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인관계 패턴-죽었던 내가 살아나기까지; 개안開眼

감정 알아차림<2022.10.5>(with 교육분석)

by 세만월


죽었던 내가 살아나기까지; 개안(開眼)-‘심봉사가 10년 만에 눈을 뜨다’



“결핍에서 오는 생각들은 버려야 한다. 이게 공상이다.” 교육분석 선생님의 말이었다.

“나의 공상 속 한 개인을 이상화시켜 놓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지낸 10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인 계기로 눈을 떴다. ‘심봉사가 10년 만에 눈을 뜬 것처럼’. ‘개안’한 거다”라는 말도 함께 해주었다.



오랜 시간 맡아왔던 일을 마무리 짓는 시점이 다가왔고, 그 마지막을 위해 이벤트를 오랜 시간 준비해 왔다. 그 이벤트가 회사와 어울리겠다는 생각으로 1년 넘게 혼자 준비했고, 관련 업체들과 이야기하며 조율했고, 부장님께 여러 차례 보고를 드렸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구두로도 여러 번 보고 드렸고,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을 때도 구두보고를 드렸고, 마지막 시점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시점에는 팀원들과 상의하여 정리된 보고서를 올렸다.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피드백을 부장님께 받았고, 협력업체에는 상황을 전달하고 같이 기다렸다.


일주일쯤 지나고 OO 씨가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같이 진행해 준다면 해 봅시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협력업체에도 전달했다. 오랜 시간 준비했던 기획안이 컨펌을 받았던 터라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최종 보스의 컨펌이 남아 있었다. 부장님의 컨펌을 받고 나서 다시 보고서를 정리했고, 대표님 비서실에 상황 전달하고 메일 보고드렸다. 며칠이 지났고, 비서실에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그날 부장님과 함께 다음 날 대면보고 바로 준비해 달라는 비서실의 전달을 받았다.

대면보고 한 시간 전쯤 부장님에게 톡이 왔다. 이벤트 보고 준비는 잘됐는지 물었다. 덧붙여 향후 사업 리포트도 있어야 할 거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내년 초 퇴사하기로 부장님과 이미 얘기를 끝낸 내가 회사의 향후 리포트를 작성한다는 게 난센스였다.


부장님과 나는 회의실에 대표님과 마주 앉았다. 피날레가 아닌 새 사업을 위한 오프닝과 같은 이벤트로 방향이 잡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팀원들이 이끌었던 만큼 하고 싶은 이벤트들은 다 해도 된다는 피드백도 같이 받았다. 정리도 하면서 시작도 할 수 있는 시간의 이벤트들이라면 뭐든 좋다였다.


대표실에서 내려와 부장님은 나를 포함해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직원들과 함께 다시 회의를 했다. 애초 내가 준비했던 이벤트는 피날레적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새 출발을 준비하는 이벤트 방향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됐다. 그리고 대신 다른 미래지향적인 이벤트들을 준비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다. 나도 충분히 설득이 되었고, 이벤트 방향이 제대로 잡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간 같이 고민해 주었던 협력업체에는 아쉬운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다음 날


내가 준비했던 이벤트가 시작되고 죽기까지의 그간의 과정들이 쭉 들어오면서 ‘나는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게 맞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장님께 의견을 말했다.

올해 12월까지 내가 하고 있던 여러 일을 마무리하고 부장님과 상의했던 대로 내년에는 파트타임식으로 경리 일만 보는 것으로 정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올해까지 다니기로 얘기가 그전에 이미 되었었고, 이벤트는 OO 씨가 준비했던 만큼 잘 진행해 준다는 전제로 이벤트를 해보자는 컨펌을 주셨던 터라, 이 이벤트가 어찌 보면 마지막 업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벤트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빠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사업 담당자에게 이벤트 관련 업무를 전달했다.


