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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Dec 28. 2018

지자체와 일한다는 것은

실험을 지속하는 힘: 협업의 기술

To. 지자체와 협업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지자체와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일부 조직은 아예 지자체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과연 우리는 지자체와의 협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혹시 고정관념이나 단순히 어려울 것 같다는 가정으로 좋은 협업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15개월 동안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씨프로그램, 세이브더칠드런, 군산시의 사례를 통해 막연했던 생각을 구체적인 대화로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들어가며

협업의 배경인 "군산시 놀이터 환경 개선 프로젝트"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신혜미 매니저: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가 과연 우리 지역의 놀이터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의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기존 놀이터를 잘 이용하고 있는지, 새로운 놀이터가 가장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 과연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이 만족하며 놀고 있는지에 대해 답을 구하고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죠. 



이를 위해 먼저 국내외 문헌을 연구하여 놀이터 환경을 평가하는 진단 도구를 개발했고 그 도구로 군산시 놀이터 74개소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조사할 때는 전문 조사원뿐 아니라 시민 조사원도 직접 참여해주셨죠.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군산시 지자체 분들과 세이브더칠드런, 소비자 조사 컨설팅 회사가 모두 모여 워크숍을 했고 유지, 관리가 필요한 놀이터를 우선순위화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군산시 놀이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장기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당장 필요한 작업을 나누는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었죠. 최종적으로 개선 구역으로 선정된 곳은 동네 아이들, 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놀이터 컨셉도 도출하고 설계, 시공까지 마쳤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작년 9월부터 무려 15개월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에 정말 많은 주체가 참여하셨는데 전문가 그룹으로는 군산시 어린이 행복과, 산림녹지과 및 세이브더칠드런, 디아이디어그룹(소비자 조사 컨설팅 회사), 건축사사무소 53427이 참여하셨고 개선 구역으로 선정된 동네에 사는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 시민 조사원 분들께서 참여해주셨습니다. 실험적인 새로운 시도라서 걱정도 많았지만, 세이브더칠드런의 제충만님과 군산시 노창식 계장님덕분에 성공적으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경험이 앞으로 지자체와 협업을 고민하시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자기소개


노창식 계장님: 저는 군산시 어린이 행복과의 노창식 계장입니다. 군산시는 어린이가 행복하면 지역 사회가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어린이 행복도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소속된 어린이 행복과도 생겼는데 사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이름이 추상적이라서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NGO가 하는 토론회,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고 ‘놀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업을 추진하면서 세이브더칠드런과 씨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늘 만나는 게 민원이고 민원을 해소하는 일이 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번 사례가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충만님: 저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6년 동안 아동권리 옹호 활동을 하는 제충만이라고 합니다. 아이들 권리 상황을 분석하고,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예산, 법, 정책을 제안하고 발의하고 바꾸는 일들을 진행했습니다. 2015년에 서울시와 중랑구, 씨프로그램과 함께 놀이터 2개를 개선하며 협업했던 경험과 서울시 창의 놀이터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자체와 협력한 경험이 있습니다. 



#첫 번째 고정관념. 지자체와 함께라면 새로운 시도는 어려울 것이다.

저희가 놀이터를 개선하기 전에 진단을 먼저 하자는 말씀을 드렸을 때 굉장히 새로운 시도였을텐데요. 어떻게 이렇게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나요? 


노창식 계장님: 놀이터 개선 사업을 하게 된 이유가 그간 놀이터는 민원이 오면 관리를 하는 일종의 관리 대상이었거든요. 여름밤에 보면 풀도 무성히 자라나 있고.. 그런데 사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잘 놀아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이 많았고 놀이 버킷 리스트 등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해왔습니다. 민들이 놀이터, 어린이 공원을 잘 이용하고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보니 '진단'의 제안이 방향과 맞다는 생각을 해서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충만님: '진단'이라는 새로운 방향이 정해지기 전에 군산시와 세이브더칠드런이 먼저 합을 맞춰가는 시기가 약 6개월 정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기가 새로운 실험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서로 마음에 별을 다는 시기를 충분히 보내서 좋았는데요. 올레길처럼 놀이 길을 조성하자, 플레이버스를 만들어보자 등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함께 만들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에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이 시기를 통해 서로의 니즈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는데요. 계장님이 요구하셨던 세 가지, "놀이터를 개선하고 싶다. 우리가 최초였으면 좋겠다. 관광객들이 군산에 왔으면 좋겠다"가 굉장히 명확했고 저희의 니즈도 분명했기 때문에 서로 조율이 가능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같이 일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메일도 많이 주고받고 많이 만나면서 "이 분과는 뭐라도 같이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실험적인 프로젝트임에도 흔들리지 않고 같이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혜미 매니저: 이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에 가장 필요한 방식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미리 잘 만들어 두셨다는 생각을 했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놀이의 상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걸 미리 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누셨기 때문에 진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필요성에 공감해 주셨다고 생각하거든요. 꼭 지자체라서 어렵다기보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시간을 들여서 초기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야기 나눌 수 있는지, 담당자가 그걸 들으실 수 있는 열린 분인지 확인하는 시간이 새로운 시도를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고정관념. 부처 간 협조가 필요하다면 더 어려울 것이다.

어떤 회사든지 다양한 팀들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어렵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지자체는 더더욱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노창식 계장님: 군산에 어린이공원(놀이터)만 74개, 전체 공원은 200개가 넘거든요. 핵심 부서인 산림녹지과에서도 공원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이런 기초 데이터 확보가 필요했는데 일이 많고 전문 영역이 아니라서 못했을 뿐이었다보니 공감대가 형성되니까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었습니다.  


