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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그냥 Oct 04. 2024

펀치 같은 편지, 두 작가의 교환일기

서간문

 오늘 독서모임 가서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선았거든요! 어떻게하면 자극적인 소재 없이, 자연스런 일상을 소재로 재밌는 글을 쓸 수 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지인이 이 고민을 듣고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라는 이 책을 선물해줬어요. 너무나 감사한 분입니다.


 이 책은 서간문입니다. 저도 이 장르를 처음 들었는데요. 한자로는 '글 서'에 '편지 간'으로 글로 쓴 편지라는 익숙한 뜻이에요. 그래서 이 책은 이슬아 작가 , 남궁인 작가 둘이서 편지를 나눈 글을 엮은 책입니다. 여러분들은 편지를 종종 쓰시나요?주로 부모님이나 연인, 친구들과 편지를 썼을 거에요. 가까운 사람들이죠. 하지만 두 작가는 엄청나게 가까운 사이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서로 알게 된지 오래되지 않았고, 아직은 알아가는 사이죠. 아, 물론 연인관계로서 알아가는 건 아닙니다. 이슬아 작가님은 유부녀에요. 알고보니 문학동네라는 출판사에서 작가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는 기획을 한 거더라구요. 기획 포인트는 편지를 주고 받는 작가들이 적당한 거리감을 가진 의외의 인물이어야한다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관계 사이에서 써지는 편지는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특히나 이슬아 작가님과 남궁인 작가님의 케미는 엄청 났습니다. 제목에서 펀치 같은 편지라고 소개했 듯 내용이 심상치가 않아요. 우선 두 분은 명확한 포지션이 있습니다. 이슬아 작가님은 딜러, 남궁인 작가님은 탱커에요. 슬아 작가는 궁인 작가를 타박합니다. 때로는 징그럽다고, 때로는 궁상스럽다고. 그런데 이상하게 따뜻합니다. 궁인 작가는 슬아 작가의 타박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항상 다정하고 친절해요. 하지만 이상하게 차가운 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오묘한 관계에서 나오는 케미가 글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게 만들어줘요.


 슬아 작가가 궁인 작가에게 보내는 첫 편지의 제목은 '멋있고 징그러운 남궁인 선생님께' 입니다. 아직 알게된 지 얼마 안된 사람에게 징그럽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솔직함이 대단했고, 독자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슬아 작가는 남작가님을 신랄하면서도 겸손하게 비판합니다. 하하하. 너무 재밌어요.

"선생님이 너무 잘생겼을까봐 처음 만나기 전에는 긴장했습니다. 실제로 뵙게 된 선생님의 용안은 물론 미남이었으나, 그렇다고 너무 미남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쓰는 사랑편지가 느끼합니다!"

"이슬아처럼 쓰자고 다짐하고 쓴 선생님의 글이 이렇게 낮은 퀄리티라면 도대체 선생님은 그동안  글을 어떻게 평가해오신거죠?'

"닷새 안에 답장이 없으면 절교하자는 뜻인 줄로 알겠습니다."

 제가 남궁인 작가님이었다면 푹푹 찔러들어오는 창 같은 말에 가슴이 찌릿찌릿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렇게 타박하는 슬아 작가님이 밉게 보이지가 않는다는 거에요. 그저 솔직할 뿐이며, 어떻게 보면 관심에서 나오는 애정어린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책 안에는 제가 적지 않은 배려넘치는 말들이 가득하기도 하구요.


남작가님은 이어지는 답장에서 타박에 대해 인정하고 자신과는 다르게 담백한 슬아 작가를 칭찬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히 유효한 공격이다." 

"저는 그러니까, 시종일관 '까르보나라'를 쓰려고 했습니다"

"'아, 잘 쓰잖아'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건 재능입니다"

아주 영리한 대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략 10살 차이나는 동생에게 타박을 들었다고 해서 전면전을 펼쳐봤자 손해를 보는 건 자신일 겁니다. 영리함과는 별개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모습에서 어른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해요.


 궁인 작가님의 편지를 읽다보면 하나의 틀이 느껴져요. 먼저 슬아 작가가 던진 화두를 받습니다. 질문에 답변을 해요. 그리고는 답변과 연결지어 자신의 얘기를 쏟아냅니다. 예. 이 작가님의 편지에 비하면 남작가님의 글은 쏟아내는 게 맞습니다. 절대적으로 양이 많아요. 하지만 독자들에게 질적으로 좋은 글일지는 의문입니다. 남작가님은 의사시다보니 주로 의료 현장과 관련된 글을 적으십니다. 의료 현장이 주는 긴급함과 생명의 소중함, 존엄성 등은 분명 가치가 있고 몰입되는 글입니다. 하지만 같은 틀에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다 보면 독자는 흥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반면 슬아 작가님의 글에서는 틀이 느껴지지 않아요. 매번 새롭습니다. 예상 못한 이야기와 전개는 당연히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사실 글을 써서 책을 내기 위해서는 틀이 있는게 편할 거에요. 틀만 갖춰놓으면 이후 내용은 채워넣기만 하면 되잖아요. 독자의 입장에서도 가독성이 올라갈 겁니다. 하지만 위에 얘기한 것처럼 흥미가 떨어질 수 있어요. 이걸 고려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작가님의 글은 틀이 안 느껴져요. 틀이 없는 만큼 매번 재밌는 글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실 생각을 하니 지금 읽고 있는 글이  급 감사해집니다. 틀이 없음에도 재미와 가독성, 글의 양을 채우는 이작가님의 모습에 남작가님이 재능있다고 표현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두 작가님의 차이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매번 화두를 던지는 건 슬아작가님이라는 거에요. 궁인 작가님은 본인의 얘기를 하고 또다른 화두를 슬아작가님에게 좀처럼 던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걸 보고 연인이 떠올랐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두 분은 절대 연인이 아닙니다. 연인 사이에서도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하잖아요. 한 명이 화를 내면서 말을 하지만 그게 다 관심의 일부이고 한명은 다정하고 친절하기에 답변을 잘하지만 새로운 말을 던지지는 않는 관계. 따뜻한 타박과 차가운 친절이라고나 할까요. 모순이지만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는 상황 같습니다. 매번 화두를 던지는 쪽은 친절한 무관심을 마주하고 애매모호한 불만이 쌓일거에요. 애매모호하면 더 문제입니다. 확실하면 문제를 마주하고 바로 풀면 되죠. 애매모호하면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원인을 못찾아 다른 곳에서 괜히 짜증과 사건이 터집니다.


