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인義人화'의 실체-내공內功

감정 알아차림<2022.8.30>(with 교육분석)

by 세만월


어제까지, 논문을 쓸 수 있을지, 곧 시작되는 학기를 잘 마칠 수 있을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최근 며칠 깊은 우울감이 있었다. 어제는 씻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누웠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옷은 그대로고, 책상 조명은 켜져 있었다. 어제의 무거웠던 몸과 마음 그대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나아졌다. 연구소 측에 배분받기로 한 사례를 우선은 다음에 받는 것으로 하고, 배분받기 전 내가 개인적으로 구했던 사례를 이어 나가기로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구했던 두 케이스 중 한 케이스는, 사례 배분 심사 통과 이후부터는 개인적으로 구한 사례일지라도 상담사는 연구소 상담실에서 상담을 해야 하는 관계로, 내담자와 시간 조율이 힘들다면 정리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현재 학교 치료센터에서 지난주 배분받은 한 사례와 개인적으로 구했던 한 사례 총 두 케이스만 하게 된다. 너무 듣고 싶었지만 주중 양평 가는 시간을 위해 목요일 야간 수업은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논문과 올 하반기 4학차를 잘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일련의 기분의 변화들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 것 같아?"

"주된 건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힘든 것 같아요. 꼴까닥꼴까닥 버티고 있어요 <중략> 그리고 퇴사한 전 직원이 힘들더니 지금은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도 힘들어요. 한 직원은 열정을 다해 임하고 있는데, 그 열정을 옆에서 보는 것만도 버겁고, 또 다른 직원은 무능하고 남 탓할 구멍 찾기 바쁘고......."

"직장에서 일 자체보다 사람에 치인 것 같아."

"네,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럼에도 직속 상사에 대해서는 의인화시키는 게 있었잖아, OO이가. 직장에 있기 위해 OO이가 그분을 뼈대로 삼아 그것을 붙들고 간 것 같아. 그것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어떤 면에 빠져서 상대를 미화시키는지."

"아, 직속 상사분은 두 가지가 있었어요. 제가 입사한 초반에 딱 느낀 것이었어요. 한 가지는,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간에 자신의 방식이 요동함이 없어요. 겉으로 보이는 거겠지만, 제가 그분의 감정의 오르내림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모든 면에서 제가 처음 본 그대로예요. 나머지 한 가지는, 직원들이 실수했을 때나 중요한 일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직원들을 나무라지 않고, 전혀 눈치를 주지 않는 거요. 모든 직원들에게 그렇게 행동하세요."

"그 두 가지가 무엇 같아?"

"안정감이요."

"맞아, 그런 것 같아. 내가 말했던 뼈대로 붙잡고 간다는 것이 그 의미였어."

"지금 돌아보니, 제 인생에서 흔들림 없는 안정감을 준 사람은 직속 상사분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통틀어 처음이요. 그래서 입사 후 몇 년 안 돼 '이분을 믿고 가도 되겠다' 생각하며 지금까지 왔던 것 같아요. 그런 내공을 가진 분을 처음 봤어요."

"OO이에게 안정감은 중요한 요소야. 내공, 안정감. 모두 OO이가 원하는 요소이기도하고."

"아, 지금 또 한 사람이 생각났어요. 직속 상사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내공을 지녔다고 느꼈었고, 그 부분이 컸던 것 같아요. 저는 그분의 일이 제가 하고 싶은 일에 가까워서 높게 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내공'이었어요. 내공."

"OO이에게 아직 부족한 안정감, 그리고 OO이가 되고 싶은 내공 있는 사람인 거지. 그 둘이 OO이의 워너비였던 거야."

"그렇네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그 이유를 알면 자신의 어떠한 행동도 편안해져."


"지금 기분은 어때?"

"'내공'이 크네요. 상담사들은 언제나 내공이 있길 원하죠. 그래서 '내공'이란 단어는 참 흔하게 쓰여요. 그리고 두 분이 내공이 있다고 느낀 적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고요. 항상 느끼고 있던 것이었고요. 그런데 그 내공이란 단어가 저와 연관 지어져 저에게 턱 하니 다가온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뭔가 '아~' 하는 소리만 나오는데 여운이 감돌아요. 제가 미화시켰던 사람들의 '실체'를 본 것 같아요. 그분들의 실체를 마주한 기분이랄까요. 뭔가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랄까요?"

"초반보다 많이 차분해진 것 같아. 그리고 예전에 두 분에 대해 얘기할 때보다 많이 차분해졌고. 예전에는 공중에 떠 있었거든."

"네, 기억나요. 그랬어요,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게 느껴져요."

"높게만 보았던 것에서 두 단계 정도는 내려온 것 같아."

"두 분의 내공은 예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인데, 지금은 그들의 내공을 보면서도 제 상태는 차분해졌고, 한두 단계가 내려와 졌어요. 객관적으로 그분들을 보게 된 기분이랄까요?"

"'실체를 본 것 같다', '한 꺼풀 벗겨진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 같다'는 OO이의 표현이 모두 적절해 보여."




예상하지 못했던 큰 수확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하지만 차분하다. 그런데 설레기도 하다.

이런 날은 계 탄 날이다.

곗돈 받았다고, 하루 날 잡아 밥 쏘고, 그리고 잊어버릴 설렘이 되지 않게

고이고이 간직 않고, 계속계속 끄집을 것이다.

내 마음의 계주契主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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