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전부터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며칠 전 급박했던 업무 하나가 끝났다. 야근에 주말 근무에 철야에... 정말 쉼 없이 달렸다. 은행을 돌다가 잠시 카페에 들렀다. 비를 피해 감상에 젖는 잠깐의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오드리 헵번 주연 영화 <Moon River>를 카톡 프로필 음악으로 설정하고 이어폰을 끼었다. 바로 앞에 놓인 카페 내 큰 창으로 빗방울이 거미줄 치듯 죽죽 흘러내렸다. 이어폰을 꽂고 있어 바깥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빗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2021년 6월 7일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두었던 글을 이곳에 남긴다.
품 안의 아이는 마치 '성인 아이'로 받아들여졌다. 지금도 품 안의 시간을 만회할 수 있다고 하는데, 쉼의 시간 동안 충분히 생각하며 그 쉼을 갖고자 한다.
뉴질랜드 어학연수 시절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우울증이 시작될 무렵 난 영문도 모른 채 기분이 다운되면 방 밖을 나서지 못했다. 그때는 우울증인지도 몰랐다. 며칠을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있다 보면 조금 회복된 듯 돌아와 방문을 열면 아줌마가 계셨다. 나의 맘을 다 들어주셨다. 비판도 없고 전부 수용해 주셨다. 보통 문을 잠고 들어가면 홈스테이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안부차 노크를 해도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엘사만은 언제든 열어 주었다. 품 안의 아이는 그런 느낌일 것 같다.
칼 로저스의 인본주의상담은, 뉴질랜드 북섬 작은 마을의 파란 눈의 홈스테이 아주머니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결혼 전 힘들고 지치면 매년 여름휴가로 심신을 달래주고 왔다. 결혼후, 그리고 코로나로 갈 수 없지만 엘사의 품이 생각난다.
그녀의 품에 안길 날이 기다려진다.
내 아이에게 나는 엘사처럼 해 주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부모님도 너무나 잘해 주셨는데도 힘들 땐 엘사가 먼저 생각난다. 아이를 낳고 결혼생활을 하니 부모님이 날 건강히 낳아주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란 걸 느끼며 부모가 되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가족이란 이름으로 같이 있으면서 각자가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오히려 서로를 안아주지 못했다. 서로가 힘들어서 "나도 힘들어"였다. 다 커서 머리로 이해가 가지만 품이 채워지지 못한 걸까.
내담자에게 로저스의 인본주의 상담을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하기 앞서 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들보다 더 앞선 나 스스로에게도. 나를 위해 안아주는 사람은 나여야 할 것 같다. 엘사의 큰 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