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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Feb 04. 2020

아이가 잘 노는 집 - 이론편

우리 집이 제3, 제4의 공간이 된다면?

[아이와 가기 좋은 제3의 공간]에서는 김남매 엄마이자 리틀홈 COO, 이나연 님이 직접 가보고 고른 다양한 공간을 소개합니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놀이터 중에서 익숙한 공간이지만 새롭게, 다르게 놀아볼 수 있는 공간이나 미술관 + 놀이터, 박물관 + 공원처럼 여러 공간이 결합되어 있어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 방법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소개합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집에서 잘 놀지 못한다. 쉴 새 없이 엄마를 찾거나, 뭐만 하면 심심하다는 통에 결국은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틀어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아이들에게 집이 가장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가 먼 곳을 돌며 찾고 있는 제3, 제4의 공간을 집 안에서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초보 엄마 시절,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야 하는 시간이 참 어려웠다.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온갖 장난감을 다 꺼내어 놀아도 밖이 환했다. 집이 답답해 나가 볼까 했다가도 기저귀, 간식, 여벌 옷, 장난감 등 짐을 한 보따리 챙기다 지쳐 주저앉는 적도 많았다. 겨우 아이 둘을 잡고 끌고 공원과 놀이터 정도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땐 또 장마, 뙤약볕, 미세먼지, 한파가 길을 막았다. 온 우주가 도와야만 놀 수 있는 상황 이라니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무조건 잘 놀 수 있어야 했다.



반갑게도 최근 놀이에 관한 여러 담론과 실천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바깥놀이에 관한 것으로 아직까지 집 놀이에 관한 다양한 고민과 답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우리 집 남매는 육아 초보 엄마의 ‘어떻게 하면 집이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을까 실험’의 실험체가 되었고, 고맙게도 열심히 놀며 나의 가설과 시도를 검증해주었다. 아이들의 연령과 관심사란 늘 변하기 때문에 십 년을 이어온 실험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지난 몇 년 간 우리를 진짜 집 놀이의 지경으로 이끌어 주었던 몇 가지 팁을 공유해보려 한다.


마음과 환경을 조금 움직이는 것으로 놀이가 더욱 가까이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1단계. 치고 빠지기 전법


아이와 어울려 노는 것이 너무 쉽고 재미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금방 밑천이 드러나는 타입이다. 도대체 언제쯤 아이들과 노는 것에 익숙해질까를 고민하던 즈음 나를 구해준 것은 어른이 끌어가는 놀이보다 아이 스스로 이어가는 놀이가 훨씬 몰입도, 흥미가 좋다는 발견이었다. 얼마 전 EBS에서 방영된 ‘놀이의 기쁨’ 다큐멘터리는 부모가 개입하는 놀이의 문제를 짚어주었다.


놀이, 특히나 집 안에서 놀이를 할 때 부모에겐 ‘뭐라도 하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는데 그 마음을 참고 아이 스스로 놀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시작되는 진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훨씬 많은 것을 스스로 배운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놀이에 몰입한 모습이 꽤나 진지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놀이를 힘들어하는 성향이었던 것이 되려 다행이었다. 덕분에 아이의 놀이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이 수월 했으니 말이다.


물러남이란 방관이나 무관심과는 다르다.


자발적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치고 빠지는 전법이랄까? 부모는 아이의 놀이에 매 순간 개입 하진 않지만 놀이를 시작할 수 있게, 또 놀이가 시들지 않게 한걸음 떨어져 면밀히 관찰하고 때때로 건드려 주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적절한 질문을 적절한 때에 던지는 것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에서 생각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것, 예를 들면 ‘인형들도 오늘은 좀 춥겠는데?’, ‘부엌 앞 사거리가 막힌 것 같던데?’ 같은. 아이가 인형을 싸맬 이불이며 옷가지를 들고 달려오거나, 자동차가 줄을 잇기 시작할 때 - 놀이가 날개를 펴갈 때쯤엔 참견 일랑 미련 없이 거두고 신속히 빠져야 한다. 놀이가 훨훨 날아오르려면 텅 빈 활주로가 필요하니 말이다.


주차장을 설계하는데 푹 빠진 아이의 모습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에서 생각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놀이가 날개를 펴갈 때쯤엔 신속히 빠져주는 것.

     놀이가 훨훨 날아오르려면 텅 빈 활주로가 필요하니 말이다.



효과적인 치고 빠지기 전법에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놀이의 시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하고, 놀이의 형태는 아이 혼자 유지해 나가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집이라는 공간의 장점과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 아이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와 가까워져야 하는 ‘적절히 무심한 엄마’가 되기란 참으로 어렵고 극성맞은 일이었다. 내가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며 이 난해한 치고 빠지는 작전을 잘 수행하게 되었을 무렵 아이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혼자서도 너끈히 사고를 치는 것이다.


아이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적절히 무심한 엄마’가 되어보자.


적절히 무심한 엄마가 되는 것은 (대부분)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한다.



2단계. 사고 치기 딱 좋은 집


내가 한창 천지 구분 없이 사방에 그림을 그려 대던 무렵 엄마는 거실 벽에 전지 여러 장을 붙여 주셨다. 벽이고 바닥이고 난장판을 해놓는 것을 못하게 하는 대신 판을 벌여 주셨던 거다. 엄마를 난처하게 만들려던 것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서 몰두하다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셨던 거라 생각한다. 정말 오래된 기억인데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충만함과 만족감이 어렴풋하다. 내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이 벌이는 일에 관대해지자 마음먹었던 계기다.



아이들이 치는 사고를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놀이에 제대로 빠져있을 때 벌어진다.


