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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Sep 03. 2022

청소부의 빈집

감정 알아차림<2010.7.>(단편소설)

새벽녘. 도로변.

도로변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새벽이슬에 빗자루로 쓸어도 쉽게 쓸려지지가 않는다.

“낙엽 하나도 쉽지가 않구나” 하고 혼자 중얼댄다.

그래도 자신의 구역에 있는 찐득찐득한 그 낙엽들을 묵묵히 치운다.


어느새 출근 시간이 되었나 보다. 양복을 입고, 정장 치마에 빼딱 구두에서 나는 ‘딱딱’ 소리를 내며 바쁘게 지하철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간다.

‘다들 어디로 저렇게 바쁘게 가는 걸까?’ 하고 잠시 자신의 직업을 잊어 본다.


하루하루 그렇게 청소하며 보낸다.     

새벽, 하루의 첫 시간.

눈 뜨면 버릇처럼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저절로 입게 되는 청소부 복장과 자기의 목숨을 지켜 줄 형광 띠를 두르고 도로변으로 나간다.      


어느 날, 용역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아주 이른 시간.

청소부 복장을 하고 현관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아, 나 아무개인데, 오늘은 작업이 없어서 하루만 쉬어야겠어. 형씨, 미안해. 그렇게 됐어.”

“아니, 왜요? 10년 동안 이런 일 없었잖아요. 저 잘린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 다른 청소용역 업체랑 문제가 좀 생겨서 그래.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쉬라고. 오늘 그쪽 업체랑 만나서 구역을 새로 정하고. 아, 어쨌든 전화로 일일이 말하긴 복잡하니까. 골치가 아파, 내가. 어쨌든 형씬 그냥 오늘 하루 쉬어. 당연히 오늘 용역비는 없는 거야. 알았지, 형씨?”

“네. 알겠습니다. 하는 수 없지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묘한 느낌이 든다.

10년 만에 휴가인 것도 같고.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왠지 내일 그 사장에게서 전화가 오질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하고.     

그런데, 창틈으로, 어두운 갈색 투박한 커튼 틈 사이로 점점 날이 밝음을 느낄 수 있다.

갑자기 정장 차림을 하고 바쁘게 어디론가 자신들의 근무지로 향해 지하철역으로 우르르 들어가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가만있자. 나한테 정장이 있나? 옛날 첫 선을 보려고 시골 점장 집에서 맞췄던 양복 한 벌이 어디 있을 텐데. 오래돼서 버렸나.”

문이 삐거덕거리는 장롱문을 급하게 열어젖힌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허름한 옷들을 마구 뒤적거리며 불안한 듯 찾아본다.

“아, 여기 있다. 여기 한 벌이 있구나. 아직 좀 이른 감은 있지만, 그래도 입고 나가보자.

 아, 그런데 구두가.”

구두가 걸린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구두 밑창이 다 해져서 신고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우선 양복부터 입어보고 나서 생각하자.’

오랜만에 입어보는 양복이 어쩐지 어색하기만 하다. 두꺼운 갈색 커튼을 젖히고 창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자신의 양복 차림을 한번 쳐다본다.

“많이 어색하려나? 너무 오래됐나? 에이, 모르겠다. ...... 구두는.”


양복과 넥타이는 그래도 어떻게 마련이 됐는데, 마지막으로 구두가 걸린다. 얼마 전까지 조금 모아 둔 돈으로 구두 한 켤레를 사야 할까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평소 청소 일을 하며 신던 꾀죄죄한 하얀 운동화를 신고 그렇게 어색하게나마 나가본다.


다른 사람들은 급하고 정신없어 보인다. 발걸음이 참 빠르다.

‘그래 나도 저들을 따라가 보자. 아니, 먼저 구두를 한 켤레 사야 할까?

 이 시간에 문을 연 곳이 없을 텐데. 그래, 우선은 나도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저들을 따라 황급히 가보자.’

무료신문을 다들 한 부씩 집어 들고 계단을 내려간다.

‘나도 메트로 신문을 한 부 집자. 사람들이 내 운동화를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플랫폼에 선다.

“잠시 후 상일동행 열차가 도착하겠습니다. 노란 선 뒤로 물러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내 방송 멘트가 들리더니 곧 열차가 들어온다는 신호가 울린다. 열차가 서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정신없이 타기 시작한다.

‘나도 어서 저 틈에 끼자.’

겨우 한 발 내딛고 나니 문이 닫힌다.


매 정거장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통에 그도 타고 내렸다 정신이 없다.

한 30분이 지났을까.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줄더니 이젠 빈자리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빈자리에 앉아, ‘어디서 내릴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내 신발을 보는 것 같은 눈치다.

나도 모르게 발이 쭈뼛쭈뼛해진다.

‘조금만 더 가다가 내려서 구두 가게를 찾아봐야겠다.’


