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알아차림<2022.10.12>(with 교육분석)
사실은 어제 일을 냈어요.
무슨 일?
인쇄판을 다시 앉혀서 500만 원 추가 비용이 더 들게 됐어요.
제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고,
그런데 ‘아, 여길 나갈 때가 됐구나’ ‘나갈 사람이 이러고 있으니 일이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가는 게 맞는구나’ ‘더 있으면 안 되겠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안 좋았는데... 근데 예전부터 나간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었고,
그래서 부장님의 관리 탓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온전히 제 탓으로 자책하지는 않으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아는 OO이는 그런 실수를 했다면 자책이 심할 텐데
지난주 의미 부여했던 것에서 나왔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정말 이제는 논문에만 집중도 되는 것 같고요.
이번 일로 앞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본인을 생각하면 좋겠어.
아무리 회사에서 잡았다고 해도, 저는 논문을 써야 합니다 하고 단호하게 얘기했다면 나올 수 있었겠지.
왜 단호하게 퇴사 결정을 못 했을까.
회사에서의 10년 그 정리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
어찌 보면 회사에서 10년 마무리 일보다, 논문이 중요했음에도 결정을 못 내렸어.
지금 너무 바빠. 한 시간 여유도 낼 수 없을 만큼. 밤을 지새우고. 본인에게 논문은 아주 중요한 것임에도 결정을 단호하게 내리지 못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를 아끼지 못한 것이기도 해.
그런데 이번 퇴사 결정은 조금 다른 거 같아요. 왜냐면,
저는 잔잔바리 고민들은 생각이 많은데, 큰 것들은 직관적으로 한 번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거든요. 이사나 대출이나 여행이나 이직이나...
작은 건 뭐고 큰 건 뭐야?
그런데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저 사람이 어찌어찌 느꼈으면 어떡하지? 식의 고민들은 오래 하는 편인 거 같아요.
아, 그럼 이렇게 얘기하면 어떨까? 큰 이슈들은 본인이 혼자서 결정하는 것들이야. 그런데 작은 이슈들은, 관계 내 감정과 사람이 얽힌 일들이야. 그럼 결정을 힘들어하는 것 같아. 자기를 위한 결정.
혼자 큰 이슈들은 결단력 있게 단독으로 처리를 잘해. 지금 이혼 문제를 생각할 때도 ‘아파트 그냥 줘버리죠’ 하잖아. 물론 그만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도 알지만.
그런데 관계에서의 갈등은 생각하기 싫은 거야.
그런데 내가 기여한 부분에 있어 자기 권리를 찾아야 해. 이게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거고.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닌 거지.
이혼 같은 문제에도 다 신경 쓰고 제가 기여한 만큼 주장하고 하는 것들이 사실 와닿지가 않아요.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게.
제가 저에게 칭찬을 못 하고 어색하듯이요. 이것도 해 버릇해야 느는 거 같아요. 자기를 위한 결정이요.
이해는 돼. 그만큼 그 사람과 빨리 정리하고 싶은 거지. 안 좋은 에너지는 끊고, 이제 새롭게 시작하려는 게 큰 거겠지. 어떻게 보면 이게 더 큰 가치일 수 있어. 충분히 이해는 돼.
아 지난주에도 저를 위한 결정을 했다는 것에서 뿌듯했지만, 오늘 더 선명해지네요.
제가 관계 내 얽혀 있는 문제에서 절 위한 결정을 내린 게 처음이었다고.
지난주 이 결정에 대한 이야기 나왔을 때 어땠어? 어떤 기분이었어?
뿌듯했죠.
그럼 그 뿌듯함을 좀 오래 갖고 가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오래 갖고 가지 못한 거 같아요. 금방 잊어요. 현실적인 고민들이 있어서 그런가.
그럼 붙잡아야지 오래 갖고 있게. 어때?
음... 지금 그 말에 바로 떠오르는 문장이 있는데 말이 안 되긴 해요.
좋은 것을 붙잡을 가치가 있나?
응?
좋은 건 좋은 거니까 굳이 붙잡을 필요가 있나?...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음.. 제가 좋은 걸 보고도 그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아요.
안 좋은 것들은 상담에서 꺼내서 얘기하면서 의미부여도 하고, 또 익숙한 것들이기도 하고요.
