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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May 23. 2024

아이와 한글; 반가운, 아이의 마음 표현

'당근브로야채죽'(아이가 지은 요리명)

퇴근길 할머니 폰으로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영상을 켜더니 아이가 진지하게 말한다.


"엄마, 놀랄 만한 소식이 있어. 놀라지 마."


"응, 안 놀랄게."


"나만 한글을 못 하는 거 같아.

 다른 애들은 다 아는 거 같아.

 모음자는 알겠는데,

 자음 2개씩 쓰는 거는 모르겠어. 

 수업하는데 속상해서 화장지로 눈 닦았어."


"아이고, ○○가 많이 속상했구나. 

 엄마 내일 가니까 이해 안 됐던 거 같이 보자."


아이는 열심히 내게 얘기한다.

그 와중에 나는 잠깐 딴생각을 했다.

'야, 어떻게 모음자란 말을 지.

 기역 자도 모르던 아이였는데. 많이 늘었다, 정말.'

'와, ○○가 속상다는 마음을 표현하네.'


아이가 속상하다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속상하다고 자기 마음내게 꺼내 보여 게 좋았다.

한편으로는 첫 좌절이었을까도 싶었다.

공부 욕심이 있는 아이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었다.


초등학생 내담자들이 생각났다.

이런 상황이면 나는 내담자들에게 어떻게 했을까.

기준에는 아직 1학년이니 괜찮아인데

본인 딴에는 잘하고 싶었던 니만큼

욕구를 응원해 줘야 할까.

모르는 부분을 같이 풀어보고

해결해보려고 하는 게 좋겠다.


"엄마랑 모르는 부분 같이 해보자. 

 그럼 알게 될 거야.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응."


"엄마가 언제 오지?"

 

"목요일, 토요일."


 "엄마가 월요일, 목요일, 토요일, 일요일 있으니까

  한글은 이제부터 엄마 있는 날은 무조건 할 거야. 

  월목토에 할 거야."


"그래, 그러자."


"어, 토요일은 못 하잖아."


"아빠한테 가는 주는 못 해도

 엄마랑 있는 날 하면 되지."


", 알았어."


아이 표정과 목소리를 보니 처음보다 풀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오후 담임선생님께 하이톡을 드렸다.

어제 아이가 한글을 자기만 모르는 것 같아 

울었다며 속상하단 표현을 하길래

아이가 정말 한글을 더 익혀야 하는 건지

상의드리고 싶어 톡 드렸습니다.


곧 보이스톡이 왔다.

"아니에요. 

 엄마가 읽어준 책 내용 중 인상 깊은 걸 그려보라 했는데

 엄마가 책 읽어주던 장면을 그렸길래 

 잘못 이해했다고 얘기해 줬거든요. 

 지난번에도 그랬거든요.

 한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네. 제가 한글 지도를 어느 정도 해줘야 하나 싶어        

 여쭤봤어요. 감사합니다. 오늘 알림장 확인하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우선은 마음놓였다. 

한글이 모자란 건 아니구나.

그다음 든 생각은 

아이가 무언가 못한다 싶어 속상했던 마음 알아줘야겠구나. 그러고 나서

못할 수도 있고 지적받을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아,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해결해 나가면 되는 거야, 하고 말해 주어야겠구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아이가 엄마가 책 읽어주던 게 대개 좋았었구나.


오늘 저녁은 아이랑

수프 끓여 먹고

알림장 보고,

오늘 밤엔 아이가 어떤 책을 고를까.

브로콜리, 당근, 버터, 밥 한 공기, 소금 한 줌만 넣고 끓인 '당근브로야채죽'
아이의 식사 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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