부장님은 대표님을 15년 이상 거의 20년 가까이 모셔온 분이다. 회사의 큰 방향을 대표님이 잡는다고 할 수 있지만, 부장님의 의견은 어쩔 땐 대표님의 의견보다 셀 때가 많다. 흔히 말해 ‘실세’ 같다. 대표님이 아무리 주장해도 부장님이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하면 정말 안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부장님이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했던, 애초 내가 주장했던 이벤트를 수락했다는 것이, 갑자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나를 믿어 주면서 이벤트를 진행해 봅시다라고 하면서 단계를 진행시켰지만, 자연스럽게 그 이벤트는 부장님이 중단시킨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배신감과 서운함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물론 그런 감정도 들었지만, 사실 더 큰 건, 내가 부장님의 수를 읽었고, 보게 되었는데, 더 이상 맞춰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현재 논문 학기라서 해야 할 작업들이 많다. 상담 수련도 두 곳에서 받고 있다. 거기에 회사 일도 다 하고 있다. 그런데 논문학기가 시작되다 보니 물리적인 시간이 나질 않는 실정이다. 나에게는 논문이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상담 자격시험도 준비해야 한다. 내게는 중요한 시점이다. 10년 이상 재직했기에 퇴직금을 받으면 논문에 집중하며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나의 중요한 시간을 값지게 보낼 수 있다.


그럼에도 퇴사 후 내년에도 2, 3일 정도 상주근무를 하며 경리를 봐주기로 얘기가 되었었다. 내년 초는 정말 마지막 학기임에도, 퇴사를 정했음에도 부장님과 회사 이야기를 하며 내년에도 관계를 이어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벤트가 취소되기까지의 전全 단계를, 부장님과 오갔던 숱한 대화들과 과정들을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부장님을 한 회사의 한 조직의 상사로만 보게 된 것이다. 저분은 저분의 일을 한 것일 뿐인데, 나는 이벤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장님이란 대상에게 의미부여를 하며, 나대로의 진솔함과 순수함으로 다가갔는데, 일이 처리되는 과정은 현실적이었고, 그런 의미부여는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이다.

장님은 처음부터 내가 의미 부여하며 이상화시켰던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안정감의 부재에서 자라왔었기 때문에 점잖고 내공 있고 안정감을 주는 남자 어른에 가까웠던 부장님은 내가 필요로 했던 존재였다. 부장님이 아닌, 그런 어른이라는 의미부여를 하고, 내가 보고 싶은, 내가 필요했던 면만을 보며, 내 안경을 쓰고 내 안경에 보이는 것들만을 보며, 10년을 넘게 지냈다. 그런데 그 안경을 벗게 된 것이다. 현실 자체로 보였다. 부장님과 애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설득하고 허락받고 다시 취소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어떠한 의미 부여 없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프로젝트 일 자체로 보였다.


게다가 나는 현재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체력도 바닥이 난 상태다. 자연스럽게 내가 살려면 나에게 중요한 일만 남기고 가지치기가 필요한 시기와도 운 좋게 맞물렸다.


나는 부장님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현상은 무시한 채 말이다. 가짜 관계였다.


“결핍에서 오는 생각들은 버려야 한다. 이게 공상이다.” 교육분석 선생님의 말이었다.

“나의 공상 속 한 개인을 이상화시켜 놓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지낸 10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인 계기로 눈을 떴다. ‘심봉사가 10년 만에 눈을 뜬 것처럼’. ‘개안’한 거다”라는 말도 함께 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배신감도, 서운함도 들 필요가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업무 중 하나였고, 부장님은 자기의 위치에서 현실적으로 그 프로젝트를 하나의 일로만 대한 것뿐인데, 나는 그 프로젝트에, 일에, 부장님에게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다.


