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계절, 가을

by 웬디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게 느껴진다.

짧아졌다고는 해도,

서늘한 공기가 문득 아침저녁으로 느껴질 때

나는 시간의 흐름을 콧등과 입술로 느낀다.


작년에도 가을이 다가왔을 때

나는 스스로가 변화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새긴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던 가을날.


1년 동안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문득 궁금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나보다도

내가 느낀 주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남자도 섬세할 수 있다는 허락


최근 지인과 나눈 대화 중 마음에 남는 말이 있었다.


"이제는 내가 이전에 정말 바랐던 분위기가 오고 있는 것 같아."


그는 직업 군인이었다.

군인으로 복무하고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남자 집단'의 문화에서 오래 지내왔다.

당연하게 놀 때는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연약함은 무시해야 하는 요소였다.

'강한' '남성'의 조합이 우리나라에서 주는 답은 꽤나 일목요연했다.


그래서 요새 MZ들 사이에서 MBTI처럼 유행인 '에겐남' '테토녀' 같은 단어들이

그에게는 남자도 섬세한 성향을 가질 수 있다고 허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음악을 했었다.

밴드에서 기타를 쳤고, 음반도 한 번 냈다.

알코올이 강한 소주보다는 달달하고 향미가 좋은 것을 사랑했다.

우리나라의 입시에서는 실패했고,

방황할 때쯤 맞닥뜨린 군대 소집에서 의외의 적성을 찾았다.


규칙잡힌 생활, 강한 남자의 문화,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 헌신할 수 있는 대상.

그는 적성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운동이 재밌었고,

이제 그에게 운동은 취미가 아니라 루틴이 되었다.


우여곡절은 항상 있었다.

특전사를 지망했지만 업무 수행능력이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이유로 떨어졌다.


아마도 소방관으로 전향한 것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기질을

더 이롭게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궁금했다.

그런 일은 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을까?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에 대한 존경심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했다.


"나는 일하다가 죽는 게 제일 멋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과로사로 죽는 것도 멋진 거냐고 물어보자,

그는 그것도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기하다”


나는 아픈 게 지독히도 싫어서 따뜻한 이불에 누워 잠자다가 가는 게 목표였다.


그저 생각한 적은 있었다.

내가 죽을 때 뭐가 제일 미련에 남을까.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의 삶에 충실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또한 몸을 던진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잘 쓰일 곳'을 찾기 위해 이직을 하다가,

결국 스스로 창업을 하고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돈 없고, 현실적인 안정을 쫓던 내가

엔지오를 만들 줄 누가 알았을까.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시대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내용의 결이 달라졌다.


우주소녀 다영이 케이팝 솔로로 데뷔했다.

3년간의 노력, 매일 새벽의 영어공부와 운동루틴.

'노력하는 서툰 모습을 공개하는 솔직함', '독기', 절박함을 공개하는 용기를 사람들이 알아봐주며

서로 댓글로 퍼뜨리는 흐름이 생겼다.


유튜브 숏츠에서는 만 원, 십만 원으로 생활비 아껴 써보기,

소담한 일상에 충실하기 등의 콘텐츠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비판적 댓글에는 '애쓴다', '없어 보인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원래 잘살려면 애써야 한다.

완벽한 모습은 사실 허구의 것이다.


불완전하고 어리숙한 것을 인정하는 시대의 흐름.

그게 온 거구나, 문득 깨달았다.


인간적인 삶의 모습은 원래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것이다.

그 모습을 그 자체로 예쁘다고 바라봐주는 시기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가을이 주는 깨달음


문득 깨달음을 얻고 약간 뭉클해진 것은

내가 가을을 타기 때문일까.

선선한 바람에 섞인 결마다의 온도가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눈을 감고, 그 순간을 그저 음미하고 싶었다.


변화는 때로 파도처럼 크게 밀려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을 바람처럼 그저 조용하게 스며든다.


지인이 느낀 변화, 유튜브 댓글창에서 벌어지는 작은 혁명들.

그리고, 스스로 느껴지는 변화까지.


오늘, 나는 내가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숨쉬며 삶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간인 이유다.

이제야, 그것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시대가 온듯하다.


강하기만 해야 했던 남자들도.

또는 - 완벽해야 했던 모든 이들도.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가.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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