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대구, 대전, 광주의 좋은 놀이공간만 모아서 만든 "놀이지도"
[Things we build]에서는 Play Fund가 진행한 혹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과정을 담은 아카이빙 콘텐츠일 수도 있고, 프로젝트 결과물을 담은 콘텐츠일 수도 있습니다. 프로젝트마다 Play Fund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생각, 프로젝트로 만난 나름의 답, 풀리지 않은 숙제, 그리고 프로젝트를 확산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상상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콘텐츠는 SEE SAW를 발행하고 있는 C Program의 Play Fund가 리틀홈팀과 함께 4개 지역에 "적은 비용"으로 아이들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놀이 공간을 재미있게 소개하기 위해 만든 놀이지도입니다. 놀이지도에 담긴 공간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선정되었고,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합니다.
호숫가 마을 작은 도서관의 주소를 찾아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뒤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천천히 가다 보면 멀리 호수가 보이는 한적한 길이 나옵니다. 대전역을 벗어난 지 몇십 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마을 전체가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차에서 나는 소음이 부끄러웠습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찾다가 반가운 간판을 마주합니다.
누군가 손으로 만들었을 법한 도서관 간판 그리고 도서관에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자전거와 교실 의자, 미닫이 문, 그리고 나란히 놓여있는 어른의 신발 옆 아이의 빨간 구두. 도서관의 외관은 조금 허름한 듯 보였으나 이내 곳곳이 정감 있는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 내부는 장서가 많진 않지만 관장님이 고심하여 고른 책이 잘 큐레이션 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이 유일하게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정보를 얻고 무언가 작당을 할 수 있는 곳. 이 도서관을 꾸려가고 계신 관장님은 이 공간을 아이들이 동네 어른들과 세상과 만나는 장으로 꾸며놓으셨습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읽은 그림책들 중에 마음에 쏙 드는 작가님을 찾아, 직접 편지를 써서 작은 도서관에서 북토크를 여는 이벤트도 계획했다고 합니다. 동네 분들에게 낚시하는 법, 바느질하는 법 등을 집집마다 찾아가 배우고 그 배운 내용을 책으로 엮어 이 도서관의 장서로 놓아두기도 합니다.
도서관에 머무는 내내, 도서관 근처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세상의 모든 평화와 아름다운 것들이 제 것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방문해서 아이들을 만날 순 없었지만, 아이들이 도서관 구석구석에서 책을 읽고, 또는 만들고 이야기할 장면이 떠올라 내내 행복했습니다. 이 작은 도서관을 꾸려가고 계신 관장님은 아주 소규모의 사업비를 지원받고 학교에서 강의하시는 수입으로 소박하게 공간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이 공간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놀이지도 프로젝트 덕분입니다. 놀이에 관심 있는 대전분들 중 어떤 분이 이 공간을 소개해주셨고, 저희와 함께 파트너십을 맺었던 리틀홈 팀의 CCO이자 엄마 에디터이신 나연님이 놀이지도에 담을 수 있는 공간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직접 공간을 다녀오셨습니다. 이 공간에 다녀오시고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호숫가 근처에 있는 매력적인 위치에 아이들에게 항상 열려있고, 따듯한 시각으로 책을 큐레이션 해두셨으며, 아이들이 동네 어른도 만나지만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으로 소개해주셨습니다.
씨프로그램은 아이들을 위한 좋은 공간들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이런 공간은 씨프로그램이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동네에서 쌓아온 시간들이 오롯이 공간의 분위기를 만듭니다. 동네의 아이들에게 애정을 갖고 운영하시는 관장님 같은 분이 동네의 맥락에 맞는 공간으로 운영하는 곳입니다. 건물의 외관이 조금 허름하지만, 그 허름함을 매력적으로 바꾸는 어떤 지원이 있는 것이 이 공간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 자체로 아이들에겐 정말 사랑방 같은 공간입니다.
놀이지도는 이런 공간을 더 많이 발견하고 발견한 곳들을 더 많은 분들께 알리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들은 필요하고 여전히 부족하고 더 많아져야 하지만, 기존의 공간들 중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을 잘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도서관을 찾을 수 있었던 특별한 과정을 소개합니다.
씨프로그램에선 놀이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 대전, 광주, 대구에서 플레이어스 포럼을 열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시는, 놀이에 관심 있는 분들이 모였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놀이'의 속성은 무엇인지, 어떤 놀이 공간이 아이들에게 좋은 공간인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각 지역마다 두 번의 포럼이 열렸고, 두 번째 포럼은 각 지역에서 살고 계신 분들이 각자가 추천할만한 좋은 놀이 공간에 의견을 나누고 지도에 매핑해보는 시간으로 진행했습니다. 5,000원 미만의 입장료, 접근이 편리한 공공장소라는 기준만 두고, 참석한 분들이 ‘좋은 놀이 공간이란 뭘까’를 의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씩 찾아 나갔습니다. 조별로 뽑은 좋은 놀이 공간들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투표까지 하고 나니, 지역에 숨어있는 좋은 놀이공간들의 Best of Best의 리스트들이 나왔습니다.
