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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본 거면 어쩌지

전지적 편집자 시점으로 본 영화 <킹스 스피치>


그림책은 만드는 데 최소 1년 이상이 걸리는 작업이다. 이미 대략의 이야기가 만들어져 있는 경우라고 해도 - 조금만 손봐서 내면 되겠지라고 덤벼 들어도 2, 3년이 삽시간에 지나가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작가와 작업할지 선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나는 꽤나 눈이 밝고 꽤나 신중하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헛발질에 진창에 빠지기도 하고, 내 발등 내가 찍었지 한탄의 강에서 허우적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도 내 자신의 선택과 의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후회와 실망은 되도록 짧게, 타협과 대안은 현실적으로 마련하려고 애쓴다 (흑흑)

<킹스 스피치>는 예상과 달리 (예상했어야 했을까) 너무나 전지적 편집자 시점으로 읽히는 영화였다. 특히 로그가 조지에게 거는 기대를 드러냈을 때, 조지가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불같이 화를 내고 로그를 두고 떠났을 때는 내가 차가운 비를 맞고 선 것처럼 심장이 서늘해졌다.


누군가의 “그릇”을 알아보는 것이 직업적 소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네가 (혹은 네 까짓 게) 뭔데 주제넘게 굴어”라는 워딩에 부딪힐 때면 그러게 내가 뭔게,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왕이든 작가든,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것일 뿐, 그들을 거드는 사람에게 주어진 몫이란, 주제 넘을 수 있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가 아닐까 하는 서글픔 같은 것.


영화에서처럼 위기를 넘어 공고하게 우정(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는 관계들이 있는가 하면, 다시 못볼 (까지는 아니지만 마주치지 않게 되는) 사이들도 있다. 크게 될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상대는 그걸 원치 않거나, 그럴 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럴 재목이 아닌 경우들. 마찬가지로 상대가 나에게 품은 기대 - 모든 것을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거나, 대단한 비전을 제시해주는 사람일 거라는 기대 또한 어긋나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또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지켜보고, 다가서고, 만나고, 탐색하고, 드러내고, 보여주고, 이해하고, 약속하는 과정들을 반복한다. 이 자체를 의미있다 여기지 않으면 결코 지속할 수 없는 일. 어제 미팅에서 나눈 이야기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정말 마침맞다. 서로의 그릇을 알아볼 수 있는 지혜와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부족함을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까지, 긴시간 함께 걸어야 할 우리에게 필요한 3종 세트.



20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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