한 30분쯤을 더 가다가 한산한 어느 외곽지대의 한 역에서 내렸다.

‘나 말고는 내리는 사람이 없다. 여기까지 내가 왜 왔을까? 우선, 출구를 찾아 나가 보자.

 출구가 두 개뿐이다. 어디로 나갈까? 왼쪽? 오른쪽? 아니, 왼쪽.’


왼쪽 1번 출구 계단으로 힘들게 숨을 몰아쉬며 다 올라왔다. 왠지 잘못 내린 것 같다. 가게는 안 보이고 다 조막만 한 구멍가게들뿐이다.

‘이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 보자.’

“어, 저 반대편에 구두 가게가 있다.”


문을 여니 방울 소리가 울리면서 여주인이 가게 안쪽 작은 방에서 나온다.

“어서 오세요.”

“저 구두 좀 볼게요.”

“네, 쭉 한번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는 걸로 말씀해 주세요.”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난감하기만 하다.


안 되겠는지 여주인에게 조금 도움을 청해 보기로 생각한다.

“저, 죄송하지만 이 양복에 어울릴 만한 구두가 있을까요? 제가 고르기가 조금 어려워서요.”

“아, 네. 어디, 가만있자. 뭐가 어울리려나.”

여주인이 쭉 둘러보다가 한 곳에 시선을 멈췄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바로 꼬챙이를 집어 제일 위쪽에 진열돼 있던 갈색 구두를 집어 내린다.

“발 사이즈는 어떻게 되세요?”

“아, 260 정도면 될 겁니다.”

“그럼 맞을 것 같네요. 이거 한번 신어 보세요.”

“네.”

“여기 거울로 한번 보세요. 어울리시네요.”

어색한 듯 양복 차림에 새 구두까지 머뭇머뭇하며 살짝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힐끔힐끔 들여다본다.

어색한지 잘 보지도 않았으면서 바로,

“좋네요” 해버린다.


“이거,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이게 좀 비싼데, 20만 원이에요.”

화들짝 놀라서는, 갑자기 저 멀리 벗어 놓았던 헌 운동화가 다시 보인다.

‘20만 원이면 내 한 달 생활비인데’ 하는 생각에 사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고 마음을 접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나왔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데 한 중년의 남성이 바삐 걸어 자신을 지나쳐 간다. 아주 말끔한 중년이다. 방금 막 나왔던 구두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저기요, 죄송합니다. 아까 그 구두 주십시오. 여기서 바로 신고 가도 되지요?”

“아, 그럼요. 이 운동화는 싸 드릴게요.”

“아니요. 그냥 여기서 처분해 주세요. 그래도 될까요?”

“네, 뭐. 그래도 됩니다.”


새 구두를 신고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왔던 길을 다시 훑어 지하철역으로 들어간다.

“어디로 가볼까?”


지하철 노선도를 올려보며 현 위치를 확인해 본다. 그 뒤쪽에 작은 쉼터가 마련돼 있었다. 몇 개의 나무 의자와 몇 권의 책들과 두 그루의 이파리가 심어 있는 큰 화분. 그리고 그 옆으로 남녀 화장실이 있다.

‘우선 저 나무 의자에 앉아 있자.’

한 시간쯤 멍하니 앉아 있자,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건넨다.

“저기, 어르신. 이 근처에 OO노인복지센터가 있다고 하던데 혹시 어떻게 가는지 아시나요?”

그 짧은 순간에,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모른다고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결국,

“죄송합니다. 저도 여기서 누굴 기다리는 중인데 저도 초행길입니다.”


‘내가 누굴 기다리는데?’ 하고 스스로 묻는다.

되묻는다.

‘너 누구 기다리고 있던 것이니?’


눈물이 핑 돈다. 그리고 눈물이 고여 앞에 보이는 물체들이 여러 개로 희뿌옇게 보인다. 눈물방울을 떨어뜨리지는 말자고 다잡아 본다. 그런데 그새를 못 참고 눈물방울이 방금 새로 산 구두 앞코로 ‘뚝’ 하고 떨어진다. 눈물방울이 빗방울처럼 벽을 타고 내려 흘러가버리는 듯 또르르 가생이로 흘러내렸다. 거친 손으로 눈물을 재빨리 훔친다.

“아이고, 내가 노망이 들었나. 왜 이러고 있냐.”

그러고는 거기서 한 시간을 더 앉아 있다가 결국 왔던 길로, 탔던 전철을 타고, 다시 제집으로 향한다.


‘열쇠로 현관문을 잠그고 나오는 것도 잊어먹고 나왔구나.’

손잡이를 돌리니 그냥 열린다.

순간, ‘정신 나간 놈’ 하고 자신을 비웃는다.

구두를 벗고, 구두를 걸레로 깨끗이 닦아 신발장 안에 고이 모셔 놓는다.

조심스럽게 넣는다.

얼마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아까 새벽에 전화했던 용역업체 사장이다.

