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스톡홀름 # 4
걷는 게 좋다.
Where, When, with Whom이 때론 중요하지만
나홀로 걷는 순간이야말로 평생 가질 수 있는
가장 달콤한 특권 아닐까
산책을 나선다. 첫 여정에 내딛는 설렌 발걸음. 아니, 힘찬 발걸음이었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 이토록 반가웠던 적이 있었던가, 싶도록 모든 게 고마운 순간. 이또한 매 분 매 초 모든 감각을 깨워 열어놓는 여행자의 특권이겠지...매 순간이 고맙고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하는 그런 순간의 경험 말이다. 일상으로부터의 잠시간의 탈출(?)이 안겨주는 행복한 위안은 말 그대로 기분 '전환'이다. 낯선 도시를 '걷는 만큼' 그 도시와 친구가 되는 그런 느낌 알까. 여행자는 어쩌면 여행지마다 짝사랑을 하며 유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해도 해도 더 해도 될 것만 같은 그런 짝사랑 말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 각양 각색의 포스터를 유심히 보게 된다. 꽤 재미지고 흥미롭다. 유용한 공연이나 전시 정보를 얻기도 하고 포스터 디자인이 내비치는 그 도시의 특징을 미리 훔쳐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기 때문인데,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 내한 소식이 담긴 포스터가 왠지 모르게 반갑다. 스톡홀르머들도 그를 좋아하는구나, 싶은 괜한 반가움 후훗.
걷고 거닐며 유심히 보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문'이다. 유럽은 그야말로 어느 도시를 가도 각양 각색 문의 향연이 펼쳐진다. 치명적이리만치 매력적이고 아름답기도 하고, 스토리가 깃들어 보이기도 하고, 색감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저 문을 열면 어떤 공간이 펼쳐질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건축 양식에 따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누군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따라 만들어지고 어우러진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하고.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문과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여행이 아니라면 유심히 바라볼 기회도 많지 않은데, 이 또한 여행자의 특권이지 싶다. 제일 먼저 향하고 싶었던 곳은 다름 아닌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Stockholm Stadsbibloitek)'이었다. 호텔 엣헴(ett hem)에서 걸어가면 약 20~30분 소요된다고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 향했다.
https://goo.gl/maps/b9yat9Vu6g42
1928년 스웨덴의 대표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GUNNAR ASPLUND)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죽기전에 꼭 봐야 할 건축물로도 선정된 바 있다. 저 옛날 지어진 도서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모던한 이 느낌적 느낌. 스웨덴의 힘일까. 두근대는 마음 부등켜 안고 입장!
낯선 도시를 걷는 내가 좋다
늘 어딘가를 향하려는 내 발걸음이 참 좋다
Amazing! Fantastic! 우와....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압도 당했다. 책장이 360도로 만들어져 있고 그 모든 공간에 책이 한가득이다. 여기가 천국인가요? 라고 외치고 싶었던 순간. 하루 종일 머물고 싶은 그런 곳. 숨죽이고 잠시 발걸음도 멈춘 채 한 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독서가 생활화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책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스웨덴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멋진 공간. 그 정신을 0.1%라도 훔쳐가고만 싶었다. 날마다 서재처럼 이 곳을 다녀가고 누리고 머물고 만끽할 수 있는 스톡홀르머들이 미치도록 부럽고 부럽다. 도시의 애정과 배려가 그들에게 안겨준 선물 아닐런지.
Beautiful ♥
한참을 거닐고 거닐며 흠모하는 작가들의 책도 찾아보고 구석구석 기웃거리며 부러움 가득한 마음 진정시키고선 열람실 한 켠에 자리를 잡아 보았다. 여행 틈틈이 읽으려 가져온 밀란 쿤데라 에세이 'Encounter'도 꺼내어 한 30분 독서 시간도 갖고, 엣헴에서 선물로 준 예쁜 스톡홀름 소개 그림책을 보며 다음 동선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니 마치 스톡홀르머가 된 기분이었다랄까. 무엇보다 그립고 그리운 사랑하는 연인에게 건네기 위해 스톡홀름에서 쓰는 첫 러브레터를 끄적여 보는 로맨틱한 짧은 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최고의 추억 중 하나이다. 짝사랑 하다 드디어 만난 도시의 아름다운 도서관 한 켠에서 그에게 쓰는 편지라...나만의 의미로 남겠지만 꽤 오랜 시간 여운으로 남지 않을까.
오래 전 작가 박웅현의 말이었지 싶다.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잠시나마 스톡홀름에서 누려 본 일상 같던 순간들. 그치만 너무나도 특별하게 느껴졌던 일상. 걷고, 책을 읽고, 편지를 쓰는 건 어쩌면 그저 평범한 일에 지나지 않을지 않음에도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내가 좋았던 건지 그곳이 스톡홀름이어서 좋았던 건지. 아무렴 어떠하리, 나는 그 순간만큼은 자유로운 여행자였던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