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언니가 '4월만 지나가 봐'라고 해서 4월 버텼고, 5~6월 일이 많고 하다 보니 또 지나왔는데, 7월 또 버티면 좀 나아질까요?"
"본인 사주에 여름이 없어서 그래. 봄 가을 겨울만 있고 여름이 떠 있질 않아. 10월부턴 나아질 거야."
"10월요? 너무 길어요. 전 회사에도 12월까지 다니겠다고 한 것도 더 앞당기고 싶은 심정인데...."
"퇴사해도 또 며칠 지나면 답답하다고 느낄 거야. '삶은 무엇인가', '삶이 헛헛하다, 공허하다' 이런 생각이 계속 들 거야. 그게 56세부터 풀릴 거야."
"56세요? 너무 길어요. 지금 42살인데...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것 때문에 힘든데, 그걸 56살까지요? 너무 잔인해요."
"지금 46세까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한다고 생각해. 내후년 되면 하고 싶은 쪽으로 갈 수 있어. 올해 내년은 잘 견뎌 봐."
"어쩜 말해 주시는 게, 저 지금 공부하는 거랑 시기적으로 딱 맞아떨어지긴 하네요."
"당신은 뭐에 꽂혀야 해. 뭔가에 꽂혀 있음 그것만 보니깐 버틸 수 있어. 그러니깐 또 뭔가에 꽂힐 걸 찾아봐."
"아, 저 브런치에 글 올리는 거요, 제가 마땅한 사진이 없어서 핸드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이미지 막 그려서 글 하고 같이 올렸거든요. 근데, 그때 그림 그리는데도 순간이지만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완전히 몰입돼서 좋았어요."
"그래, 잘했네. 50대 되면 잘될 거야. 지금 하는 공부, 글, 무엇이든 빛을 볼 거야. 운도 들어와 있고 도화살도 들어와서 일 방면으로 인기도 많아질 거야."
"자기가 아파 본 사람이어야 상담을 할 수 있어.
이론과 지식으로만 갖고 상담하는 거랑 자기가 정말
경험해서 상담하는 거랑 달라. 내담자들이 금방 알아.
느껴지거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려."
"그러니까 원래대로 올해까지 잘 다니고 내년 회사에서 부탁한 업무도 해. 파트타임이라도 수입이 있으면 좋잖아. 회사에서 부탁한 거고 당신도 수입이 생기는 거고 서로 좋잖아."
"네. 감사해요."
56세... 현재 내 나이 마흔둘. 앞으로 14년 남았다.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2007년? 15년을 지나왔다.
'지나온 시간만큼 또다시 가야 하네' 하고 생각했다.
이혼 소송도 기다리라 하고, 상담사 자격을 갖추려도 기다려야 하고, 직장에서 벗어나는 것도 기다려야 하고.
사실 상담사가 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대학원 진학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인턴으로 수련을 받고, 내 문제를 보고자 사이코드라마 워크숍 및 지도자 과정, 역할극, 교육연극, 더불어 글쓰기, 그리고 훨씬 이전부터 받고 있던 개인상담 등등,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관련 강좌가 열리면 수업을 들었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부터는 아이돌 스케줄이 이럴까 싶었다. 근무하고, 퇴근하고 바로 수업 듣고, 수업 끝나면 과제하고, 상담 수련 사례 보고서 쓰고, 주중 점심시간을 이용해 슈퍼비전을 받고, 주말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러다가도 월례 학술대회나 워크숍이 열리면 틈틈이 챙겨 참여하고, 일요일 오전과 오후에는 두 사례의 상담을 하고.
3월 두 번의 수술을 받을 때도 병실에서 링거를 꽂은 채로 수업을 듣고 워크숍도 참여했다.
내가 세워 놓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가끔씩 내가 현재를 살고 있나? 하는 자문을 하기도 했다. 미래를 위한 계획,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에 몰두되어 있다 보니 현재에, 직장에 있으면서 조바심도 더 나고 답답함도 더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에서 상담 공부를 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나 자신이 뿌듯하고 좋았다. 물론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를 만나 연애를 하고, 그와 결혼을 하고, 그와 헤어지는 것도 다 나의 것이라 생각했기에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받은 건강검진에서 난소암이 의심된다, 크기가 너무 커서 악성 종양으로 의심된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무리 계획해도 위에서 던지는 한 방이면 끝이구나, 다 소용없구나 싶었다. 이래서 현재를 살라고 하는 건가 싶었다. 똘망똘망 자기 삶을 계획해도 차에 치이면 끝나는 게 인생이다.
빌리 조엘Billy Joel의 <피아노 맨Piano Man>을 카톡 프로필 음악으로 설정하고 회사로 복귀하는 내내 들었다. 진토닉을 마시며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는 노인, 팁을 주는 이에게 '당신 같은 사람이 여기서 뭐하느냐'는 질문을 받는 피아노 맨. 피아노 맨이 들려주는 음악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일상을 벗어나게 해 주지만, 그 음악은 달콤한 것 같지만 슬프다. 고독을 잊고자 그 바를 찾고 피아노 맨의 음악을 듣지만 결국 고독을 마주한다.
널뛰기하는 기분에, 감수성은 증폭되고 있고, 내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내가 지금 현재를 살 수 있는 것은, 아이를 재우고, 프로필 음악을 들으며 잠시 나의 기분을 느끼며, 끄적거리는 순간이 있음으로 가능하다.
빌리 조엘의 자서전적 노래여서일까? <피아노 맨> 속노인도, <피아노 맨> 속 피아노 맨도 전부 나 같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