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상담사례 슈퍼비전을 받았다.
발표 차례였는데 보고서 준비를 못 하여
교수님께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참관만 했다.
하루 전날
내가 보낸 죄송하다는 톡을 보고
왠지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교수님이 짬을 내서 전화를 주었다.
요즘 근황이 어때.
톡으로 짧게 보고 알겠다고는 했지만
톡으로 보고 끝낼 게 아닌 거 같아 연락했어요.
내일 참관만 하더라도
같은 그룹원들에게 오해받지 말고
조금은 선생님 상황을 이야기해 주는 게 어떨까.
지금 내가 얼핏 5분 정도 들은 내용만으로도
숨이 허걱 막히는데
선생님이 수비 보고서 준비 못 했다고
그룹원들에게 죄송하다만 말하지 말고.
선생님이 지금 버티고 있는 삶에게
그룹원들로부터 오해받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지금 선생님은 그룹원들에게
위로받고 배려받아야 하는 거야.
네.
내일 수비 시작 전에 짧게나마 제 상황을 얘기할게요.
할 수 있겠어요.
입을 떼면 눈물부터 날 것 같아서.
울어야지. 눈물이 나면 울어야지.
동화책 주인공처럼 환하게 웃잖아, 매번.
그러지 말고 울어요.
그리고 오늘 수비 시간이었다.
내 근황을 그룹원들에게 얘기했다.
사람에게 의지해라.
필요하다면 상사에게도 얘기해라.
사람들을 얕잡아 보지 마라.
혼자 다 하려고 하다가
많은 일들에 처하면서
도움도 받고 아쉬운 소리도 하면서
내 성격, 성향도 바뀌게 되는 거고.
그러면서 찌질하고 못난 나의 면면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렇게 웃지만 말고.
화날 때는 욕도 하고 짜증도 내고
못한다고 말도 하고 양해도 구하고
그러면서 사는 거예요.
현실은 개똥밭에 구르는 거라고 하잖아.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예요.
근황을 얘기하고 나서 어때요.
정말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싫고,
핑계 대는 것 같고 징징거리는 것 같고,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다들 힘든 일들이 있을 텐데 싶어
부담스럽고 불편하긴 했는데,
어제 교수님 하고 말하면서 울고 나니까
그래도 숨통이 조금 트이더라고요.
압력밥솥에서 김을 좀 뺀 느낌이었어요.
다른 그룹원들에게 교수님은 내 상황을 듣고
어땠는지 물었다.
마치 집단상담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 그룹원이 울먹이면서 '힘내라는 말이 버겁게 할 수 있는데
지금 생각나는 말이 그것뿐이라 힘내라고 건네요' 하고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조심스럽게 위로해 주는 모습과 마음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다른 한 그룹원도 눈물을 보이며
이 그룹 안에서만큼은
편하게 선생님이 힘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주었다.
큰 위로를 받았다.
그룹원들 이야기 들으면서 어때요.
교수님이 내게 물었다.
얘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내는구나.
순간을 또 넘기는구나 생각 들었어요.
그래, 좀 이야기하고 살아.
다들 삶이 힘들지.
서로 중첩이 되는 문제들도 있고.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모여서 와인을 마신다면
마지막 잔은 선생님에게 주고 싶다.
누가 누가 더 힘드냐 경쟁한다면
선생님이 오늘은 윈이다.
(교수님과 그룹원들, 나도 같이 웃었다.)
한계 수용, 늘 말하잖아.
한계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를 말하는 거예요.
차도 250km를 갈 수 있지만 우리가 그 속도로 달리지는 않듯이.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까지는 더 가지 않잖아.
더 달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아니깐.
한계라고 생각되기 전에 안 할 수도 있어야 해요.
한계는 못할 때가 아니야.
한계는 할 수 있을 때를 말하지만, 안 하는 거예요.
한계라는 선에 도달하기까지 가면 안 되는 거야.
본인을 잘 돌봐줘야 해요.
다음 달 수비 일정을 잡고 마쳤다.
교수님에게 개인 톡이 왔다.
사례보고서는 중요 정보만 있으면 되니 대충 해도 돼요.
감사했다.
한 그룹원에게 힘내라는 개인 톡이 왔다.
감사했다.
이렇게 하루가 마무리되는구나.
숨통은 트이는구나.
'본인을 잘 돌봐줘요'라는 교수님의 조언이
널 사랑해 이제.
널 사랑해 줄 시간이다,라는
메시지로 내게 던져진 것 같았다.
널 사랑해 줄 시간이다.
널 사랑해 이제.
누구보다 널 사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