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내 삶의 이유를 찾다-방어기제

감정 알아차림<2022.9.28>(with 교육분석)

by 세만월


오늘 아침, 이번 주와 담주 한참 마감 중인 원고 중에 직원 그(녀)가 이틀 전부터 밤새 작업해 봤는데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며 출간 구성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편집부에서 작업을 다하지 못해 애초 기획했던 구성에서 뺀다는 생각은 무책임 그 자체였고, 화가 났다. 그(녀)는 계속 핑계를 대며 변명했지만, 그(녀)의 무책임을 설명해 주지 못했다. 나는 점점 목소리의 데시벨이 높아 갔다.

퇴근 한 시간 전, 부장님이 오늘 별일 없었는지 물었다. 나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여 그(녀)가 무엇을 잘못했고, 그래서 어떻게 수습했는지를 말했다. 나는 간단히 오늘의 에피소드를 두 줄 정도 톡으로 설명드린 후에 장문의 톡 몇 덩이를 부장님께 봇물 터지듯 보냈다. 그(녀)에 대해서 거짓말, 편법, 무책임 등 안 좋은 소리들이었고, 그(녀)의 잘못을 부장님께 말했다는 것 자체에서 찜찜했다.

교육분석 시간, 오늘 밑에 직원 욕을 하고 험담을 한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안 좋다는 얘기를 했는데, 교육분석 선생님은 내가 사실 왜곡을 하고 있다고 했다. 팀원의 무책임과 무능력함 등의 이야기는 사실 보고이다. 험담이나 욕이 아닌 보고의 개념인데, 그것을 왜 험담으로 생각하는지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관리자로서 더는 그(녀)를 보듬어주지 못하겠다', '내가 그(녀)의 초등학교 선생님 같아 지친다', '내가 그(녀)의 학부모 같다'는, 내가 부장님에게 보낸 톡에서의 문장들은 직장 내 업무상 적합한 표현이 아니었다. 교육분석 선생님은 직장에서 팀원을 내가 보듬어주고 품어주어야 하는 관계가 아님을 재차 설명했다. 업무적으로 그(녀)의 잘못을 보고 드리는 것에 대해 그간 10년 동안 전 퇴사자에 대해서도 그렇고, 지금 그(녀)에 대해서도, 참지 않고 제때제때 보고했어야 하는 게 맞는 것인데, 왜 그간 그러지 않았는지 도리어 교육분석 선생님은 물었다.


"제 입에서 그런 누군가의 험담, 욕이 나왔다는 게 간지 떨어지고, 제가 생각하는 멋있는 모습이 아니에요"와 같은 식의 이야기만 반복되었다. '험담'''이 아니라고 해도 계속해서 '험담'과 '욕'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자 교육분석 선생님이 물었다.


"그럼 지금 본인 상태가 어때?"

"진이 빠지죠. 그들로 인해 진이 빠지죠. 에너지가 빠지죠."

"왜?"

"일일이 다 신경 써야 하니깐."

"그럼 그게 OO이가 생각하는 멋진 리더의 모습이야? 간지가 나?"

"아니죠....... 제가 만든 허울 같은 게 있나 봐요."

"내 가설은 두 갠데, 어린 시절 너무 힘들어서, 갈등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갈등의 기억만 보여도 싫은 거야. 그래서 그런 상황이면 OO이가 그냥 참고 넘어가는 거, 두 번째는 마초 성격처럼, '에이 뭐 이런 거 갖고'처럼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 내가 하고 넘어가면 되지 하는 거 같은 거랑."

"둘 다 와닿지 않는데, 앞선 설명이라면 후자가 더 맞는 거 같긴 한데, 둘 다 잘 모르겠어요."

"통합이 되어야 해. 통합이 안 되어 있어. 둘 다 섞여 있어. 근데, 둘 중 한 개는 거짓이야. 거짓을 찾아야지. 트루 셀프true-self를 찾아야지."


"갑자기 이 얘기를 하시니깐, 학창 시절 아버지 주사로 집안이 난장판이 벌어졌을 때도 다음 날 아침 학교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제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줬던, 그러면 친구들은 제 주위를 삥 둘러앉아서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던 장면이 생각나요. 아이들은 제가 온실 속 화초, 사랑 듬뿍 받고 자란 부잣집 가정에서 자란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방어기제. 어렸을 때, 그렇지 않음에 대한 자기부정을 하면서 학교에서 생활했던 거지. 극단적이지. 간극. 그 갭이 너무 크잖아. OO이가 왜 예전에 그렇게 잠수 타고 우울했는지 이해가 돼."


"'허울' 하니깐 왜 갑자기 그 장면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회사에서도 연결이 되는 거 같아. 극단적이야. 갭이 너무 크잖아."


"제가 만든, 생각하는 모습에서 허용되지 않나 봐요. 융통성과 유연성. 융통성이 없는 부분. 남들에게는 그래도 직장에서 10년을 견디며 내공이 생기고 심리 공부도 하면서 여유가 생겨 타인에게는 유연성이 생긴 편인데, 저 자신에게는 한치의 변화도 없이 융통성 없게 철저하게 대해요."


"학창 시절 그 간극, 갭을 너무 잘 안다. 그걸 그 어린 시절 느꼈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직장에서의 10년 본인은 어떻게 지낸 것 같아?"


"처절하리만큼 투철하게 제 일을 한 것 같아요. '갭'을 얘기하면서 '처절하게'를 얘기하니깐, 제가 왜 처절하리만큼 상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아요. 저는 어린 시절 느꼈던 그 갭을 알았어요. 그 갭을 안다는 건 너무나 고통스럽거든요. 그래서 그 갭이 실재할 수 있도록 지금 노력하는 거 같아요."

"혹독, 치열, 타이트하게 산 건, 그게 없었던 걸 아니까 메꾸려고, 그 갭을 메꾸고 싶은 욕구, 치열하게. 학창 시절의 어려움을 메이크업하려는 동기, 그리고 그 갭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보상심리 등이 작용해서, 성장동기로 이어진 셈인 거지. 그래도 다행인 건 본인이 상담을 재미있어 한다는 것, 그게 커버를 해주는 것 같아."


"드디어 뭔가 실체가 나왔네요. 저희가 항상 궁금해했던 거요. 어떻게 넘어지고 넘어져도 계속해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길 수 있었는지. 이 문제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담을 통해 삶의 의미 부여 메커니즘이 제 안에 작동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상담을 통해 긍정성이 제 안에 생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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