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내려지지 않는 나의 세상, 충족되지 않는 나

감정 알아차림<2022.7.11, 22:38>(with 교육분석)

by 세만월

“그래 이번 주 어땠어?”

“저 마감하느라고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이번 주 내리 밤을 새우다가 토요일 새벽 6시에 마감이 다 끝나서 집에 가서 바로 잤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마감 중에 대상관계 이론 워크숍을 한다길래 등록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자다 말고 일어나서, 12시 반부터 5시 반까지 그 수업을 듣고 다시 잤어요. 다음 날 남편이 아이를 양평에 데리고 온다는 시간에 맞춰서 양평으로 갔고요.”


그 열정을 누가 말려. 그 와중에 또 워크숍을 들었구나. 이번엔 뭔가 또 들어온 건 없었어?”

“외부 초점 대 내부 초점…… 피곤한 상태로 들어서 그랬을까요? 개념 위주의 수업이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OO이는 로저스 이론으로 가야겠다, 하하하.

“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로저스 때 수업은 딱 제 마음에 들어왔는데, 대상관계 이론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표상? 제가 만든 가상의 현실에 대한 인식? 이 정도만 들어왔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수업을 듣는 거 같아?”

“...... 열정이라기보다는 집착 같기도 해요.”


평소에 상담 관련 수업이나 워크숍을 듣고 나면 기분이 좋았던 편이라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았지만, 계속 기분이 헝클어져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들로 마음이 온통 뒤죽박죽 되어 있었다.


“선생님, 사실 지금 기분이 별로……, 좀 부정적인 거 같아요. 제 자신에 대해서.”


“이번에 마감을 하면서, A(팀원 1)가 실수를 하고 하고 또 하고, 하는 바람에 봤던 교정지를 보고 보고 또 보고, 하느라고 정말 피곤했어요. B(팀원 2)는 마감 중인데 풍선껌을 짝짝 씹으면서 제 앞에서 지적을 막 하더니,

A한테 가서는 ‘어디 오늘 갈 때까지 가 보자’ 하는 태세로 각을 잡고 하나하나씩 다 고치더라고요. 저야 결과물이 좋으면 좋으니까, 그리고 그 꼴을 보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회의실로 가서 의자 여럿 붙여 놓고 잤어요.

새벽 6시가 돼서야 깨우더라고요.”


“정말 이 친구들 데리고 일하기 너무너무 피곤해요.

한 친구는 실수가 많고, 또 한 친구는 우쭈쭈 해 줘야 하고.”


“그런데, 그 친구들이 그러면,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본인은 피곤해할까?”

“A 씨는 실수가 워낙 잦아서 챙겨야 될 게 많아 피곤하고.”

“그래, 그 친구는 그럴 수 있어. 그러면 B 씨는?”


“그 친구는 이번에도 많은 일을 했어요. 그건 사실인데, 본인이 일을 하고 있다는 티를 많이 내요. 그걸 맞춰주는 게 피곤해요. 그냥 묵묵히 티 안 내고 일을 하면 좋겠는데.”

“그 친구는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

“B는, 이번에 마감하는데, 본인도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껌을 짝짝 씹더라고요. 평소 저에게 ‘언니 같은 존재다’란 말을 많이 했던 사람인데, 과연 그 말이 진심이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저라면, 사회생활 중에 ‘언니’라는 단어를 잘 쓰지도 않지만, 그 단어를 썼을 경우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설사 저를 조금 서운하게 했다 하더라도 B와 같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 같거든요. 그래서, '아, B가 내게 했던 예전의 그런 말들은 진심이 아닐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 맘을 이해는 해요. 저도 예전에 그랬었던 것도 같으니까요. B는 살아왔던 환경이, 자신이 주도적으로 지내야 했어서 그런지, 눈치가 빠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지를 영리하게 캐치해 내요. 그래서 순간순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을 할 줄 알아요. 하지만, 그것을, 저처럼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를 수 있어요. 정말 그만두고 나면, A든 B든 관계를

다 끊고 싶어요. 피곤해요.”


