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겸 비서라는 아이러니”
(*이번 글은 총 3부로 구성됩니다)
그 제안이 실제로 입 밖으로 나온 날은,
골프장에서 돌아오는 벤츠 안이었다.
그날 회장님이 라운딩을 돌고, 다른 지인들과 연회를 즐기는 동안
나는 클럽하우스 레스토랑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직원이 뭐 필요한 게 없느냐고 세 번쯤 묻길래,
더 이상 거절하면 오히려 그들을 긴장시키는 것 같아 그냥 아메리카노 한 잔을 부탁했다.
내 대각선 자리에는 기사님이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붙은 사람처럼, 무표정하게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기사님은 늘 말이 없었다.
마흔 살 언저리의,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가 문을 열기 전 이미 내려서 뒷좌석 문을 공손히 열어 주는 사람.
그 배려가 너무 부담스러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도착하기 전에 미리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먼저 문을 열고 내려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골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여전히 회장님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기사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앞좌석에서 운전을 했다.
차 안에서는 회장님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업을 키우던 시절의 고생담, 사람을 보는 눈,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그러다 갑자기 회장님이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네 그냥 내 밑에 들어와서 비서 겸 작가 해.”
순간, 너무 솔깃했다.
그때 나는 오늘 하루의 경험에 피곤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 세상에 흠뻑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벤츠의 가죽 시트와 골프장, 직원들이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는 풍경.
내가 대필 작가가 아니라 정말 ‘누군가’가 된 것 같은 착각.
“제가… 생각 좀 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회장님 집에 도착해 인사를 드리고,
혼자 터덜터덜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가슴속에 무거운 짐 하나가 늘어난 느낌이었다.
놀랍게도 그 무게는 회장님의 제안에서 오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환상적인 세상 속, 벤츠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내가
이제는 다시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서 왔다.
그랬다.
나는 그 순간,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그걸 깨닫는 동시에, 회장님의 제안을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그 세상에 들어가고 싶었다.
단지 ‘작가로서’가 아니라, 그 삶을 사는 사람 쪽으로.
지하철역 입구 앞에서, 전화가 울렸다.
기사님이었다.
“작가님. 아직 안 가셨죠? 저랑 담배 한 대 피시죠.”
잠시 뒤, 기사님은 양손에 따뜻한 믹스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역 근처 건물 구석으로 가 나란히 서서 담배를 물었다.
늘 말없이 회장님의 수족처럼 움직이던 기사님이 먼저 나를 부른 것도,
먼저 말을 붙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우리는 날씨 이야기, 교통 이야기 같은 소소한 말들을 주고받다가,
기사님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작가님. TV에서 보던 재벌들이랑 저분이랑,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요.”
기사님은 잠시 말을 고르고, 다시 덧붙였다.
“저 분이 대단한 사람인 건 맞아요. 근데 하나만 명심해야 돼요.
저 사람 돈은, 절대 작가님 돈이 되지 않을 거예요.
오늘, 그리고 그동안 보신 것들에 너무 환상을 가지지 마세요.
저건 저들이 사람을 유혹하는 방식일 뿐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기사님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벤츠에서 내릴 때 느꼈던 묘한 우월감, 지하철역으로 향하며 느꼈던 분노와 서러움,
그 사이에서 살짝 기울어 있던 내 마음까지.
그리고 기사님은 내게 말했다.
“작가 겸 비서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그 말이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맞다. 세상에 그런 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하철을 타는 나는 존재했다.
현실을 바라보는 것과, 현실을 선택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회장님의 제안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되뇌었다.
다시 회장님을 만나기 전엔 답을 드려야했기 때문에
[작법 노트] 아이러니로 문장에 힘을 더하는 글쓰기
재벌의 세계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던 기사님의 조용한 충고가 만들어낸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글에서 아이러니를 살리면, 별다른 설교 없이도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1. 화려함과 초라함을 한 프레임 안에 넣어라
“벤츠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나” 같은 장면은 설명 없이도 계급 차이와 감정의 간극을 보여준다. 아이러니를 만들고 싶을 때는 먼저 두 세계를 한 프레임 안에 겹쳐 놓는다. 한쪽은 너무 화려하고, 한쪽은 너무 초라한 장면일수록 좋다.
2. 듣기 민망한 말은 남의 입을 빌려라
“작가 겸 비서 같은 게 세상에 어딨냐”는 말은 내가 스스로를 향해 하기엔 조금 가혹한 문장이다. 이런 문장은 기사님 같은 제3자의 입을 빌리면 훨씬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글에서 아이러니를 살릴 때, 내 입으로 하기 어려운 말은 캐릭터의 입으로 옮겨보자. 그들이 던지는 한마디가, 독자에겐 더 깊게 박힌다.
3. ‘내가 잠깐 취해 있었던 것’을 인정하라
아이러니는 결국, 내가 한때 믿었던 것과 지금의 생각 사이의 간격에서 나온다. “나는 그 세상에 흠뻑 취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조차도 망각하고 있었다” 같은 문장을 솔직하게 적어두면, 독자는 그 간격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글에서 아이러니를 쓰고 싶다면, 먼저 내가 어떤 환상에 젖어 있었는지부터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