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만월 Feb 11. 2023

한 인간의 나약함을 흔들지 마소서!

감정 알아차림<2023.2.6.점심 후 산책길에서>


  "여기(오른쪽 옆 머리통을 가리키며)에 새둥지가 들어앉았어요. 어쩔 땐 삐약삐약 거리고 어쩔 땐 노랫소리로 지저겨대요.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앉아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소리는 나에게 들리질 않고 새소리와 섞여요. 그래서 판단이 흐려져요.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고요히 새날을 알리는 음악 소리, 오후가 되면 활기를 찾아 주는 음악 소리, 밤이 되면 이부자리를 펴는 잠을 부르는 편안한 클래식 음악 소리. 그런데 잠들어서도 종일 들은 음악 소리 일부가 파편으로 조각조각 꿈 대신 들어와요. 때에 맞는 음악이 어우러지게 틀어지면 그날은 그래도 괜찮은 하루인데, 어떤 날은 아침 기상부터 가슴통을 울려대는 락과 헤비메탈이 들려요. 오후엔 엔니오 모리꼬네의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련한 영화 ost가 들리기도 해요. 그럼 그날 해야 하는 내 일은 멈춰서져요. 기운이 없어지거든요. 바이오리듬이 깨져요. 저녁까지, 늦은 밤, 아니 잠들기까지, 아니 잠이 들어서도, 뒤숭숭함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요." 

  "내 머리 한켠 들어앉은 둥지 속 새들은 내가 작동하는 레코드면 좋겠어요. 철저한 나의 통제하에서. 나에게 필요한 순간에만 작동되는."

  "내가 작동할 수 없는 레코드는 나의 생각과 마음을 어지럽히는 기계장치예요. 나의 행동에까지 미쳐요. 음악 소리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요. 두려울 뿐이죠. 편안하게 감상하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허락지 않네요."

  "예술가들이여, 창조주여, 그대들이 만든 자연과 음악으로 한 인간의 나약함을 흔들지 마소서!"

작가의 이전글 남과의 비교 없이는 어려운, 나에 대한 긍정 신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