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만월 Feb 16. 2023

나의 힐링거리 찾기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


교육분석을 받기 위해 매주 들르는 안국동

몇 주 전 시간이 비어 한 찻집에 들어갔다

아담하고 따뜻한 공간이었

서둘러 나오느라 보이차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해 아쉬웠었다


그리고 몇 주 뒤 교육분석을 받으려고 다시 들른 안국동

미술관에 들렀다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는데

그 찻집이 생각났다

그런데 낼 수 있는 짬은 고작 20분 남짓이었다

그래도 수정과가 마시고 싶었다 그곳에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수정과 있을까요?"

"어쩌죠. 아직 안 들어왔는데"

"아, 그럼 쌍화차 주세요"

"조금 쓴데 마실 수 있겠어요?"

"네, 저 쓴 거 좋아해요"

10분 정도 지나서 바로 테이크아웃을 부탁드렸다

"매번 여유 없이 와서 음미를 못 하네요"


그리고 오늘, 오전 상담을 끝내고

교육분석받기까지 남은 2시간

일부러 밥을 먹지 않고

'오늘은 그곳 그 찻집에서 여유 있게 차를 마실 거야'

생각했다


"오늘은 여유 있게 왔어요

 오늘 같은 날은 어떤 차가 좋을까요?"

"오늘 같은 날은 날씨도 꾸리꾸리하니까 고수봉황차가 좋을 거 같아요

 (이름을 내가 제대로 적은 건지 모르겠다)

 한번 드셔보세요"

"네, 추천해 주시는 거 마셔볼게요"


<잠시 후>

보온병에 들어있는 따뜻한 물을 따라주시면서

"우선 찻잎이 있는 잔에 물을 따르고 10초 있다가

 유리잔에 따르고 그러고 나서 찻잔에 따라서 드셔보세요"


"우선 찻잎 향을 맡아보세요"

"음, 구수하네요"


<잠시 후>

"어떠세요, 마실 만하세요?"

"네, 구수하면서도 쓰기도 하고

 차를 잘 안 마셔본 사람인 저도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수는 베트남의 고수를 말하는 게 아니고

 지대가 높은 곳을 말해요. 봉황이 붙은 건 그만큼 좋다는 뜻이고요"

(내가 마시고 있는 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아쉽게도 기억하는 게 요 두 개뿐이다^^)


"혹시 차 클래스도 하세요?

 제가 차를 배워보고 싶어서요"

"지금부터 배워놓으면 너무 좋죠"

"제가 몇 번 왔는데, 차를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글 쓰시는 분이세요?"

"아, 아니요. 상담심리 공부하는 학생이에요"

"아, 그렇구나. 차랑 잘 어울리실 거 같아 보여요"


"차는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저희 부모님이 차를 좋아하시고

 엄마가 보이차 수업을 들으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물도 잘 안 마시는 사람이라서

 근데 차는 마셔보고 싶다는 로망이 좀 있어서요"

"저도 물 잘 안 마셔요. 그런데 차는 잘 맞더라고요

 저는 녹차로 시작했었어요

 (녹차부터, 아들 여자친구가 미술치료를 한다는 얘기,

 찻집 인테리어 얘기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하시면서)

 아, 너무 신난다, 좋다"

"저도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그랬나 봐요. 여기만 온 게요

 이 근처 찻집이 정말 많은데 여기만 오더라고요 제가.

 사람은 다 인연이 있나 봐요


 저도 상담을 하지만 저에게 힐링이 되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고 있거든요

 차를 배우고 싶었어요. 차도 좋아하고, 꽃도 좋아하고, 향도 좋아하고

 저한테 힐링되는 것들을 찾아보려고요"

"너무 좋아요. 차는 와인 배우고 커피 배우고 하듯이 지금 손님 나이대부터 배우면 좋을 거예요"

"네, 그럴 거 같아요"


"그럼 다음 주 또 올게요. 그때 클래스 안내 부탁드려요"

"네, 준비해 놓을게요"

"네네, 감사해요"



#1. 어제 논문 피드백을 지도교수님께 받았다. 일주일 뒤 다시 제출하고 그걸 가지고 본심으로 갈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다 통과받았는데, OO선생님은 제출한 거 보고 결정하겠어요. 그러니 논문에 집중해요! 였다.

#2. 츤데레처럼 챙겨주시는 지도교수님의 의도를 알면서도 정말 한 학기 미루겠다면 미룰 수 있는 분이라서

걱정이 되었다. 자신감도 없어지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잠을 설쳤다.

#3. 오늘 오전 상담을 마치고 이 찻집이 생각났다. '그 찻집에서 힐링하고 싶다.' 나의 스팟이 생겼다.

#4. 찻집 사장님과 차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기하게도 정말 힐링이 되었다.

#5. 어제 축 쳐진 나를 위로해 주던 동기와 차 사진을 공유했다. 어제의 위로가 고마웠다. 감사인사와 함께,

힐링만 하다 논문 못 쓰면 안 되니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하는 톡을 보냈다.

#6. 어제오늘 나의 마음을, 잠시 후 있을 교육분석 시간에 나누며 나를 다시 세우려 한다.

#7. 어제 지도교수님의 호랑이 같은 꾸지람이 나에게 회초리처럼 확 다가왔다. "미루는 건 습관이에요. 고치지 않으면 논문 쓰기 힘들어요." 엄하게 얘기해 주셨는데, '그래 고쳐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감사했다. 뻔한 이야기였는데, 어느 부분에서 고쳐보자는 생각이 확 든 걸까?

#8. 부정적인 생각은 떨치고 나를 오롯이 믿으며 '논문에 집중!'에 집중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한 인간의 나약함을 흔들지 마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