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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익수 Mar 17. 2023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2016년 말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 직후에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이면서 이 책을 공저한 두 저자는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즈’에 칼럼을 연재하였다. 그 당시 이 칼럼은 미국인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고 2년 후에 책으로 출간되어 큰 화제를 일으킨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트럼프가 미국의 민주주의 규범을 심하게 파괴한 정치인이라고 진단한다. 미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유지해 온 상호관용의 규범을 어겼고 결과적으로 다른 전체주의 국가의 포퓰리스트 독재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그 근거로 민주주의의 파괴를 진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의 4가지 테스트에서 모두 전제주의 행동 반응이 나온 것을 제시한다.

1)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거나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가?

2) 상대방 정치 경쟁자를 부정하고 비난하고 위협하는가?

3) 정적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는가?

4) 언론과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거나 다른 억압 사례를 지지하는가?

민주주의가 어떠한 과정으로 무너지는지 알아내기 위하여 저자는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포퓰리스트 성향의 극단주의자들이 어떻게 정치권에 진입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으로 선출되는지, 선출된 대통령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독재자의 길로 가는지를 세계 여러나라의 사례를 들면서 설명한다.

이 책은 군사 구테타라는 무력을 통하여 권력을 잡은 독재자가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례는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민주주의라는 정당한 제도적 장치와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독재자가 선출된 사례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미국 이외의 대표적인 독재자 사례로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와 오안타 우말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르코니,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폴란드의 야로스라프 카친스키 등을 든다.

이 책은 현대 미국사회의 민주주의도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를 진지하게 경고한다.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부상하며 민주주의가 급속히 쇠퇴하고 있는 경향이다. 이러한 시점에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위험 신호를 인지하는 근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극심한 양극화로 갈등이 심화된 미국의 정치 위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극복될 수 있는지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절대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과거의 군주제도 조차 군주의 자제가 따를 때 안정되었던 것과 같이 민주주의도 자제의 덕목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를 계속 시합이 이어지는 운동 경기라고 보자. 경기가 이어지려면 선수들은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상대를 적대시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팀이 떠나버리고 없어지면 더 이상 경기는 없다. 이 말은 경기에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자제하며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운동 경기에서 심판을 매수하고, 상대편 주전이 경기에 뛰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경기 규칙을 고쳐서 상대편에 불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인다면 그러한 경기는 그 순간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제의 반대는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헌법적강경태도(Constitutional Hardball)'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은 비록 규칙에 따라 경기에 임하기는 하지만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거칠게 상대방을 밀어 붙이고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태도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경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 정치 경쟁자를 없애 버리기 위한 전투일 뿐이다.

오래전 미국 출장길에 미국에 수십년간 살며서 미국의 정치구조를 많이 경험한 교포지인으로 부터 "미국의 정치가 진절머리날 정도로 잘못되어서 사람들이 정치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학교에서 미국을 민주주의의 교과서인 모범적인 나라라고 배웠던 내 입장에서는 의외의 말이었고 그 당시에는 솔직히 실감이 안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충분히 공감이 간다.

영리하고 똑똑한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이 상대 정당에게 내뱉는 공격적인 독설과 매카시즘적인 애국심을 내세우면서 상대방을 자극하고 적으로 몰아 붙이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의 정치판에서 5류 정치인이 벌이는 수준 이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인간이 모여사는 사회는 비록 성문화된 법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사회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범이나 불문율이 있다. 저자는 이것을 자동차 도로에 있는 가드레일에 비유한다. 어쩌다 차가 가드레일에 부딛혀서 손상되는 경우는 있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 차선 밖으로 넘어 나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양극화되는 사회에서는 가드레일을 넘어가는 상황이 빈번해 진다.

일반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규범이나 불문율이라는 가드레일이 누군가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위반되고 파괴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 사회는 '일탈의 범위를 축소하는', 다시 말해 규범이나 불문율의 기준을 하향 조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예전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였던 행동이 정상적인 행동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이 관리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하고 이러면서 민주주의는 무너 질 수 있다고 이 책을 설명한다.

지난 200년간 미국의 정치판를 주도했던 백인 개신교 집단은 백인 민족주의 모습을 하고 공화당 집단이라는 닫혀진 시야로 미국 정치를 주도하려고 한다. 반면에 흑인을 포함한 소수 유색 인종과 이민자 1,2세대의 민주당 지지율은 인구 증가에 따라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정치는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공화당과 진보를 대표하는 민주당의 상호 보완적이고 협력적인 양당 구도체재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양당은 이념의 차이에 더하여 인종과 종교적인 갈등이 추가된 양극화 대결 구도로 치닫고 있다. 이것은 정치에서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 라는 규범을 지키기 보다는 대립과 반목으로 갈등하는 구도이다.

정치라는 경기에서 ‘똑같이 지저분해지더라도’ 자기당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미국의 정치현실이 되었다.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과 이민자의 정치적 비중이 시간이 갈수로 커지는 만큼 백인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공화당의 극단적인 오른쪽으로 이동은 점점 가속화 될 것이다. 이러한 미국 정당정치의 양극화로 인하여 미국의 민주주의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 책이 큰 관심을 끈 배경이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문제의식을 글로서 미국인을 포함한 세계 시민에게 알린 지식인이 있기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함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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