맞아. 안 좋은 생각들은 본인에게 너무 익숙해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석처럼 본인에게 탁탁 달라붙어. 그런데 좋은 경험들과 생각들과 기분은 봐도 못 알아보는 거지. 그냥 지나치는 거야. 안 좋은 건 익숙하고 잘 알아봐.
나를 사랑한다는 말에 그 무게를 알기에 쉽게 못 내뱉게 되는 거 같아요.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요.
예전에는 이 문장을 들으면 뭐 좋은 말이다 정도로만 애매모호하게 받아들였는데,
이제야 조금 그 실체를 경험하고 본 느낌이에요. 아주 조금. 그래도 실체를 본 느낌요.
내담자들에게 ‘나를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쉽게 쉽게 못 할 거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본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자기를 사랑하는 게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오지 못했어. 이혼에, 일에, 학교 공부에, 그리고 지금 논문에. 아기 엄마이기도 하고. 수술하면서도 수업을 듣고, 워크숍 듣고. 정말 힘든 과정임에도 다 해냈고, 해내고 있어. 정말 대단한 거야. 이건 자기를 사랑하는 게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해.
왜 그 말에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눈물이 나면 울어. 괜찮아.
지금 기분은 어때?
엊그제 실수와 내일 할 업무 일들로 또 실수하면 어떡하지? 또 처리해야 하는 행정일이 있는데, 그게 스무스하게 돼야, 티는 안 나도 회사가 굴러가는 거니까요. 평소에도 아무리 작은 것 일지라도 예민하게 신경이 쓰이거든요. 근데 더 신경이 쓰였었어요. 이런 것들로 신경이 조금 분산이 되었다면, 오늘 상담받으면서 다시 제 논문에 집중이 되면서 다시 제가 집중된 거 같아요. 그래서 내일 회사 가는 게 가벼워진 거 같아요. 중심을 잡고 가면서 기타 부차적인 것들을 가볍게 부담 없이 평소대로 하면 된다? 그런 느낌요.
앞으로 인생 패턴이 어떨 거 같아?
자기 결정도 해 버릇해야 느는 거 같아요.
날 위한 결정을 할 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어떤 모습일까, 어떨까? 등등 상상이 안 돼요.
전혀 백지예요. 하얀 도화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전혀 상상이 안 돼요.
논문 쓰고 학사모 쓰고 사진 찍는 순간 기분이 어떨 거 같아?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할 거 같아요.
논문은 긴 산고 끝에 나온 아이야. 아주 큰 아이.
많은 눈물을 흘리고 시간을 견뎌 내며, 여기까지 온 결과물이니까.
진통이 두 시간인 사람도 있고, 하루인 사람도, 이틀인 사람도 있고 하잖아.
본인은 이틀의 산고가 걸려 나온 셈인 거야.
우리 아이가 제게 복덩이거든요. 논문도 제2의 복덩이가 될 거 같아요.
맞아. 논문을 쓰고 나면, 본인의 에너지가 바뀔 거 같아. 차원이 달라질 거야.
또 눈물이 나네요.
내일부터 퇴사 전까지 ‘소굴’이라고 표현한 회사를 이렇게 다니면 좋겠어?
3개월 후면 퇴사하잖아. 이 3개월 동안 회사에 있는 시간에 임하는 태도를 바꿔봐.
나에게 가장 안 좋은 시간 내가 어떤 모습이나 행동, 생각을 취하는지. 그 어떤 때보다 본인을 잘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야. 자기를 실험 현장에 노출시키는 거지. 본인을 볼 수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재밌네요. 저는 저를 보는 걸 좋아하니까.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데, 미해결 된 상황에 놓이고, 점점 제 자리는 줄어드는, 제가 원하는 모습의 깔끔한 상황이 아닌 속에서 제가 어떨지.
그래. 삶이 전부 해결된 채로 갈 수 없잖아. 미해결 된 채로도 지낼 수 있어야지. 어떻게 다 탁탁 맘에 들게 살아지겠어. 그걸 경험해 봐. 본인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서 자기를 더 탐색해 보자고.
지금 기분은 어때?
저를 보자는 미션이 주어니까 재밌어요.
OO이가 넘어져도 어떤 포인트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겠지? (하하하)
아, 선생님은 저를 너무 잘 알고 계세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