경험담이냐구요? 하하하. 하.하하.. 맞습니다. 저는 차가운 친절에 해당하는 쪽이었어요. 따뜻한 타박을 알아보지 못하고, 따뜻을 가장한 친절을 내세우며 왜 자꾸 차갑게 타박하냐고 했던 거 같습니다. 이제와서보니 차가운 건 저였네요. 물론 여러가지 사정이 있지만 제가 잘못했던 부분을 한번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틀을 좋아합니다. 남작가님이랑 비슷한 점이 많네요. 틀은 저를 불안하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좋은 틀이 있으면 실패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또한 틀은 효율적입니다. 새로운 걸 고민하지 않고 틀에 내용물만 바꿔서 채우면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나 생각해봅니다.


 본의 아니게 남작가님으로부터 거울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치료받았으나 궁인 작가님에게는 상처를 주는 것 같아요. 이 글에서 남작가님의 글을 이작가님의 글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 했습니다. 하지만 이작가님이 빛날 수 있는 건 남작가님께서 탱커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셨기 때문일 겁니다. 덕분에 책 전체의 완성도가 높아졌을거구요. 슬아작가님도 맛있게 맞아주는 궁인작가님 덕분에 더 신나게 글을 쓰셨을 수도 있습니다. 탱커의 역할이 아니더라도 남작가님이 적어주신 깊이 있고 아름다운 글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책을 리뷰하고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계획적인 사람인가요, 자연스런 사람인가요?"


 제 질문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부연설명을 달았습니다. 여기서는 계획의 반댓말을 충동이 아니라 자연으로 제시했죠. 계획은 때때로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정한 자신만의 틀은 미래시점에는 맞지 않을 수 있어요. 그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또한 자신의 틀에 빠져 상대방을 고려하지 못할 수 있어요. 개인적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움은 조금 딱딱한 말로 표현하면 최적화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과거에 정해놓은 계획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자신의 마음과 같이 있는 사람을 고려한 최적의 의사결정이요.


 다분히 편파적인 질문이었습니다. 하하하. 계획적인 제가 슬아 작가님의 자연스러움에 빠져버렸거든요. 하지만 리 모임원들은 파적인 질문에도 다양한 의견을 내어주셨어요. 먼저 한 분은 MBTI에 빗대어서 이작가님은 P이고 남작가님은 J일 거 같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럴듯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J가 좋다고 했어요. 자신은 원래 P였는데 어느 날 삶을 돌아보니 체계가 잡히지 않은 자신의 삶을 일부 후회했다고 했습니다. 정리된 게 없다보니 지나간 삶에서 남은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요. 정리를 시작하면서 계획과 그에 따른 실천으로 취업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도 업무에 적응하고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데에 정리와 계획이 필수였다고 합니다.


 다른 한 분은 저의 편파적인 질문에 편승해주셨어요. 신은 원래 J였는데 점점 P를 지향한다고 해요. J로 사는 삶이 너무 피곤하다구요. 이 세상은 정의내릴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한데, 억지로 규정지으려하니 그게 스트레스가 된다고 합니다. 또,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충족하는 게 지겨웠고 뒤돌아보니 그렇게 정답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허탈했다고 했습니다. P인 것처럼 행동하니 여유를 갖게 되었다고 해요. 주어진 정답이 있는게 아니고 본인이 하는게 정답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또 실천력(?)이 올라갔다고 해요. 이것저것 따지고 생각할 거 없이 그냥 지금 실천하면 되니까요.


역시 MBTI를 얘기하니 대화에 활기가 돕니다. MBTI는 사실 독서모임의 치트키거든요. 서로의 MBTI를 얘기하고 같음과 다름을 얘기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우리 모임원들은 또 얼마나 입체적인지 몰라요. 한 MBTI에 머물러있기만 하려하지 않고 반대의 성향에 이끌려도 보고 부족한 부분을 메꾸려하면 스스로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 질문은 두 개의 차원을 합친 거였어요. 인위와 자연. 계획과 충동. 두 차원에서 좋은 것만 떼내어 계획과 자연을 비교하는 질문이었네요. 계획은 인위를 내포하고, 자연은 충동을 내포합니다. 결국 무조건적으로 옳은 건 없고 장단점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향을 알고 장점만 알았다면 단점을 생각해보는 것도, 반대의 성향의 장점과 단점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거같습니다. 여러분의 경계를 확장하는 기회를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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