나의 대인관계 패턴이기도 했다. 심플하게 생각하고 대해야 관계에게, 내가 필요한 부분을 타인에게 찾아 그 관계에서 의미부여하는 것. 그 관계에 있는 타인들은 내가 부여한 의미를 전혀 모르며, 그 의미를 알 필요가 없는 사람들임에도. 그래서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고, 배신감 느끼고. 그래서 관계에서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어 진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필요했던 안정감을 타인에게 찾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이혼 재판을 앞두고 있는 남편과의 첫 데이트가 생각났다. 다른 이성들과 달리 첫 만남에서 결혼 이야기를 꺼냈고, 나만 보겠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냈던 사람이었다. 그 이야기는 너무나도 큰 안정감을 주었다. 이성들과 있으면 항상 긴장을 풀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정말 졸리기까지 할 정도로 긴장감이 전혀 들지 않고 편안함을 느꼈던 사람이었다. 그 안정감이 내게 강렬했기에, 그 뒤부터 이어졌던 폭언이나 폭력적 행동에도 나대로의 의미부여를 하며 버텼다. '이 사람은 나에게 안정감을 줬던 사람이니까 내가 노력하면 그 안정감은 없어지지 않을 거야' 하며. 하지만 데이트 중에도 이 사람과는 헤어져야 하는구나를 느꼈음에도, 임신 중 나에게 폭언을 날리는 와중에도 이 사람과는 헤어져야 하는구나를 느꼈음에도, 그 신호를 무시하고, 내가 남편에게 부여한,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붙잡고, 내 몸이 다 망가질 때까지 인내하며 희생하며 참고를 숱하게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관계 속에서 지냈지? 생각이 든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왜 퇴사를 결심하고도 그동안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지? 금전적인 문제를 들면서 오히려 퇴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며 회사와 끈을 이어가는 것에 명분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부장님이란 존재가 컸다. 존경할 수 있는 남자어른은 부장님이 내 인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마치 안정감을 준 첫 이성은 남편이 내 인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를 죽이며 버틴 세월처럼 말이다.

그런데, 부장님에게 신사업 이벤트 프로젝트에서 빠지고, 내가 맡아왔던 일들을 처리하며 12월까지 정리하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 심플하게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 현실은 여전히 문제투성임에도 내 머릿속은 단순해지고 개운했다. 대표님과 회의를 마치고 그날 저녁 부장님께 이벤트 건은 신사업팀 직원에게 넘기겠다고 얘기했던 순간에는 눈물이 났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눈물은 한곳에서 오랜 시간 보내며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웠던 눈물이었다. 다음 날부터 개운함이 더 커졌고, 눈물은 더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뭔지 모르겠지만 ‘야, 너 좀 멋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스스로 멋있다고 느꼈다.

교육분석 시간, 이벤트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퇴사하기로 할 건지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개안을 했구나” 했다. 10년 동안 못 보던 것을 한순간에 느꼈구나. 축하해. 깨달음을 얻은 날이네. 이날을 생일로 삼아도 좋을 만큼.


하지만, 여기서도 OO이의 대인관계 패턴을 알아야 해. 앞으로도 안 그러라는 법은 없으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살펴봐야 해. 아주 좋은 경험을 했다고 봐.


“제 자신을 위해 뭔가 결정한 게 이게 처음이에요 선생님. 저를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던 경험이 이거 외에 전혀 떠오르는 게 없거든요.”

“내가 여태까지 OO이를 봐왔잖아. 나도 이번이 처음같이 보여. 처음이야. 자기를 위해 행동을 했다는 기분이 어때?”


“뭔가 가볍고 상큼하고, 저 자신에게 멋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자기를 위해 좋은 것을 결정해서 해 준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좋은 거야. OO이는 한 번도 그동안 자신에게 좋은 것을 해 줘 본 적이 없었잖아. 정말 값진 시간이 될 거야.”


“그래서였을까요? 부장님께 제 의견을 전달하고 나서 주말에 톡 음악과 톡 사진을 다 지웠어요. 그때는 뭔지 몰랐지만, 뭔가 더는 톡 프로필 사진과 음악 설정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는 타인에게 위로받을 필요가 없게 된 거지. 스스로 자기에게 결정을 해줬으니깐. 자기를 위해 첫 번째 한 일이잖아.”

“네. 그런 것 같아요. 맞아요.”

“죽었던 내가 나를 사랑하며 살아나기까지, 그동안 고생 많았어.”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이날은 제 생일로 삼아야겠어요. 깨달음을 얻은 날. 개안한 날.”

“그래서 오늘 교육분석 처음에 그렇게 여유 있어 보였구나.”

“제가 여유 있어 보였어요? 오늘이야말로 정신없던 날이었거든요. 마감 작업에, 중간에 학교 가서 지도교수 면담 받고, 택시 타고 왔다 갔다 하고, 퇴근하고 상담 수업 듣고.”


“그래서 마음이 중요한 거야. 자기의 마음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여유가 생기는 거야.”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정신없는 날이고, 제 현실적인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된 상태로 있지만, 개운하고 좋아요. 편안해요. 그 어느 때보다요.”

keyword
이전 28화치열한 내 삶의 이유를 찾다-방어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