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만월 Sep 03. 2022

그대 자리가 이내 여기 있구려

감정 알아차림<2011.여름.>(단편소설)

세상의 빛으로 나와야 하는 순간이 있다. 검은 천을 두르고 한없이 길게만 보이는 곳을 눈도 막고 귀도 막고 숨 쉴 구멍 하나, 콧구멍만을 뚫어놓고.


힘든 일만 있으면 소주 1병을 사 들고 검은 봉다리에 안주 삼을 구운 오징어를 담아 뒷산 중턱,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없는 산소 앞에 쭈그려 앉아 푸념을 늘어놓는 왜소한 중년 한 분이 있었다. 그는 항상 푸념만 늘어놓았다. 하지만 화도 냈다가 화에 지쳐 울적해지면 구수한 노래자락을 늘어놓기도 했다. 어쩔 땐 혼자 미친 듯 웃어보기도 했다. 산소에 묻혀 있는, 아마 이젠 뼈밖에 남아 있지 않을 그 누군가의 산소 앞에 오징어 뒷다리 몇 개를 놓고 성묘를 드리며 술 한 잔을 따랐다. 

  

“지금 당신 앞에 내가 보이시오, 느껴지시오? 나는 당신이 보이질 않습니다.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젠 나의 의지할 곳이 여기가 되어 버려 당신의 죽음의 의미와는 상관없는 나만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당신의 자리를 내어주실 수 있으시오?” 하고 물었다. 


답이 없는 그 답답함에 빈 소주병과 빈 소주잔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뒷산에서 보던 자기 집 지붕에 호박넝쿨들이, 마을 어귀 장승들이 서 있는 그 길을 지나 자기 집 대문으로 발을 옮기니, 정작 그 호박넝쿨들은 보이지 않더라.


챙겨 들고 나왔던 그 빈 소주잔을 대충 물로 부수고 수세미 한 번 대지 않고 탁탁 몇 번 물기를 털더니 너덜너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한 싱크대 찬장에 고이 올려놓았다. 그 빈 소주잔도 먼지 때에 꾀죄죄하여 투명해야 할 잔이 안개가 낀 듯, 하얀, 아니 회색빛 이끼가 낀 듯 소주잔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일까, 그가 오랜 세월 설거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였을까?


방 한구석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아차!’ 했다. 잠을 자야 하는데 형광등을 끄지 않은 게, 다시 일어나려니 귀찮더라. ‘그래, 불 켜진 채로 눈을 질끈 감아보자!’ 그래서 눈을 감고 완전한 어둠 속 무상무념의 순간이 찾아와 주는 행복한 단꿈의 시간을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도저히 안 되겠는지 힘없이 일어나 형광등에 늘어진 줄을 한번 잡아당기니, 새벽 동이 트기 전 아주 깜깜한, 그 순간이 찾아왔다. ‘불을 끄면 이내 곧 잠이 들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까 뒷산에서 누군가의 묘 앞에서 불렀던 곡조가 흥얼거려졌다. 누워서 흥얼흥얼 거리다가, “그대 자리를 나에게 내어주시오” 하던 순간이 마치 지금 찾아온 듯 보였다. 


‘그대 자리가 이내 여기 있구려.’

뜨거운 눈물이 눈가로, 양옆으로 흘러내려 베갯잇을 적셨다. 


그다음 날, 어김없이 뒷산으로 갈 줄 알았던 양반이 그러질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 수가 없는 그런 ‘그’가 되어 버렸다. 


몇 달 후, 한 손님이 그를 찾아왔다. 그 손님은 그를 보더니 너무나 반가운 듯 와락 끌어안았다. 

그는 영문을 몰라, “누구요?” 하고 물었다.

“여행을 왔다 길을 잃어 헤매던 중에 사람을 만나니 너무 반가워 저도 모르게 실수를 했네요” 

하며 하루만 묵을 수 없는지 물었다. 

“방이라고 하면 여기 이 방밖에는 없소이다. 상관없다면 나와 같은 방에서 자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소?”

“괜찮습니다. 재워 주시는 게 어디예요. 감사합니다” 하고 잔뜩 흙이 묻어 있는 신발을 벗고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놓고 잠을 청했다. 


몇 년 후, 그 집주인은 신기하게도 그날 그렇게 묵어 갔던 손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중년의 그 양반이 누워 잠을 청했던 그 자리에 이젠 손님이었던 그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다. 그리고 몇 달 후, 그 집은, 그 집 앞으로 도로를 내고 뒷산은 뚫어 터널을 지을 것이라는 공지와 함께 헐값으로 헐렸다.  

작가의 이전글 청소부의 빈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