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

익숙한 공포와 편안함

by 세만월

아이는 어제 자기 아빠에게 갔고

나는 오늘 낮 친아빠에게 왔다.


서울집 아빠에게 오니

아버지는 가게 가서 반찬 몇 개 사 오고

더워서 방금 막 샤워를 했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분이 만들어 준

반찬이 짜서 못 먹겠다며 툴툴거렸다.

파킨슨이 심해지면서

몸이 자기 맘같이 따라주지 않아

화내는 것도 툴툴거리는 것도 는 것 같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아버지가 식사를 하는 옆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유일하게 즐겨 보는

나혼자산다 재방송분을 봤다.

아버지는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고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그 옆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나혼자산다를 보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아이가 자기 아빠한테 간 주는

나도 아빠가 있는 서울집에 와서

잠을 푹 잔다.


새아버지는 며칠 전 담이 와서

시름시름 앓았다.

아버지는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나는 할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갔다.

짐이 많아

몹시 무거웠다.


격주로 한 번씩

아빠한테 와서

푹 자고 간다.


눈에 보이는 건 다 부수었던 아빠

집 틀만 두고 물건이란 물건은 다 부수었던 아빠

장롱 속에 숨고

이불 속에 숨고

방문 뒤에 숨고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유리 파편 위

조각난 파편들 위였다.


두렵다고 느끼지 못한 채 심장이 굳었다.

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숨어서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공포 자체였다.

너무 무서웠다.

밖으로 나왔다.

너무 무서웠다.


네다섯 시간의 난장판

아빠가 잠에 들어야

숨을 쉬었다.

야근을 하고 오는 엄마가

집에 와야

숨을 쉬었다.

그런 아빠였는데.


제일 편한 시간은

친아빠가 있는 서울집에 와서

나혼자산다를 보거나

내 방에서 푹 잠을 자거나

집 앞 경춘선길을 따라 조성된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다.


나혼자산다가 끝났다.

나도 아빠 옆에서 자야겠다.

푹!



Hakase Taro, To Love You More

Richard Youngjae O'Neill,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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