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
상담 관련 교육으로
오전부터 저녁까지 며칠째
비대면 교육을 받고 있다.
그중 청소년 자살자해 상담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강사님은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자살에 대해 얘기할 때
선택이라는 단어는 지양해 주세요.
얼마 전 쓴 글에 선택이란 말을 나는 버젓이 써놓았기에
강사님의 말에 따끔하기도 했다.
그러게, 난 상담사인데 싶기도 했다.
아직 나는 상담사라는 정체성은 깊이 박혀 있지 않나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또 한마디를 하셨다.
제 아이에게 이 말은 꼭 합니다.
언제든 어떤 일이든 네가 힘들면
엄마에게 도움요청해. SOS.
하루 8시간 교육 중
강사님의 그 한 문장이 뇌리에 박혔다.
내가 지금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상담사이지만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곧장 상담실로 아이를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에게도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 마침 한 수도원의 신부님이
우리 집에 방문하는 일이 있었고
그때 아이와 신부님이 나란히 식탁에 앉아
집에서 준비한 요리를 같이 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날 밤, 모두 잠든 시간,
엄마, 나 오늘 그 신부님 생각이 나요.
○○에게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그렇게 신부님과 만나서
편하게 안부 묻고 하면서 얘기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어요. 나는 봉사하고요. 상담을 받게 하는 것보다요.
그래. 그거 너무 좋은 생각이다.
신부님께 문자 넣어봐.
네.
이틀쯤 지나 신부님께 장문의 문자를 드렸다.
신부님은 감사히 수락해 주셨다.
운전면허를 더 미루지 않고 따야겠다 생각한 이유였다.
아이가 신부님께 가는 길은 내가 데려다주고 싶었다.
아이를 기다려주고 견뎌주는 일은
부모 된 입장에서 어려운 일 같다.
내 인생 화두를 붙잡고 가면서 인내를 배우며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이를 기다려주면서도
아이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일
지금 내 아이에게 필요한
엄마로서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은 계속해 갈 것이나
엄마로서의 내 역할도 계속해 고민해 갈 것 같다.
내담자도 내 아이도
나를 성장시켜 주는 귀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