“얘기를 듣다 보니, OO이타인에 대해서 자신의 경우와 같다고 하면서 끼어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굳이 대입시킬 필요가 없을 것 같아. B는 B의 환경에서 자기의 삶의 방식으로서 그런 성향을 보인다, 하고 딱 끝냈으면 좋겠어. 어떤 부분이 본인과 비슷하다고 굳이 상대에게서 끌어올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어찌 보면, B는 하극상인 거거든. OO이가 그렇게 하도록 너무 B와 감정을 섞어 버렸어. 그리고 내가 너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상대가 생각하게 해서 만만하게 보이도록 한 거 같아.”


“OO이는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문제로 끌고 와. 수업을 열심히 듣는 이유도 자신의 문제를 보고 싶어서인데,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크거든. 그런데 조금 지나쳐. 지나가던 돌을 보고도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려고 할 것 같아. 모든 것에 자신을 집어넣어.”


“그래서, 제가 초반에 ‘집착’이란 단어를 썼던 것 같아요.”


“선생님, 뭔가 해소가 안 돼요. 제가 사는 세상을 정의 내리고 싶은데, 정의가 내려지지가 않아요. 표현을 하고 하고 또 해도 충족이 되지 않아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먹거려 말을 잠시 멈춰야만 했다. 왜 그리도 정의를 내리고 싶은 건지...... 그 무엇을.......


“이건 아주 작은 에피소드인데요. 하루를 시작할 때 들어오는 기분이 있어요. 그런 기분이 들어오면, 제 DB 안에서 그 감정과 일치되는 음악을 찾아서 들어야 그 감정이 해소가 되고 뭔가 해결됐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당일, 순간의 제 감정과 조금이라도 일치되지 않는 음악,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과 '뭔가 비슷해' 정도의 수준의 음악이면 해소가 되지 않아요. 결국, 제 기분과 딱 들어맞는 음악을 찾아내면 그제서 선명하게 제 기분이 정의 내려지는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제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저를 선명하게 정의 내리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그래서 힘들어요. 그게 답답하고 우울해요.”


“그렇게 하고 싶은 상담 공부를 하고 있어도 그런 기분이 들어?”


“네. 사실은, 이런 마음은, 상담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리고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면서부터 제가 억누르고 살았던, 예전에 제가 우울했을 때 느꼈던 비슷한 감정들, 그런 센서티브 한 감정들이 증폭되는 것 같아요. 결혼 생활 중에는 이런 마음을 억누르고 지냈기 때문에 그냥 현실을 살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현실을 살면서도, 한편에 이런 마음을 두고 같이 가는 느낌이에요.”


“안 그래도, 얘기 들으면서 나도 그 말을 하려고 했어.

같이 가자고. 우울한 감정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야. 예전처럼 잠적을 하진 않잖아. 삶을 잘 살고 있잖아.

F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우울 성향이 자리잡고 있어. 이런 감정이 있으니까 글도 쓰는 거야.”


“그런데, 우울한 기분이란 게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야. 그런데 OO이는 우울한 기분이 들면, 예전에 힘든 것들이 고구마 줄기 얽혀 나오듯 줄줄이 연결되어 나오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이 같이 드는 거 같아. 우울한 무드와 그 안 좋았던 기억들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어.”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되지 않을 거야. 누군가에 대한 분노감으로 복수를 하겠다고 한평생 살아왔던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그 분노감을 없애 버리면 그 사람은 살지 못해. 똑같아. OO이도 그 우울감이 원래 타고난 기질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인지, 오랜 시간 안 좋은 환경에서 생긴 우울감인 것인지는 현재로선 더 봐야 알겠지만, 워낙 그 우울감과 익숙해져 있어서 당분간은 같이 곁에 두면서 가보자고.”


“그러면서 새롭게 만나는 감정들, 생각들을 대신 집어넣어야지, 하나씩 하나씩. 그래서 진짜 자기를 찾아야지.”