“형씨, 왜 이리 전화를 안 받아?”

“내일 새벽에 다시 나오시라고.”

“일이 잘 해결된 건가요?”

“응, 어찌어찌 됐어. 아이고, 골치가 다 아파. 어쨌든 내일 수고하시라고. 그럼 끊어요, 형씨.”

안도감이 든다.

순간, 운동화가 생각났다.

‘그 집에 다시 가서 운동화를 가지고 와야 하나?’

‘그런데 거기가 어디였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기억이 안 나는데.’

“아, 이 미친놈. 20만 원이나 주고는. ...... 안 되겠다. 기억을 더듬어 그 구둣가게에 가보자.”

그래도 아직 치매기는 없구나, 하는 마음으로 기억을 되짚어 그 구두 가게 앞에까지 왔다.


그 주인 여자가 가게 카운터에서 TV를 보고 있다.

“저기요. 아침에 왔던 사람인데, 기억하시겠어요?”

“네.”

“저, 아까 처리해 달라고 했던 운동화 혹시 버리셨나요?”

“아뇨, 아직요. 왜요, 필요하세요?”

“아, 네. 좀 버리기가 아깝단 생각이 들어서요.”

“아, 네. 비닐에 넣어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요.”

검은 비닐봉지에 넣은 운동화를 여주인이 건넨다. 건네주는 봉지를 받아 들고 가게를 나온다.

“그럼 살펴 가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휴, 다행이다.”

‘참 친절하기도 하다.’


그런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양복을 입고 새 구두를 신고 고작 하는 일이 오래된 헌 운동화를 찾아 제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라니.

‘네 인생도 참.’

한숨 섞인 푸념이 나온다. 그리고 바로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십팔.”

욕을 해놓고 본인이 놀란다.

“십팔?”

‘내 정말 이리 그냥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고 화를 부려본다.

“어디라도 가자. 진짜로.”


아직 행선지도 정하질 못했는데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어디에선가 또다시 몰려드는 퇴근길 사람들이 무리로 보이기 시작한다.

‘또다시 저들을 따라가는구나.’

그냥 저들이 향하는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에 몸을 실으니 또 내 집 앞이다.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간다. 2층은 금방이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순간.

‘아, 아까 또 문을 안 잠그고 나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연히 열리겠거니 하고 열려는데 문이 잠겨 있다.

“어, 왜 안 열리지? 아까 분명히 안 잠갔는데.”

손잡이를 마구 돌려본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그런데 안에서, “누구야?” 하는 성난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누구신데 남의 집 문을 막 그러세요?”

‘남의 집?’

“여기 OO빌라 209호 아닌가요?”

“맞는데요. 그런데 누구세요?”

뭔가 이상하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안에서는 계속 어느 여인네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시냐니까요?”

자신 없게 말한다.

“여기 제집인데.”

“이상한 소리 마시고 어서 가세요. 별 희한한 아저씨 다 보겠네.”

뭐가 뭔지 정신이 없다.


‘여기가 어디지?’

순간 나를 둘러싼 이곳이 빙빙 돈다. 겨우겨우 이층 계단을 내려와 이층 집 앞 베란다를 올려다본다. 불빛이 환하다. 거실에는 어떤 한 여인과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보인다.

‘10살쯤 됐으려나? 아니면 12살?’

초등학생 같아 보이는 남자아이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TV에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저 세 사람의 표정이 너무 즐거워 보인다. 여인과 남편. 그 가운데 아들 녀석이 끼어 있다. 참 아늑하다.

그것도 잠시. 다시 정신을 차려본다.


‘여기가 어디냐?

 여기가 내 집 아닌가?’     


며칠 후 빈집에서는 전화벨이 계속 울린다.

“아, 도대체 형씨,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런 적 없었잖소. 연락도 없이 일도 안 나오고, 정말 이런 식으로 할 거야? 그런데 전환 왜 안 받는데. 응? 아, 정말 짜증 나서 일도 못 시켜 먹겠네. 그동안 일하기 싫었나 본데, 당신 해고인 줄 알아. 알았어, 형씨? 나잇살이나 먹어서 불쌍해 보여서 일 좀 계속 주려고 했더니.”

사장은 화가 가시질 않는다. 확 끊어버린다.


그 후로 빈집에서는 더 이상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아무도 열린 현관문을, 열린 옷장을, 열린 신발장을 닫아 주지 않았다. 잠겨 있지 않은 그 현관문을 열려는 사람도 없었다. 빈집엔 더 이상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집은 어디였을까? 어디였던 걸까? 그는 어디로 간 걸까?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 알 길이 없었지만, 그 빈집이 다시 누군가의 집으로 바뀌어 있을 것은 사실이다.

새벽마다 이슬에 젖어 바닥에 붙어 있던 무수한 낙엽들도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앙상한 가지만이 남았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두꺼워졌다, 어느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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