있는 술을 마시며

비로소 청춘임을 만끽하고 싶은 때가 있었다


이런 시대에

이런 젊음이 있었을 뿐이다



 아침부터 서울에 흩어져 사는 자녀의 안부를 묻는 카톡방이 요란하다. 새벽 동안 여러 사진과 영상이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반복한 흔적이 남았다. 지방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다. 뉴스에서는 트라우마 방지를 위해 직접 촬영된 영상 시청 및 관련 영상을 과도하게 시청하는 걸 자제하라고 했다. 그러나 채널을 돌려도 뿌연 효과를 준 몇 개의 영상은 자꾸만 반복 재생되었다.

 세월호 이후 최다 사상자가 발생한 이 참사의 희생자는 잔인하게도 또 젊은이들이었다. 20대를 중심으로, 개중에는 지문등록조차 안된 10대 청소년도 있다고 했다. 몇 년간 벼르고 가슴 졸이며 기대했던 나들이, 그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세상과 이별해야 했던 아이들. 뭐가 다른가, 우리가 아직도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서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때 그 사건과 무엇이 다른가.

 어제 새벽에는 다른 이의 얘기에, 오늘 대낮에는 뉴스를 보며, 밤에는 개인적인 일로 눈물을 흘렸다.

 회사 동료와 유유히 커피를 마시는 광화문 광장에서는 주말마다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 의존성을 계산하며 공황장애 약을 매번 쪼개 먹는데 대규모 마약 유통이 이슈가 됐다.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 임대주택을 계약했는데 집값이 떨어진다고 난리다. 세 다리 걸친 지인이 이태원 사망자 명단에 있다는데, 더 가까운 지인은 이 참사를 철없는 해프닝으로 여긴다.

 이렇게 파편화된 사회에서, 나는 누구와 더불어 살고 있는가. 누구와 함께 집단적 사고를 하고 사회를 만들고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가.

 제자리도 없이 골목길에 놓인 국화꽃처럼 혼자서 에먼데 눈물을 뿌리고 다니는 것은 당최 누구에게 무슨 의미나 있는가.

  여러 가지 슬픔에 잠기는 것 말고는 도무지 할 일이 없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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