“어떻게 보면, 현재 정리된 게 하나도 없어. 퇴사도 더 빨리 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문제로 그럴 수도 없어, 팀원들은 본인 마음대로 되질 않아, 챙겨야 할 아이도 있어, 상담 자격증도 아직이야, 이혼 판결도 아직이고. 어느 것 하나 정리된 게 없어. 당연히 답답할 거야. 하지만, 이혼 판결 올해 나면 조금 나아질 거고, 이번 논문학기 지나면서 조금 또 나아질 거고, 퇴사하면 또 조금 나아질 거고, 내년에 자격증 따면 또 달라질 거야.”


“안 그래도, 제가 이번에 학교 줌 수업 들을 때 비번을 'Thank you 2022'로 했어요. ‘고맙다, 나의 2022년도야’

라는 의미예요. 정말 2022년도로 책을 쓰고 싶어요.”


'Thank you 2022'가 무슨 의미일까?”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말문이 막히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고, 바로 울컥했다. 눈물은 바로 흘렀다. 한두 방울이 아니었다. 주룩주룩 뺨을 타고 흘렀고, 눈시울은 금세 빨개졌다.


“올해 일 년, 아니 이 반년 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막 몰아치니까 힘든 것 같아요. 그 안에서 겉으로 보이지도 않는, 저만 보이는 아주 희미한 불빛 하나만 보고 앞으로 걸어가고 있으니깐……. 그런데 또 그 힘듦이 인텐시브 하게 농축되어 있는 것 같아서 저를 또 키워주는 것 같기도 해서요.”


“그래, 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 오래 전의 OO이는 아주 컴컴한 암흑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면, 지금은 멀리 불빛을 보고 있어. 나아갈 방향을 알고 그 길로 가고 있는 거야.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을 거야. 예전과는 달라.”


“네. 경포대, 밤에 보면 멀리 오징어 배 불빛들이 쪼르륵 보이잖아요. 그런 기분이에요.”


"아, 오늘 오전 미국에 있는 그 친구와 상담을 했어요. 하면서도, 하고 나서도 너무 좋았어요."

"뭐가 좋았을까?"

"이게 내 일이다란 느낌요?"

"그래 OO이한테 잘 맞을 거야. 내담자와 감정을 나누면서 그 속에서 본인 자신을 만나게 될 거야. 그러면서 성숙되는 거야."

"네."


“그래, 지금 기분은 어때?”

“뭔가 한 주간 뒤죽박죽 되었던 것들이 차분히 정리된 것 같아요. 다시 한 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브런치에 그동안 써 두었던 글도 정리해서 올리려고요.”


“그래요. 마감도 끝났으니 오늘 푹 자. 자는 것도 중요해.”

“네, 그럼 다음 주에 봬요.”


오늘 하루, 아침부터 시작되었던 음악 선곡이 퇴근길에서야 끝났다. 모 가수의 1집과 3집에 수록되어 있던 음악들로 채웠다. 다섯 곡이었다. 이 다섯 곡이 확정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쳤고, 많은 음악들이 거쳐갔다.


그의 1집과 3집 앨범을 듣던 시절, 나는 나의 힘든 시간을 이 앨범 속 음악으로 버텼다. 오늘의 우울함은 그때의 시간 속 경험들에서 연결된 나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감정으로 오늘의 나를 대신했다.


우울한 감정이 싫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감정도 아니다.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노라면 힘이 든다.

하지만, 예전처럼 삶을 못 살고 있지 않다.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감정들로 이 우울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서서히 서서히.


오늘의 우울한 감정을 과거의 부정적 경험과 사건들이 아닌, 다른 새로운 것들로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생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어린 시절 그 긴긴 터널은 지났다. 잠적하던 과거 대학원 시절도 지났다. 지금은 곧 끝날 일들을 앞에 두고 있다. 올해의 힘든 일들은 곧 있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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