관광지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놀이의 경험이 무엇인지 고민한 어른들이 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떠올렸다는 점. 그리고 그 지역에 오래 사는 분들이 지역의 맥락을 이해하고 추천해주신 장소라는 점에서 이 리스트는 정말 소중했습니다. 그때 이 리스트의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담아 땡쓰북스와 함께 첫 번째 놀이지도를 만들게 됩니다.
아이들과 놀러 다니는 부모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대로 큐레이션 해서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참에 리틀 홈이라는 팀을 만났습니다. 좋은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더불어 그 공간을 이용하는 팁,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 필요한 편의시설에 대한 정보들이 중요한데 그런 것들까지 담아 소개하는 어린이 놀이공간 소개 플랫폼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리틀홈 에디터가 직접 공간에 가서 찍은 사진과 직접 쓴 글만 올릴 수 있었고, 아이들과 노는데 일가견이 있는 엄마들이 에디터가 되어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에디터분들이 지역에 있는 분들이 추천해주신 공간을 직접 가보고 필요한 정보들로 큐레이션된 설명이 있는 지도라면, 그리고 이 지도가 더 예뻐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지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두 번째 놀이지도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만든 놀이지도의 놀이 공간들을 리스트업 하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들로 분리했습니다.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 다양한 신체활동이 가능한 곳, 예술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 지적 호기심을 갖고 탐구할 수 있는 곳으로 분류했습니다. 이 분류를 한 이유는 좋은 '놀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놀이 또는 경험을 하는 장소들이 균형 있게 반영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놀이 공간이란, 이런 경험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이런 경험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균형 있게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도에 최대한 균형 있게 담기 위해 각 카테고리 별 공간을 리스트업 했고, 최종 지도에도 전체적인 개수에서 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의 수가 균형이 맞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그 리스트에 있는 놀이 공간을 리틀홈 에디터 3분이 직접 아이들과 함께 답사를 갔습니다. 아이들과 놀아보고 이 공간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는 무엇인지, 할 수 있는 활동들은 무엇인지 경험해본 정보들이 담겼습니다. 또한 이 공간까지 쉽게 가는 방법, 이 공간이 열고 닫는 시간 등의 중요한 기본 정보, 그리고 이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팁. 그리고 이 공간을 갈 때 함께 가보면 좋을 동선상에 있는 또 다른 공간 추천까지. 실제 공간을 가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정보들을 꼼꼼하게 기록해 오셨습니다.
이런 정보들을 함께 보면서 최종적으로 공간을 선정했습니다. 선정한 공간들을 지도 위에 배열하고, 필요한 정보만 압축해서 담는 일을 리틀홈에서 맡아주셨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4개 지도에 담길 놀이 공간들과 이야기들이 정리되었습니다.
4개 지도를 보면 그림체가 다 다릅니다. 지역의 분위기나 느낌을 반영했고, 어떤 종류의 공간들이 많았는지 등을 반영하여 지도의 디자인을 각각의 개성을 담아 다르게 디자인해주셨습니다. 하나의 그림체가 모든 지역의 놀이지도를 대변하기보다, 그 지도의 특성에 맞는 그림체들이 있어 훨씬 더 다채롭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지도가 매번 똑같은 그림의 형태이기보다,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는 게 좋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도 높은 놀이지도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게 된 추동은 아래의 모습처럼 지도에 담겼습니다. 도서관이어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주위의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서 자연을 만날 수도 있으며 뛰어놀 수 있는 곳. 그리고 도서관 주위에 함께 가볼 수 있는 공간의 팁까지 적혀있습니다. 직접 가보지 않고, 관장님과 이야기 나누지 않았다면 담기기 어려운 정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공간을 한 가지의 테마나 한 가지의 유형으로 정의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두는 곳, 아이들이 느끼고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재료들이 많아서, 특별히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면 좋은 놀이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경험에 치우치지 않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지도는 그런 경험적인 측면의 다양성을 반영하여 공간을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누구나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지도에는 적은 비용이거나 혹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을 꼽았습니다. 아이들 누구나 부담 없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그런 숨은 공간들이 잘 담겨 있는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우선 4개 지역의 플레이어스 포럼에 참석한 분들과 그 포럼을 운영한 '위즈돔'이라는 팀. 그리고 이 공간을 일차로 정리하여 첫 번째 지도로 만들어주신 땡스북스, 이 지도를 가지고 공간들을 다시 카테고라이징하여 필요한 공간들을 직접 다녀오시며 공간에 대한 제대로된 정보를 쌓아주신 리틀홈 에디터분들, 그 정보의 내용을 핵심만 정리하여 지도에 담은 내용과 구성을 정리하신 나연님, 그리고 이 지도를 개성을 담아 작업해주신 4분의 작가님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여 만든 결과물입니다. 이 결과물이 더 많은 분들에게 닿아 지역에 있는 아이들도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지역에 갈 일이 있는 가족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글: C Program Play Fund 신혜미 매니저
아이와 꼭 가봐야 할 우리나라 놀이지도 : 부산│광주│대구│대전
놀이지도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 리틀홈 CCO 나연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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