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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익수 Jul 31. 2022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

오종우

오래전 2016년 12월에 구매했던 이 책을 6년만에 꺼내어 읽었다. 러시아 문학을 좀 더 알고 싶은 지적 허영심에 붙잡아 놓은 이 책은 오랬동안 나의 책장에 갇혀 있었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이 책의 제목에 담긴 ‘삶을 말하다.’라는 짧은 문구에 마음이 다가갔다. 이 책을 바라보았던 지적 허영심은 그동안 세월이 흐르면서서 ‘남아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실존적인 질문으로 바뀌었다.

올해들어서 부터 나침반 바늘이 크게 흔들리고 분명하다고 믿었던 나의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흐려지어 길을 분별하고 선택하기에 눈이 흐려진 나를 발견했다. 어떻게든지 나의 길을 다시 맞추고 다져 보려는 마음은 책장에 꽂혀있는 여러권의 책중에서 이 책에 손이 가게 만들었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스토옙스키),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와 닥터 지바고(파스테르나크)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하여 사람의 삶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되돌아 보는 계기를 열어준다. 러시아 문학 전공자인 이 책의 저자는 3명의 세계적인 러시아 작가의 장편소설을 빌어 무었이 정직한 삶의 태도이고 잘못된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설명해 주려고 무척 애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긴 장편소설을 직접 읽는 것 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들을 핵심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재미가 훌륭하다.

너무나 당연하게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옳다고 믿고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정말로 아쉽게도 세상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제시해 줄 수 있는 삶의 정답은 없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소설속의 문장을 빌은 저자의 글은 저자가 옳다고 생각하고 해석한 소설 주인공의 삶이었고, 그들의 삶이었고, 저자가 주장하는 삶일 뿐, 결국 나의 삶은 내가 찾아서 만들어야 하는 나의 것이어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오래된 옛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는 서울서 다니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고, 4학년때 부산을 떠나 고흥에서 1년을 다니다가 5학년때 다시 서울로 전학을 왔다. 다시 서울서 시작한 나의 사춘기 시절은 너무나 빈한하여 위축되고, 거친 시절의 서러운 눈물을 가슴속에 숨기었고, 끝까지 참아야만 모범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었다는 말은 지금도 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스스로 견디어야하는 생존본능으로 훈련된 나의 인생 나침반 바늘은 다행히 앞을 가리키는 방향이 분명했고 방황해서 흔들리는 일도 없었기에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삶의 의지와 스스로의 채찍과 그렇게 만들어진 자존감으로 앞만 보며 걸어 왔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빠른 지름길은 나와는 다른 가진 자의 세계였고,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옆길을 겯눈질 하는 것은 여유있는 자의 사치였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었다.

아직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일’ 자체로 부터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일은 산이었다. 어떠한 산이든 산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과정은 언제나 숨이 턱에 차고 힘들다. 그럼에도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우울함과 불행한 감정을 뒤로 넘기고 잊게 만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은 만족함에 달려 있다. 하고 있는 일의 귀천과 수입에 따라서 만족의 크기가 달라진다면 그러한 행복은 욕심의 지배를 받은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은 궁극적으로 충족될 수가 없고, 결코 충족되지도 않는다. 인간은 어떠한 욕망이 충족되었다고 알게 된 그 순간, 새로운 결핍을 느낀다. 결핍은 욕망의 이면이다. 사람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바라고 욕망한다. 결핍이 초래한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그 까닥은 과잉의 문제에 있다. 차고 넘쳐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욕망의 과잉으로 언제나 결핍을 느낄수 밖에 없다. 결핍을 느끼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을 일그러뜨리고, 마음의 평화를 흔들고, 불안함과 우울함의 함정에 갇히게 하여, 결국 어두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

일과 행복이 촘촘히 연결되어 달려 온 나의 삶의 어느 고리에서 욕망과 결핍의 부자연스러움이 나타났고, 실체를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함이 나의 나침반 바늘을 흔들고 있다고 보인다. 그동안 원만한 어려운 일에도 죽눅들지 않고 뚜벅뚜벅 해치우며 앞으로 밀고 나갔고, 마음과 어께에 부딧히는 장애물은 나아가는 발길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늦추기도 했지만 나의 가는 길을 막지는 못하였다.

예전에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이 언제인가 부터 마음을 흔들어 놓고 새벽에 깨어 잠을 못이루게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러는 모습에서 생에 집착하고, 더 가지려고, 가진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작아지고 있는 내가 보인다. 세상은 이것을 남자 갱년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람의 내면은 너무나 깊고 복잡하고 수시로 바뀌어서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잘 모른다. 욕망과 결핍의 바퀴를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라는 물음을 하면서 일상의 작은 것으로 부터 행복의 답을 찾아 보려고 한다.

우리에게는 날마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크고 작은 선택이 있다. 선택을 해야 할지,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언제나 나의 몫이다. 교과서 같은 삶의 모범답안은 있지만 하나만의 정답은 결코 없는 주관식 시험문제를 매일 평생동안 한결같이 풀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쉬임없이 답을 써내려 가다가 가끔은 멈추고 되돌아 보며 생각하기도 하지만 내가 가야하는 길은 언제나 명확했다. 그러던 어느 때 등산로가 희미해진 것을 깨닫은 순간,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은 것을 확인한 순간, 결국은 계속 앞으로 가야만 하는 것을 알기에, 다시 마음을 다지면서 그래도 무언가 답을 구하려는 마음은 이렇게라도 책을 붙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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