제충만님: 제가 봤을 때 제일 중요했던 부분 중 하나는 저희가 의사결정권자인 시장님을 초기에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일이 진행이 되다 보면 행정적으로 처리를 도와줘야 할 부처들이 있는데 시장님께서 초기에 관심을 가지시면 협조를 구할 때 타 부처에서도 "이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안다"며 쉽게 도와주신 경우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시장님한테 보고를 드리면서 일정, 방식을 세부적으로 짜서 보고하다 보니 이 자체가 타임라인에 대한 압박이 생기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이번 프로젝트는 초기에 시장님의 응원을 얻을 수 있었고 보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이해도, 필요성, 세부 계획을 짚고 넘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세 번째 고정관념. 긴 호흡의 프로젝트에 어려워할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처럼 15개월에 걸친 긴 호흡의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창식 계장님: 짧게는 3-6개월 안에 진행하는 사업도 있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진단이라는 절차에 따라서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듣다 보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 입장에서 민간만큼 예산을 유연하게 쓰기가 어렵고 행정 절차에 맞춰서 쓰다 보니 딜레이 된 부분도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제충만님: 프로젝트가 길어진 이유 중 하나는 행정의 시간표가 따로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선거 시즌이나 예산 시즌, 공무원 승진 시즌, 이런 것들이 우리는 모르지만 행정의 시간표에는 분명 존재하고 이로 인해 한 두 달씩 금세 지나가기도 하거든요.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중간에 시장님, 지방 의회 의원이 다 바뀌어서 프로젝트를 다시 소개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미리 행정의 시간표를 염두에 두고 어떤 변동 요인이 있을지 고민하고 여유 시간을 충분히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혜미 매니저: 맞아요. 프로젝트가 길고 길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실제 행정의 시간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그것과 연동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담당자와 커뮤니케이션해서 일정을 시간표에 맞게 세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고정관념. 필요보다 성과(보여주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사실 '진단'이라는 게 유지 관리 측면이라 밖에서 성과가 잘 보이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이 사업을 결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노창식 계장님: 놀이터 환경 진단은 누구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이번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오히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정말 기본이 있어야 성과가 난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시민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 성과라고 생각해요. 74개 놀이터를 전부 조사하면서 시민 조사원들을 모집했는데 섭외가 정말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공지하고 홍보를 하다 보니 시민분들께서 전화로 신청을 해주시는 걸 보니 정말 너무 고맙고 시민 의식도 느낄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는 전문가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성과인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기초가 튼튼해져서 다른 부처든 시민분들이든 어떤 질문을 해도 답변할 수 있게 되어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충만님: 몇몇 분들은 ‘내가 만났던 공무원들이 이 느낌이 아닌데?’ 하며 약간 답답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 일부 공무원 분들은 성과보다는 보여주기에 더 집중하시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지자체와 다른 프로젝트를 하면서 보여주기 식이라고 생각했던 행사가 지역 주민과 공무원을 연결해주는 자리가 되는 것을 보면서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자체와 일할 때는 '보여주기'가 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역으로 이를 활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성과로 어떻게 바꿔낼지 고민하는 게 더욱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협업을 마치고 난 소회


제충만님: 협력 프로젝트는 서로가 넘으면 안 되는 마지노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가면 위험한지 지점을 알아야 합니다. 지자체, 혹은 3자 4자 협업 관계를 맺는 프로젝트는 분명하게 어느 선까지 갈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가고 선을 넘지 않도록 서로가 조율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창식 계장님: 주요 사업이 시행되는 절차는 지자체는 대부분 비슷한데요. 과 단위에서 결정을 하고 계 단위에서 집행을 하기 때문에 과장님이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팀장과 팀원이 하려고 하면 못할 일이 없어요. 그리고 절차가 지원 부서와 사업 부서 간 협의를 거치고 예산을 세우고 하려면 시행까지 1년 반, 빠르면 6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단체장의 관심을 받으면 기간이 확 줄어듭니다. 시장님이 과장님과 이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진행하는 것이 프로젝트를 빨리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소회를 말씀드리자면 저희 공무원들, 아이들이 모두 입을 모아 이 프로젝트의 과정이 길긴 했지만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가 실제로 놀이를 한 느낌이랄까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영감을 받아서 어른들도 교육 프로그램에 놀이를 넣어서 시범으로 한번 해보려고 하고 있고 선생님들도 놀이에 대해 정보가 부족하신 것 같아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영감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Q&A


지자체 공무원이 이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노창식 계장님: 제가 공무원 생활을 26년 했는데 칭찬, 표창, 승진이 가장 기본적인 격려 표현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자긍심이나 사명감 같은 것은 누구나 다 있기 때문에 큰 인센티브 없이도 가능하고 공감대가 있다면 어떤 프로젝트든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험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협업에 대한 오늘의 대화가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하던 고정관념을 바꾸는 시작점이 되길 바랍니다. 이미 다양한 주체와 협업을 하고 계신 분들께는 앞으로도 협업을 계속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되고, 협업을 준비하시는 분들께는 새로운 형태의 협업을 만드는 영감이 되길 기대합니다. 



>> 군산시 노계장님, 제충만님, 씨프로그램 신혜미 매니저가 15개월 동안 함께 해온 프로젝트

군산시 놀이터 환경 개선 프로젝트 자세히 알아보기


>> 프로젝트의 결과물

군산시 조촌동 놀이터 삼각지대 자세히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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