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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Aug 06. 2022

조지 벤슨의 감미로운 사랑 고백에 울컥거림

감정 알아차림<2022.8.6>


조지 벤슨의 달달한 목소리는, 

달달함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인생 앞에, 

변치 않을 수 없는 인생 앞에 

나를 울컥하게 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울컥울컥 할 때가 많다. 방금도 그랬다. 그래서 지금 나온 눈물을 참고 머금는 중이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마실을 나온 어르신들부터 가족들, 커플 등 테이블이 모두 찼다. 여기서 혼자 주책맞게 울고 있을 수는 없다. 이 단락을 쓰고 나니 눈물이 들어갔다. 다행히.


지금 나는 동네 한 커피숍에서 축어록을 풀고 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듣고 있다. 


나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오롯이 전달될 수 있다면, 어떠한 곡해나 오해도 없이, 마음 자체가 전달될 수 있다면 노력을 들이지 않아 편할까. 편하다 귀찮다의 문제가 아닌, 경이로운 일일까.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정말 작기 때문에. 텔레파시?라는 것이 아닌 이상? 


여기 모인 사람들은, 같이 온 관계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무슨 이야기들을 할까. 커피숍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손님들로, 웅웅 거리는 소란스러움이 내 귀에 들린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겉도는 순간들이 많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도 나의 본심이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다. 내가 마주한 상대에게 나의 마음이 순결 100퍼센트의 순도로, 귀한 다이아몬드 보석 상자 다루듯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그 감동은 얼마마한 정도일까.


그런데, 순수한 마음이 존재할까. 

설사 그런 마음이 존재한다 해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가능할까.

100퍼센트 순결한 무엇은 어디에도 없다. 불가능하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기도 각종 냄새에 섞이기 마련이다.


영원하지 않은 사랑을 변치 않겠다고 고백하는 누군가가 과연 존재할까. 사랑에서 더 나아가 영원하지 않은 만물이 변치 않을 거라고 고백할 수 있는 누군가든, 무엇이든, 존재할까. 


냉소적이고 차가운 나의 마음을 조지 벤슨의 따뜻한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무장해제시켰다. 존재한다고 믿으면 그 현실에서 마주하지 못하고 무너져 버릴 것 같아, 강한 통제 속에 나를 절제하며, 한 치의 빈틈도 허용 않던 순간, 아주 찰나, 벌어진 틈으로 새어 나왔다. 찰나에, 울컥거림.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다란 노랫말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왜?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조지 벤슨의 사랑 고백에서였을까. 모든 것이 변하는 이치 속 세상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나의 모습에서였을까. 


내 삶이 한없이 초라하고 위태위태해도 값진 사랑을 꿈꾸고 지킬 만큼 영원한 어떤 것이 있을까.


나의 인생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나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을까.

그 노력이 버겁다면.......

나를 향한 나의 사랑을 나는 변치 않을 수 있을까.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나의 인생관이 '사랑'과 버무려져 더욱더 구슬프게 들린다. 


무한하고 애매모호한 '인생' 앞에 놓인 작디작은 '사랑'이란 돌부리에 걸려 엎어질 것인지, 다시 일어나 터벅터벅 내 갈길을 갈 것인지는 '나의 인생'이 결정한다. '나의 인생'은 '나를 향한 사랑'으로 결정된다.  


'인생' 하면 '시간'이 떠올라 먹먹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시간을 채워주던 것 중 '사랑'은, '추억'으로 대신하며, '먹먹함'에 '아련함'마저 더해진다. 그래서 내게 '인생'은 참으로 슬픈 단어로 다가온다.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 나이 듦을 막을 수 없이, 그저 받아들이며 묵묵히 살아내는 시간으로 말이다. 


조지 벤슨의 달달한 목소리는, 달달함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인생 앞에, 변치 않을 수 없는 인생 앞에 나를 울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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