종이에 그리다 자리가 모자라 바닥과 벽으로 넓어지고, 물을 졸졸 따르고 여기저기 붓다가 온몸에 뒤집어쓰는 식이다. 사고를 치는 아이는 놀이를 확장할 줄 아는 아이였다. 놀이의 핵심인 자율성과 확장성을 발현하는데 엄마 몰래 치는 사고만 한 게 있을까!


거실 전체가 마을이 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세계가 되기도 한다.


사고를 치는 아이는 놀이를 확장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쉽게 사고를 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아이가 언제고 눈을 들면 사고 칠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미술재료 등을 꺼내기 쉬운 곳에 두는 거다. 나중에 안 건데 대부분의 엄마들은 혹여 아이가 사고를 칠 까봐 위험한 재료(?)들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 둔다고 했다. 나는 사고를 수습하는 것보다 아이가 요청할 때마다 달려가 도와주는 것이 더 어려운 엄마였다. 삼십 분 청소하면 될 것을 세 시간 놀아주는 것과 바꿀 순 없었다. 비교적 수습이 쉬운 재료들로 구비해 놓으면 관대한 엄마가 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고 말이다.


나는 사고를 수습하는 것보다 아이가 요청할 때마다 달려가 도와주는 것이 더 어려운 엄마였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듯 우리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사고를 쳤다. 그 덕에 집은 늘 카오스였지만 아이들의 생각과 웃음은 코스모스처럼 활짝 피었으리라 믿는다. 엄마는 더러움과 정신없음을 견디는 인내심을 길러 한층 좋은 인간이 되었고!



3단계. 아이가 이기는 재료와 도구


사고 치기 좋아하는 아이들과 사고를 방관하길 즐기는 엄마가 사는 집은 늘 난장판이다. 아이들은 이 놀이를 하다 저 놀이를 하고 베란다 구석, 붙박이장 안까지 누비며 온 집을 놀이터로 만든다. 놀이에도 소위 말하는 ‘장비빨’이라는 것이 있는데 좋은 놀이에 적절한 장비가 만나면 좁은 집은 우주로도, 대도시로도 거뜬히 변신한다.


피카츄로도 거뜬히 변신 가능하다.
매일 우리집 거실은 장난감 공장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놀이 도구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연스레 받아줄 수 있는 확장과 변형이 용이한 재질이나 구조의 것, 가격에 부담이 없어 마음껏 망가트려볼 수 있는 것이다.


박스라는 놀이도구로 주차장이 생겨나고
생생한 화재 진압의 현장이 만들어졌다.

미니카를 가지고 노는데 갑자기 다리를 만들 수 있다면, 인형놀이를 하다 수영장이 있는 풀빌라를 만들 수 있다면 놀이는 한층 흥미로워질 수밖에 없다. 타워브릿지나 바비 맨션을 구입하는 것은 어렵지만 집안에 종이박스와 색종이, 테이프가 늘상 굴러다니고 있다면 뚝딱 쉽게 만들 수 있다.


아이가 직접 만들어 내는 것들은 허술하지만 상상력과 이야기라는 만능 재료가 있으니 문제없다. 중요한 것은 장난감의 완성도가 아니라 놀이가 확장되며 이어지는 인데 그러기 위해선 기성 장난감보다 필요할 때 아이가 직접 재료를 다뤄 만드는 게 적합할 때가 많다.


놀이가 이어지다 보면 거실 전체가 하나의 게임판이 되기도 하고
아늑한 영화관이 되기도 하고
맛있는 국수집이 되기도 한다.


엄마의 역할은 오다가다 번듯한 종이박스가 있다면 서슴없이 주워 오고, 넓고 좁은 테이프, 아이 손에 맞는 가위, 어디에나 잘 그려지는 크레파스, 색종이 등을 떨어지지 않게 챙기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 모든 것은 아이 손이 닿는 곳에 둔다.



작동법을 익혀야 하는 정교한 장난감은 멋지지만 가지고 놀다 보면 몇 번이고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반면 바닥에 놓으면 길, 뒤집어쓰면 옷이 되는 종이 쪼가리들 세상에선 어른이 아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이의 설명을 귀담아듣지 않으면 용에게 잡아 먹히거나 바다에 빠질지 모른다.


아이가 이야기부터 장난감까지 모두 만드는 세계에선 항상 아이들이 이긴다.




마치며. 놀이가 필요한 집


아이들이 잘 놀고 있는가를 진단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엄마를 찾지 않고 놀이에 빠져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간식을 챙길 때 까지도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지 않으면 정말 잘 놀고 있는 거다. 놀이의 시간이 길다고 무조건 좋은 놀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그만큼 놀이에 푹 빠져있다는 얘기니 말이다.



아무리 잘 놀아주는 부모라 해도 지치지 않고 쉴 새 없이 엄마, 아빠를 찾아 대는 아이 등쌀엔 견딜 재간이 없다. 나는 아이와 부모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부모에겐 아이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기회가, 아이에겐 자기만의 세계를 키워갈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좋은 놀이는 부모와 아이에게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준다.


나는 아이와 부모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놀이는 부모와 아이에게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준다.



아이들에게 집이 마음껏 자신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제3의 공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놀이를 통해 아이는 집에서 우주도, 사막도, 다른 차원의 공간도 갈 수 있다.


그 마법의 시작은 놀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관점 변화, 인내와 관대함이다.


우리집이 제3의 공간이 되는 마법, '놀이'를 시작해보자.


+ 우리집을 놀이터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꿀팁: 놀이 장비 리스트와 정리정돈팁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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